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를 아시나요.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다음해부터 열반하기까지 계속된 참선법이라고 합니다.

 

종교 담당이 된 후 하안거 취재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요.

 

3일 회룡사 비구니스님들이 하안거를 하는 장면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회룡사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 권호욱 선임기자.)

 

기자 생활 만6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짧게 기사쓰기가 어렵습니다. ㅎㅎ

 

아래 기사는 원문입니다. 원고지 10매를 써야 했는데 13매군요.

 

 

 3일 부슬비가 내리는 경기 의정부시 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회룡사. 1호선 회룡역에서 30여분 산을 올라가면 나오는 사찰이다. 오전9시30분 19.83㎡(6평) 규모의 취선당에서 12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두 손을 모으고 결가부좌를 틀고 참선 중이었다. 하안거 결제(10일)를 일주일 앞두고서다. 스님들은 두 손바닥을 감싸 왼쪽 손바닥을 하늘을 보게 모은 후 엄지손가락 두 개로 결을 맺는다. 발바닥도 하늘을 보게 해 발바닥과 손바닥을 하늘과 혈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스님들은 6명씩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작은 발자국 소리마저 소음으로 들릴 수 있는 묵언의 공간.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스님들의 모습이 인화된 사진처럼 보였다. 부슬비가 왔지만 어제까지 35도를 넘는 더운 날씨였던 만큼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수행 중인 스님도 있었다. 계속 앉아 있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도 찬기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거는 석가가 부처가 된 다음해부터 열반하기까지 계속된 참선법이다. 그 뒤에도 불교가 전해진 모든 지역에서 치러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름과 겨울의 2회로 나누어 3개월씩 수좌스님(참선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선원에서 참선수행에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여름철 3개월(음력 4월 보름~7월 보름) 수행하는 하안거와 겨울철 3개월(음력 10월 보름~이듬해 정월 보름) 수행하는 동안거가 있다. 조계종은 올해 하안거에 들어간 선원을 100여개 정도, 수행한 스님을 2200여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회룡사 주지 성타스님은 “안거를 해서 참선을 해야만 깨쳐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문에는 ‘너희들 모두는 부처’라고 하고 모든 사람은 각각 불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물이 들어 업에 의해 불성이 묻히는 것. 그 묻힌 걸 찾아내기 위해 수좌스님들에게는 큰스님이 화두를 내린다. 스님들은 계속 참선하며 화두를 들고 먼지 속에서 맑은 기운을 찾듯이 불성을 찾아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성타스님은 “참선을 해야만 부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취선당 건물 바깥벽에 붙어있는 편액에는 “일체제법개여환(一切堤法皆如幻)”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든 법이 다 환과 같다”는 뜻이다. 성타스님은 “우리는 살기 편하기 위해 법을 만들지만 그 법에 얽매인다는 것”이라며 “법에서 벗어나면 불성을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스님들은 하루 일과를 새벽 3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도량을 돌면서 염불을 하는데 ‘도량심장’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작게 목탁을 두드리다가 점차 소리를 높인다. 도량의 심장을 깨우는 목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을 친다. 부처님께 예불하고 새벽4시가 되면 입선에 들어간다. 아침 좌선이다. 6시쯤 아침 공양을 하고 7시에 다시 입선. 한 시간에 한번씩은 도량을 10번 정도 도는 포행을 한다. 그리고 다시 또 좌선. 오후에도 참선, 포행, 공양을 반복하다가 오후 10시가 되면 취침한다. 그렇게 3개월을 수행 또 정진하는 것이다.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때(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살면서 3000명 대중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도봉산을 올라가면 무학대사가 수행했던 무학 토굴이 나온다. 무학대사와 교류했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회룡사에 와서 기도를 했는데 관세음보살 석불 뒤쪽에서 후광이 비치면서 관세음보살이 헌신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후 이성계는 왕이 됐지만 함흥으로 간다. 함흥에 가 있던 태조가 1403년 환궁한 뒤 무학대사를 찾아왔는데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며 회룡사(回龍寺)라 했다는 이야기다. 회룡사는 1979년부터 선방을 운영해왔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매년 선방은 꽉 찬다.


 죽비는 앞줄 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이 죽비 소리가 들리면 참선을 시작하고 끝낸다. 스님들마다 화두는 다 다르다. 화두를 내려주는 큰스님도 다르고 같은 스님이라도 수행자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어떤 화두를 들면 더 빨리 깨치겠다 싶은 화두를 준다. 성타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먹고’라는 화두가 있다고 합시다. 이게 무엇인고를 ‘이먹고’라고 줄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내가 누구인가, 이놈이 무엇인가, 부모한테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였는가’ 등 화두를 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날 문득 깨달음이 온다는 것이죠.”

