임아영·박은하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312132265&code=940702
ㆍ골프장 경기보조원·퀵서비스 노동자 등 사각지대 여전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11년째 경기보조원으로 일하던 ㄱ씨(43)는 2008년 7월 날아온 골프공을 턱에 맞는 사고를 당했다. 얼굴이 심하게 부어올라 열흘간 쉬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에서 보험료를 전액 제공하는 상해보험에 가입돼 있었던 데다, ‘민간보험에 가입하면 산재보험에서 제외된다’는 회사의 말을 듣고 적용제외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
치료비는 회사에서 제공한 보험으로 해결됐다. 그러나 열흘간 소득이 없는 상태가 되자 ㄱ씨는 휴직급여를 제공하는 산재보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회사에서 조회 시간에 상해보험과 산재보험을 비교하며 설명할 때 휴직급여 부분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며 “산재보험을 신청하면 내가 월 8만원가량 부담한다고 들었다. 신청절차도 까다롭다고 해서 상해보험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상을 입은 뒤 산재보험 가입을 고민하던 ㄱ씨는 그러나 결국 가입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회사로부터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산재보험으로 회사를 괴롭히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밉보여 출장 정지를 당할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가입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보조원들의 상담을 돕고 있는 김경숙씨는 “회사는 교육을 3개월 정도 시켜놓고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내민다. 교육받았던 시간이 아깝고 다른 데 가도 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는 ‘반협박’으로 적용제외 신청서를 받고 난 뒤 사고가 나면 ‘법적으로 대응하라’는 식으로 나온다”고 덧붙였다.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은 전체 취업자의 60% 정도다. 임금노동자로 한정하면 82.8% 수준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의 대다수는 특수고용 노동자, 가구 내 고용활동 종사자, 소규모 건설업 노동자 등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회사에 종속되어 일하지만 노동력과 임금의 대가를 고객으로부터 받는 노동자를 가리킨다. 명목상으로는 자영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다. 정부는 2008년 7월부터 특수고용 노동자 중 레미콘 기사·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보험설계사 등 4개 직군에 한해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노동자와 달리 보험료를 본인이 50% 부담해야 한다. 그나마 강제가입이 아니라 임의가입 방식이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ㄱ씨의 경우처럼 회사는 ‘자연스럽게’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를 내밀고, 노동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레미콘 기사 등 4개 직군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9.7%(2010년 8월 현재)밖에 되지 않는다.
덤프트럭 운전사, 타워크레인 조종사 등 건설기계 운전사는 이러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중소기업 사업주에 대한 특례’ 조항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을 노동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사업주로 보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본인이 100%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초 부산의 리모델링 공사장에서 폐기물을 싣고 나오던 한 덤프트럭 운전사는 천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목과 허리를 다쳤다. 원청회사 및 공사 발주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산재 처리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본인의 실수로 다친 것이 아닌데도 ‘차주’이기 때문에 본인이 산재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강한수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 조직국장은 “보험료가 한 달에 13만원 정도 나오는데 임의가입 형식이면 누가 보험료를 내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2008년 한국노동연구원이 퍼낸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에 따른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808명 가운데 51%가 자신이 산재보험 당연적용 대상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는 택배·퀵서비스 기사에 대해 산재보험을 확대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택배 기사는 산재보험료를 사업주와 노동자가 5 대 5로 분담하는 방식이고, 퀵서비스 기사는 보험료 전액을 노동자가 내는 방식이다. 노동부는 이들 직군에도 임의가입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택배·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이를 “있으나마나한 제도”라고 비판한다. 양용민 퀵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임금조건이 열악한 퀵서비스 기사에게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현재의 특수고용직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퀵서비스 노동자 김준현씨(가명·39)도 “오토바이를 모는 우리들은 보험회사에서 위험등급 1등급이라 민간보험에서도 가입을 거절당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사용자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애림 전국비정규직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은 “외국 여러 나라들처럼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확대해, 보험료를 100% 사업주가 부담하고 강제적용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학습지 노동자 등 종속성이 강한 업종은 다른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100%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고, 특수한 경우는 장기적으로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산재보험 관련 기구를 만들어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임준 가천의과학대 교수는 “산재보험을 사회임금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기업주 부담을 늘려가는 편이 옳다”며 “당장 기업주가 100% 부담할 수 없다면 사업주와 가입자가 9 대 1, 8 대 2 등으로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의 간병노동자는 아예 산재보험의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노동부는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간병노동자 등에 대해 올해 안에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7월에 퀵서비스 기사 등을 대상으로 내놓은 대책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사노동자의 경우는 지난 6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가사노동협약’이 통과됐지만 우리 정부는 비준을 미루고 있는 상태여서 산재보험 가입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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