 

 

 


 성타스님은 후학들에게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승려는 아무리 말을 잘하고 포교를 잘 해도 근본은 참선입니다. 누구든지 참선을 3년 이상 해야 뭔가를 느낄 수 있고 뭔가를 느끼고 나서 신도들한테 교화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젊은 승려들은 대학을 선호합니다. ‘증’을 선호하는 것이죠. 속인들이 어느 스님이 어느 대학을 나오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좋아하니까 다들 세태에 맞추는 겁니다. 자기가 정말 불성의 힘을 얻어서 포교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스님은 시간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에게 누구의 소설 <모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요즘 부쩍 그 내용이 와닿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 모모는 시간을 팔아먹습니다. 자꾸 풍족해지는데 시간은 점점 없어집니다. 시간이 쪼들리니까 예민해지고 옆사람과 싸우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보기에는 점차 편해지는데 마음은 서로들 다 불안하죠. 어떻게 하면 추락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늘 좌불안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타스님은 “명상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게 필요합니다.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되고 마음이 자꾸 삭막해집니다. 삭만해지는 마음을 절에 와서 조용히 한 시간이라도 명상을 하고 염불 소리를 듣고 하다보면 급했던 마음도 차분해질 거예요. 꼭 불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나무 밑에 가서 명상을 해보세요. 닫혔던 마음이 치유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도 해주고 보듬어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스님은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며 “어린양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느냐. 그들을 구하러 들어가는 사람들도 공포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늘 우리나라는 뒷북만 칩니다. 그런 참사가 나지 않게 미리 방지를 해야하는데 한 사람이 독재를 하게 두는 시스템이 문제예요. 정부에서 남한테 인심을 쓸 때 자기네 이익만 위하는 사람에게 인심을 써주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겁니다. 정치권도 유야무야 물러나려고 하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길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끼리는 종교도 썩었고 나라도 썩었다고 통탄하는데 정말로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회룡사는 백중(百中·음력 7월15일)을 맞아 흰색의 연가등을 수십개 밝혀놓았다. 영령들을 기리는 연가등이다. ‘세월호 영령 왕생극락’이라고 쓰여 있는 연가등도 포함돼 있었다.


 성타스님은 2001년 사패산 터널 사업을 두고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터널은 2008년 완공됐다. 당시 공사 현장에서 수경스님 등과 농성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아직도 허리가 편치 않다. 스님은 물었다. “물질만능주의에 치달아서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거예요.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이었을까요.”


 스님은 “법당에서 기도하기 좋은 자리를 찾는 것도 전쟁인 시대”라며 통탄했다. “기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마음을 열고 함께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친구 등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상대와 나의 심장이 맞닿았을 때 교류가 잘 되는 겁니다.”

 

(데스킹된 기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032110305&code=960206)

 

 

 

하안거 해제가 10일입니다. 3일 앞으로 다가왔네요.

 

오늘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해제 법어를 발표하셨네요.

 

진제 스님은 "출가자는 더욱 분발하고 재가자는 큰 본보기로 삼아 게으름 없는 정진을 이어가자"

"하루빨리 무수한 안목자(眼目者)들이 나와서 부처님 진리의 법문이 영원토록 선양되기를 기원한다"

고 하셨습니다.

 

 

 

 

성타스님이 제게 자주 명상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는데요.

 

달려가고 또 달려가는 이 생활에서

자꾸 혼자 생각하는 시간, 혼자 숨쉬는 시간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취재였습니다.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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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unmankm.tistory.com 버크하우스 2014.08.07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가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 염종선 2014.09.16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기사 잘 보앗 습니다. 그런데 기사중에 오타가 있어서요. "이 먹고"가 아니라 "이 뭣고" 즉, 이것이 무엇인고? 입니다.

토요일자 책면에 우에노 지즈코 교수의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간단한 리뷰와 이메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지면의 분량상 다 전하지 못한 우에노 교수의 답변을 전문으로 실어봅니다.

 

 

 

우선 먼저 책 기사입니다.

 

[책과 삶]‘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펴낸 우에노 지즈코 e메일 인터뷰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우에노 지즈코 답변

1. 교수님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몇 차례나 전후 처리를 잘못하는 우를 범했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현재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담화를 부정했고 위안부 문제는 더 후퇴했습니다. 2014년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짜증스럽다’라고 한마디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상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전후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오류를 더한데다가 ‘위안부’문제의 대응에서도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간신히 화해의 길로 향하는 듯 한 순간에, 보수 정치가의 본심이 들어나면서 겨우 일궈낸 성과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고노 요헤이 전 장관 (河野洋平 1994년 고노담화 발표시 내각관방장관)이 최근 침묵을 깨고 인터뷰에 응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습니다. (마이니치신문 7월13일자 松田喬和<마츠다 다카카즈>가 속시원히 묻는다:이전 중의원 의장 고노 요헤이씨) 내용이 다소 길어지지만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고노 전 장관은 “이유를 알 수 없는데, 한일 우호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노골적으로 바라지 않는 듯 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떠밀리듯이 ‘담화를 검토하라’고 하는 의안이 제출되었다”라고  지적합니다.
 고노 전 장관은 화해란 시작하는 것도 지켜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은 너무도 간단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윗 세대에 해당하는 한일의 정치가와 한일 교류에 관계한 분들이 크나 큰 고심 속에서 쌓아온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경악을 넘어서 믿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습니다.
 “결국 유권자가 정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의 정치, 정권을 향한 불신이나 불만을 결코 잊지 않는 일이다. 여론 조사 등을 통해 ‘지금의 정치는 민심과 어긋나있다,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 라는 메시지를 정권에 계속해서 보내는 것이다. 내각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면 정권이라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관건이다.”

 전 자민당내각의 관방장관이었던 사람이 “정권을 바꿔라”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안부’문제만이 아니라 특정비밀보호법 제정,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무기 수출3원칙 변경, 해석 개헌 등 아베정권의 폭주에 위험을 느끼고 있는 정치가는 보수당 내에도 존재합니다. 우리의 위기의식은 날로 커져만 갑니다.

 

2. 한국인들은 일본의 젊은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등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젊은 정치인들마저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 하시모토시장 세대는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매우 많은 세대입니다. 그들은 분수도 모르고 거들먹거리는 대국의식 속에서 있으나마나한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아킬레스건’이 ‘위안부’문제입니다. 이러한 보수사상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과거를 배우지 않는 자는 역사로부터 보복을 당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일본의 전후 역사 교육은 근대사를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의도한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교육은 언제나 투쟁의 장입니다. 역사교과서 채용을 둘러싸고 각지에서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채용하는 자치단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시민들이 그러한 움직임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에 관해서는 한중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의 외손자 아베 신조 총리가 양국의 지도자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교수님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의 한계를 언급하셨지만, 동시에 국가의 해결 방식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셨습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현재 양국 지도자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평화입니다.
특히 북한의 상황이 위태로운 오늘날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 국내여론에 떠밀려 졸렬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평화가 없다면 여성의 인권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관계자들이 서로 양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립이 국내 내셔널리즘 동원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4.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은 실패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왜 그것이 실패인지는 책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국민기금의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매우 힘겨운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국민기금은 실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피해자 여성분들의 요구와 다른 것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분들의 상당수가 국민기금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씨를 필두로 한 국민기금 관계자 분들의 오류는 선의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분들은 전후 일본의 양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인데, 그분들의 잘못을 용인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선의를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는 의도가 아닌 결과로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의가 범한 잘못을 우리들은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국민기금이 설립된 95년에 일본 전후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당 당수가 내각수반이 되는 아주 드문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국민기금의 담당자들은 그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설사 불충분 할지라도 국민기금과 같은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분들의 판단은 이후의 역사 속에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95년 이후 일본의 정치는 우경화하여 국민기금은 우(右)로부터 줄곧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상황을 보면 국민기금과 같은 제도를 만드는 일은 95년 당시보다도 더 어려워 졌습니다.

국민기금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요구인 (1)공적사죄와 (2)국가에 의한 배상에 응해야만 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전시보상특별입법을 국회에서 성립시키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차례 거듭된 의원입법 시도는 모조리 다수정권에 의해 부정당하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보다 현재의 정치상황은 더욱 나빠졌으며 특별입법 성립의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정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정치적 해결책이었던 국민기금이 실패로 끝났다는 점에 대해서 관계자들은 깊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국민기금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비판했지만 대안을 내놓을 수 없었던 우리들도 다시금 깊은 무력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사태는 20년 전보다 악화되었으며, 저는 종종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5. 기금이 한계가 있었다면 일본 시민들이, 시민사회단체들이 2014년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국민기금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다음 단계, 즉 국민기금 이외의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은 각박해졌는데 허들은 훨씬 높아졌습니다. 어떤 해결책도 100점 만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관계자가 합격점을 줄 수 있는 해결책으로 ‘연착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피해자 분들의 연세는 점점 많아지고, 돌아가신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겉치레나 체면이 아닌 그 무엇보다 피해자 본인들을 위하여 관계자분들이 조금씩 서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6. 초판 후기에서 “고유한 ‘나의 책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15년 정도 지났는데요. 이 말에 대답은 어떻게 진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는 ‘국민’으로써의 책임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써의 책임, ‘연구자’로써의 책임, ‘교육자’로써의 책임, ‘시민’으로써의 책임 등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인생의 과반을 살아왔고 고령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누군가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든 거야’ 라고 외친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넘겨주어야만 한다면, 책임을 추궁당할 입장에 있습니다. 3.11과 잇따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주도아래 국토를 오염시키고 많은 이들의 고향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것에 대하여 우리 세대는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성의 생각을 정치권에 전하는 일, 그 중에서도 특히 ‘반전’과 ‘비핵’은 젠더평등의 전제조건입니다. 일부분일지라도 책임을 다하고자 인정NPO법인 여성행동네트워크(認定NPO法人ウィメンズアクションネットワ&#12540;ク)를 설립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여성을 연결하는 웹사업으로, 그 안에서 ‘위안부’문제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I1da를 본보기로 삼았으며, 정보 제공 미디어를 넘어 여성을 위한 행동을 하는 실천단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http://wan.or.jp/)

 

7. 교수님은 ‘국민’, ‘여성’과 같은 범주의 부정이 아닌 ‘더많은 범주들’이라는 범주의 복합화를 얘기했습니다. 그것이 교수님이 주장하는 탈식민주의적 해결방법인가요?

=어느 누구도 범주(카테고리)에 속하게 됨을 부정할 수 없으나 범주에 구속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의 범주를 상대화하는 일은 또 다른 범주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점점 개인이 다양한 범주 아래 놓이게 된 오늘날, 하나의 범주로 개인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범주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탈식민지주의도 다문화주의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범주의 복합화’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조류라고 생각합니다.

 

8. 식민지 시기의 범죄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일본인들이 해야 할 반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반대로 식민지 시기에 태어나지 않아서 식민지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어떤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누구도 피해자를 대리·표상할 수 없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과 한국인에게는 과거를 둘러싼 대리전쟁이 아니라 ‘현재’의 한일관계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의 책임이 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부모 세대에 불행한 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아이들의 세대는 전혀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9. 여전히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민족 문제로 과잉 담론화되고 있습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운동 방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국에서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운동을 일으킬 때 ‘민족’이라는 키워드가 강력한 담론적 자원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키워드를 일단 사용하게 되면 생겨나는 공과 죄를 모두 꿰뚫어봐야만 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국가’나 ‘민족’이 영유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일은 한국인이 민족으로써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과 별개의 일입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피해자 분들을 위한 일인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0. 교수님께서도 이 책 발간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제국의 페미니스트가 아닌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해는 풀렸다고 보십니까. 아니라면 풀릴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안타깝지만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일단 만들어지고 굳어져 버린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제가 일본정부에 동조하는 ‘제국의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가를 믿기보다 부디 제가 쓴 것들을 읽고 본인들이 직접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함께 싸워야만 하는 공동의 적이 있는 시기에 소수의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내 편이 될 수 있는 상대를 중상모략하여 배제하는 어리석음 만큼은 피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1. 재일조선인 서경식 선생은 2011년 <언어의 감옥에서>라는 책에서 교수님을 “내셔널리즘 비판과 전후 책임 회피의 뒤집어진 결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전후책임론의 다카하시 데쓰야를 교수님께서 내셔널리즘의 함정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지요.

=전 일본인의 전후책임을 부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일본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전후 및 현재의 일본 정치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타카하시 테츠야씨가 말하는‘무한책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개인이 국가나 민족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12. 1991년 교수님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큰 영향을 받아 책을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김 할머니는 1997년 사망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살아 생전에 그 분의 고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한심스러울 따름입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행동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메시지는 저를 포함하여 많은 일본여성들에게, 뿐 만 아니라 일부의 남성들에게도 분명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13. 현재 위안부 피해자로 알려진 234명 중 생존자는 54명뿐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고령이십니다. 여전히 일본의 사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그리고 일본 여성으로서 그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김학순 할머니가 고발하셨던 91년보다 일본의 정치상황은 우경화되었으며 그러한 움직임을 막을 힘이 없는 무력함이 분할 뿐입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분들의 노후가 평화롭기를 간절히 염원했는데 그조차 이루지 못한 상황이 한심스레 느껴집니다.

 

14.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십니까.

일본정부는 북한의 납치피해자를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위해 이용하였습니다. ‘위안부’문제  또한 한국정부에 의해 내셔널리즘을 위한 자원으로 동원되고 있습니다. 내셔널리즘은 ‘우리’와 ‘그들’을 대립시키는 사상입니다. 피해자분들에게 공감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민족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다시금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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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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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국립중앙도서관 전시 '올웹툰'에 다녀왔습니다.

 

도서관 그것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웹툰'에 관한 전시를 한다는 것이 이채로웠는데요.

 

 

 

 

 

웹툰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데요.

 

  웹툰은 웹(web)과 만화(cartoon)의 합성어로 90년대 후반 정보인프라의 비약적 발전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2014년 현재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90년대 후반 정보인프라의 발달을 기반으로 인터넷 만화 서비스와 개인 홈페이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개인홈페이지에 연재한 감성적 만화는 메일을 통해 확산되고, 게시판을 통해 공유되며 새로운 만화 창작, 유통, 소비의 흐름을 만들었다.

 

전시는 5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약 3개월간 열립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으로 가시면 되구요.

 

전시실은 다음과 같이 6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야기 꽃 시대의 거울 웹툰! 문화를 꽃 피우다

웹툰의 힘 웹툰 작가의 작업 공간 웹툰 미래를 꿈꾸다

웹툰의 역사와 웹툰 10년의 대표 100작품, 웹툰의 다양한 활용사례와 웹툰의 문화적 가치, 웹툰 작가의 작업 공간, 그리고 웹툰의 미래까지 시간 순서대로 전시돼 있었습니다.

 

 

전시실 내용 중 웹툰의 역사 부분이 전시실 중에서 가장 재밌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요청해서 자료를 받았는데요.

한 번 인용해볼게요.

 

[1] 웹툰 이전의 웹툰(1999~2002)
  - 웹만화, 웹애니메이션에 담은 일상과 감성
인터넷 PC와 초고속통신망이 빠르게 보급됐고, 만화의 디지털화도 빨라졌다.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가 자신의 일상을 간단한 그림과 함께 개인홈페이지에 올려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2] 포털사이트의 히든 콘텐츠가 된 웹툰(2003~2005)  

 - 미디어다음의 등장, 포털웹툰 삼국지가 낳은 ‘웹툰3신’
포털사이트 ‘다음’이 ‘만화속세상’ 코너를 만들었다. 시사, 생활, 패러디 만화와 서사성 작품이 연재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야후, 파란, 엠파스가 참여하면서 ‘웹툰 붐’이 일었다.

 

[3] 포털의 네트워크 효과가 만들어낸 웹툰플랫폼(2005~2006)
   - 네이버만화의 변신, 급격하게 확산된 웹툰 이용자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만화섹션을 웹툰 중심으로 개편했다. 웹툰 작가가 늘었고 이용자도 확산됐다. 웹툰의 대중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문화산업 전반에서 웹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4] 다양한 장르와 취향을 종합한 웹툰(2006~2007)
   - 장르의 경연장에서 새로운 장르의 시험대로

기성작가 참여와 신규 작가군이 늘면서 웹툰이 다양한 장르의 경연장이자 시험대가 됐다. 세로 스크롤 중심 연출과 묘사법이 시도됐고, 스포츠, 액션, 퇴마 등 색다른 장르가 등장했다.

 

[5] 만화저작권리산업을 재구축한 웹툰(2007~2009)
   - 웹툰 캐릭터를 중심으로 변화 된 가치사슬

웹툰을 활용한 전자책, 각종 캐릭터 상품과 디지털아이템 등이 출시됐다. 웹툰 캐릭터와 내용 중심의 애니메이션, 모바일게임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웹툰이 콘텐츠 플랫폼이 되고 있다.

 

[6]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완성 된 웹툰생태계(2009~2010)
   - ‘나도 만화가’, ‘도전 만화’ 출신 웹투니스타의 등장
웹툰의 성장에는 포털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나도만화가’, ‘도전만화’ 등에 등록된 작가와 작품을 선정, 지속가능한 공급망 역할을 하여 웹툰 생태계의 밑받침이 됐다. 

 

[7] 영상콘텐츠 산업의 스토리뱅크가 된 웹툰(2010~2011)
   -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작품화하는 웹툰작가
폭발적인 생산력을 보인 웹툰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웹툰의 장점인 독립적ㆍ저비용 작업으로, 기획 개발 단계부터 이를 고려하는 경우가 일반화 되었다.

 

[8] 색다른 소재와 세분화된 독자층으로 2차 전성기 이끈 웹툰(2011~2011) 
   - 과학적 편성정책으로 극대화된 웹툰 이용자층
웹툰은 포털사이트 이용자의 성별, 연령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연재 작품을 선정, 연재 요일을 편성한다. 작품의 소재, 성격, 작가의 성향, 표현 범위에 따라 구독 연령층을 지정하기도 한다. 

 

[9] 전통적인 만화장르를 품에 안은 웹툰(2011~2012)
   - 코믹스 스타의 귀환, 종합만화플랫폼이 된 웹툰
웹툰은 이용층의 다양화와 소재&#8231;장르의 다양성을 강화했다. 웹툰에 제한적이라 여긴 소재, 창작방식, 연출법 등 다양한 장르가 집결됐다. 포털 웹툰은 한국만화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플랫폼이 됐다.

 

[10] 세계로 가는 웹툰, 세계의 만화 웹툰(2012~2013)
   - 기술융합형 웹툰, 제3지대 웹툰서비스 등 더 커진 웹툰
웹툰은 한글을 담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다. 번역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웹툰의 국외 유통이 확산됐다. 무빙톤 형식의 멀티미디어 웹툰, 포털을 벗어난 독립형 웹툰 서비스 등장, 웹툰의 미래가 밝다.

 

 

전시실 옆에는 웹툰 체험관이 있었는데요.

 

‘무림수사대’(이충호), ‘미생’(윤태호), ‘그대를 사랑합니다’(강풀), ‘신과 함께’(주호민) 등

한국의 대표적 웹툰 10편을 행사 기간 동안 디지털 도서관 체험형 컴퓨터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그외 웹툰 작가들과의 토크콘서트,

무료 웹툰 교육 ‘웹툰 스토리 창작’, ‘웹툰 캐릭터 만들기’, ‘웹툰 제작 실습’ 등이 마련되고요.

여기에는 유명 웹툰 작가들이 참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를 참고하세요. ^^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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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에는 뮤지컬 <위키드>의 작곡가 스티븐 슈왈츠의 기자간담회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작곡가로 유명한 분이죠.

스티븐 슈왈츠와의 질의 응답을 옮겨봅니다. 

작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네요.

 

통역한 것을 정리한 것이어서 비문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티븐 슈왈츠입니다.(한국어로 인사) <위키드>의 작곡가이자 작사가다. 여러분들 만나뵙게 돼서 반갑고 서울 오게 돼서 진심으로 기쁘다.

 

(질의 응답)
-4개월여만에 개막하고 뒤늦게 찾아온 감이 있다. 한국에서 <위키드> 오리지널 버전 라이선스 공연은 처음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흥행 성적은 어떤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배우들이 노래하는 음향 등 느낌이나 우리 배우들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배우들에게 요구했던 부분이 있는지.
 처음에 한국 <위키드>가 공연된다고 했을 때 너무 오고 싶었다. 그때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버전으로 올리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오지 못했다. 그때 거기에 있어야만 하는 바람에 여기 오지 못했던 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공연 진행 중에 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공연이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까 하다 보면 달라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한다. 처음에 오는 것보다 나중에 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만 봐도 10년 넘게 흥행 기록하고 있다. 한 번씩 모든 것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공연 제상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지난 토요일, 일요일 한국 공연 전체를 다 봤다. 굉장히 좋은 상태로 공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부분이 있지만 멋있는 캐스트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공연하는 분들뿐 아니라 새롭게 엘파바로 합류하는 김선영씨도 봤는데 반가웠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같이 노래도 해보고 노트도 했는데 연습 얼마 안 했는데 훌륭하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하고 비교했을 때 다른 부분 등에 대해 질문했는데 추상적인 대답인 것 같다. 십년 전에 했던 것, 또 스페인 등과 비교한다면.
 일단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한국 <위키드> 버전이 지금 뉴욕 갔을 때 본 거랑 똑같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형태 모습 똑같을지언정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만큼 한국적 강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극장 시스템 부분일 수도 있고 극장 구조, 한국 음향팀 뛰어난 능력일수도 있다. 한국 공연 보면서 음향 사운드가 듣기 좋았다. 세계 어느 곳에 뒤지지 않고 제일 좋다 생각 들 정도였다. 특히 <위키드> 앙상블 칭찬하고 싶다. 노래를 잘한다 뿐 아니라 극 속에 녹아들고 조합도 좋고 딕션도 좋고 음악적 재능에 굉장히 놀랐다. 특히 객석에서 웃음이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흡족하고 행복했다. 언어적 부분도 있지만 생각보다 웃음이 적은 곳도, 많은 곳이 있는데 한국 관객들은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보다 보면 영어로는 이쯤 터진다 부분에 어떤 나라 가면 안 터질 때 속상했는데 한국에서는 다 터지고, 뜻하지 않은 부분에서 터지는 게 특색있었고 좋았다.

 

 

 

 

-일단 공연 캐스팅별로 보셨다고 하니까 보면서 캐스팅 배우 중 인상적 배우가 있었다면. 물어보는 이유가 한국 관객들과 원작자 입장이 다를 거 같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가.
 모든 배우들이 워낙 뛰어나고 잘하고 누구 하나가 뛰어나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제각각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개성 살리면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네사로즈 맡은 이예은씨도 사랑스럽게 캐릭터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크 역 김동현씨는 새로운 보크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 두 배우가 한국적 부분을 연기적 요소에서 찾았기 때문에 지역적으로도 사람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나싶다. <위키드> 자리 잡는데 공헌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더블캐스팅이 된 네 배역에 대해 다 봤는데 비교하고 싶지 않고 그저 달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다른 점 때문에 공연 보는 재미가 있었고 누구 하나가 더 현실적이었다는 말 자체가 배우들 감정 상하게 할 수 있으니까 달라서 좋았다고 말하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는지 한 가지만 예를 들어줬으면. 배우들에게 노트 직접 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을 해주셨는지.
 (웃음) 다르다는 말을 꼭 강조하고 싶었던 건 다들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차이점 설명한다면 엘파바 역 중에 옥주현씨는 강한 감정, 분노를 안으로 응축시키는 경향이 있었고 그런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박혜나씨는 뿜어내는 기운이 좋았다. 글린다 역은 정선아씨가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부분을 캐치해서 코믹함을 살렸고 김보경씨는 현실적이라고 말하는게 오해 생길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진실하거나 확실하게 다가오는 재미를 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러운 것은 이런 얘기가 활자화돼 나가면 배우들이 내가 지금 응축시키고 있구나 폭발해야 하나, 폭발하고 있으니 응축해야 하나 등 생각할 수 있어 우려가 된다. 잘 써주길 바란다. <위키드>라는 공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전세계적 공연되는 이유는 배우들로 하여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강점 성격 연기관 등을 투영시킬 수 있고 그럴 여유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엘파바, 글린다 등 주역 맡은 배우들이 본인의 삶 등 배경을 투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키드>가 힘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와 달리 공연은 살아있는 사람이 하는, 매일 살아있는 공연이다. 살아있는 생명처럼 바뀌기도 하고 좀더 나아지려고 한 것도 있다. 노트라는 게 별게 아니고 음악적 노트고, 템포 공연 흐름, 리듬 등 나아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했다. 또 감정선에 대해서도 대화했고. 배우가 가지고 가야 할 감정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대본을 보면서 번역에 의해 바뀐 부분이 내용이 잘 전달 되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답답한 부분, 의문을 해결하려는 것이어서 한국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았다. 작은 걸로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이 발전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으로 바꾼 부분들이 무엇이고 어떤 팁을 찾았는지.
 미국 관객들은 <오즈>라는 테마에 익숙하고 그 영화를 잘 알고 있다. 너무 많은 부분을 자세하게 말하긴 그런데 2막에 보면 글린다가 노란 벽돌을 따라 뒷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드는 장면이 있다. 지금 미국 관객들은 보기만 해도 도로시구나, 길 떠나는구나 알 수 있는데 모든 한국 관객들이 <오즈>에 친숙하지 않다보니 ‘아 그렇구나’ 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분에 삽입하기로 한 게 있다. “도로시 안녕~”(굿바이 도로시) 이렇게. 그런 식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고 작곡가들이 대본을 보면서 이런 부분 전달되고 있느냐 했는데 그렇다 하면 넘어가고 아니면 더 좋은 방법 찾기 위해 논의했다.

 

-1975년 나온 영화인데 그 영화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참 오래되지 않았나.
 왠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서 하루도 <오즈>에 대한 언급 없이 지나간 없었던 듯하다. 티비를 보든 기사를 보든. 어떻게든지 <오즈>에 대해서 언급하든지 배경에 대한 농담을 던지거나 사회 근간에 깔려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면으로 생각해보면 <오즈>나 <위키드>나 어느 시대이든지 항상 사람들에게 대변하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생활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적나라한 얘기다. 정치적인 얘기, 표상하는 이미지는 이거지만 알고보면 다른 것이라든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게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현시대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자신 입장에서 이게 진실이라고 하지만 이제 저희는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들이 다 진실이라기보다는 입장에 따라 해석이 가능한 의견이라는 것도 알고 복잡한 사정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위키드>를 보셔도 알겠지만 사악한 초록 마녀, 선한 하얀 마녀로 선악이 구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보면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알게 되니까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지 않았을까. 이런 부분이 계속 부딪치고 격렬하게 찬반 논쟁 일으키는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영화가 미국 등에서 회자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등장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뮤지컬보다 <위키드> 넘버들이 빠짐없이 좋다. 가사를 붙일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중력을 넘어서>를 대표곡으로 꼽는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어떤 곡인지, 핵심 곡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선 감사합니다(한국어). <위키드>라는 작품은 처음 소설로 접했었고 그 이후에 뮤지컬로 만들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백방으로 알아봤던 작품이다. 굉장히 하고 싶었었다. 하나하나 살아있는 캐릭터도 맘에 들었었고 이들이 가져가는 관계도 좋았었고 작품에 깔려 있는 철학도 흥미롭고 맘에 들었었다. 이 작품 만들 때 캐릭터 한명 한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상황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쓰려고 했고 그들 입장에서 세계를 구축하고 세계관 생각해봤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하면 음악이 도움이 될까를 중점으로 생각했다. 만약 음악 들으면서 그런 부분 느껴졌고 캐릭터 감정이나 성격이 느껴졌다면 제 일 잘했다는 거니까 감사하다.

 일단 제일 좋아하는 곡은 어디 가도 듣는 질문인데 절대 대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저명한 작곡가 스티븐 손더임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인터뷰에서도 어김없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다. 스티븐 손더임이 이렇게 말했다.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얘기했었는데 그 이후 그 노래 들릴 때마다 왜 좋아하는 노래인지 질문 안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그날 들을 때마다 감정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보다 먼저 왜 그게 좋은지 생각하게 되니까 노래와 나 사이에 장벽이 생기는 느낌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절대 대답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서 관객들에 선사하고 관객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지는 자신의 것이니까 나는 만들고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감정 느끼게 하고 싶고 장벽을 만들고 싶지 않다.

 

 

 

-좋은 노래 많이 만들었는데 어떻게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도 뮤지컬 창작을 많이 하는데 좋은 곡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팁을 준다면.
 한국만의 뮤지컬을 작곡하려 한다는 얘기 들었을 때 기뻤고 응원해주고 싶었고 다음에는 꼭 한국 창작 뮤지컬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작곡가로서 얘기하고 싶은 건 항상 생각하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자, 열정적으로 느끼고 내 모든 힘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씀 드리는 이유는 내가 진실되게 사랑하고 좋아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작업으로 이어진다면 그걸 듣는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이해하고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느낄 때도 똑같이 느낀다. 작업할 때 이것과 어떤 교감을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하고 사랑하고 열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가 형성돼야 도와줄 수 있다. 한국 뮤지컬이 몇십년간 크게 발전하고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작곡가들, 작가들,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얘기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점점 늘어날 거라고 본다.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을 보는 날을 고대하겠다.

 

-안무팀이 변박 사용한 곡들 때문에 연습 많이 했다고 하더라. 변박 많이 사용한 이유는 뭔가. ‘파퓰러’라는 곡이 수정 없이 한번에 완성했다고 들었다. 탄생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전체 캐스트와 음악 감독님들에게 노트 드릴 때 <오즈>의 나라를 참고하고 싶었고 현재 세계와는 다른 부분이 보여지길 바랬다. 그런 의미에서 안무가도 안무를 짤 때 사람들이 볼 때 브로드웨이 스타일이구나, 누군가 스타일이구나가 아닌 굉장히 새롭구나 느낌이 드는 안무로 신경썼다고 하더라. 그래서 안무가가 작곡가에 요청할 때 안무로 쓸 수 있는 음악을 박자 다르게 한다든가 다른 음악과 어딘가 다르게 변박을 준다는가 주문을 했다.
 가끔씩 어떤 노래들이 술술 풀려 한번에 써지는 경우가 있다.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전달하려고 하는지 명확하면 망설임 없이 죽 써진다. 글린다 캐릭터 경우 작가도 처음부터 쓸 때 이런 캐릭터고 모든 씬들에서는 그를 과감하게 투영시킬 수 있도록 쓰기도 했고 작곡가에게 그를 전달하기도 했다. 글린다 캐릭터는 워낙 설명 잘 해주기도 했고 읽었을 때 이런 캐릭터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가 명확했기 때문에 또 이런 여성성 캐릭터는 고등학교 때 많이 접하기도 했고 쑥 써내려갔다. 근데 그와 반면에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중요하거나 여러 캐릭터들이 같이 모여 있다거나 조심해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여러가지 버전의 노래 쓰기도 하고 같은 테마를 이 노래 저 노래 써보고 겨우겨우 탄생하기도 하고 그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엘파바 경우 <중력을 넘어서> 등은 전달하는 바가 명확하니까 쑥 썼고 끝까지 그 곡이 유지됐다.

 

-음악 작업 외에 평소 좋아하는 것은 뭔가, 책 티비 드라마 여행 등 취미가 있으신지.
 엄청난 테니스 광이다. 잘 모를텐데 브릿지 게임을 좋아한다. 이 두 개가 취미다.

 

-뮤지컬 애니메이션 작곡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음악 전공했는지, 첫 작품 때 20대 초반이었는데 그렇게 젊은 작곡가에게 누가 음악을 맡겼는지. 애니메이션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다시 뮤지컬로 돌아온 이유는 뭔가.
 음악적 재능은 눈동자 색처럼 타고나야 한다. 음악에 대해 꼬마 때부터 사랑했고 관심 있었고 음악 들었을 때 다른 느낌 다가오고 하는 게 있었다. 뉴욕 근교에서 살았는데 부모님은 예술적 배경 없었고 극장 가기 좋아하는 부모님이었다.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서 음악을 사랑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이론 트레이닝 받았고 대학에서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 공연 이해해야 하니까 전공은 연극을 했다. 졸업 후에 뉴욕에 와서 일을 찾을 때 행운이었던 게 팝 락앤롤 등이 극장에서 점점 영향 미치고 시작할 때였다. 뮤지컬에도 다양한 음악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까지 많이 익숙해진 뮤지컬 작법이 아닌 새로운 아티스트들 젊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음악을 주문했다. 때를 잘 만나서 어린 나이에 <가스펠>, <피핀>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지금도 작업 중이다. <슬럼독 밀리어내어> 작곡가와 협업을 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드림웍스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 작업 중이다. 왜 다시 뮤지컬을 선택했냐면 <위키드>가 <위키드>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위키드>는 너무 만들고 싶었고 작업하고 싶었고 창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극장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원작은 어둡고 풍자적인 내용인데 노래는 밝고 행복한 느낌이다. 비극적 느낌을 살릴만도 한데 의도를 했는지.
 의도했냐고 물어봤느냐면 의도했다. 소설도 마찬가지고 <오즈> 자체가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사회를 풍자하는 부분도 있고 어두운 부분도 있고 이게 현실적이고 진실성 있게 다가왔던 건 현실과 맞닿아있기 때문. 두 주인공이 어두운 부분 힘든 부분에서 역경 속에서도 성과를 이뤄내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고, 또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그런 부분에 희망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정치적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부분인가. 음악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한국 분들은 많이 모르실텐데 프레드 필립스(정확하지 않습니다;;)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 장례식 가서 피켓 시위를 해서 논란을 야기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죽었을 때 어떤 기자가 유명 잡지에 기고했었는데 이 사람은 <위키드>를 봤었어야 했다고 적었다. 거기에 “만약 봤으면 모든 사람을 단결해서 공공의 적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한 마음으로 미워할 수 있었다”라고 돼 있었다. 슬프게도 자주 정치적으로도 힘을 모으기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가상의 인물, 가상의 단체로 공공의 적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은 쉽사리 넘어가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유지되어온 부분인데. 한국 역사는 잘 모르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역사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단결하려고 하게 한 적 있을 거다. 미국은 100개도 넘는다. 이라크만 봐도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놓고 전쟁 선언하고 전쟁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 깨달으니 그게 거짓이었고 존재하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모든 사람 분노했었고 큰일 벌어졌구나 했지만 당시 권력이 있는 사람이 가상의 적 존재한다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고 따라가게 되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얘기도 그가 하고 있는 부분 보면 이런게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어떤 대상이 필요할 뿐이지 그 대상이 정말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동성애자에 대한 공격이 빈번한데 이후엔 그게 이슬람교도 될 수 있고 집시도 될 수 있고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미워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미국도 마찬가지고 한국도 마찬가지고 천만다행으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복을 받은 거기 때문에 사람의 책임감은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액면 그대로 진실인지 생각해보고 다시금 생각해보는 게 중요할 듯하다. 물론 <위키드> 작품이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다거나 정치적 부분에 대해 모두가 느끼게끔 드러나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주인공의 우정이라든가 사랑, 유머도 있지만 정치적 의견도 분명 들어가 있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한국에서는 아이와 볼 수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 꿈과 희망의 이야기, 편견을 넘어서려는 이야기 등 동화적으로 포장돼서 홍보가 됐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더 잘 팔린 부분도 있다. 원작자가 담으려는 정치적 함의가 한국에 넘어오면서 희석됐다고 본다. 원작자가 보기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작품은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많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신 이야기를 갖고 봤을 때 궁금해하는 걸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다. <위키드>가 10대 소녀들에게 인기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들만의 감정이 있고 가져가길 원하는 이야기도 있다, 성인 관객들에게 또 어필하는 부분이 있고.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없는 관객들은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관객석 보면 꼬마 숙녀들이 글린다 엘파바 옷을 입고 오고 남자애들 피에로 옷을 입고 온다. 반면에 어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인용하는 것으로 <위키드>가 사용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감사의 말 드리고 싶은데 오늘 미리 준비한 게 없어서 답변도 준비된 게 없었다. 진실되게 말할려고 노력했다. 깊이 있는 질문, 다양한 시각에서 나온 질문이 있어서 다양하게 답변했다. <위키드> 작품을 가지고 이런 얘기 나눈 건데 한국 창작가들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진실된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각도를 시도해보고 애기 나누면 뮤지컬이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자리 마련되는 것 자체가 기뻤다.
 다시 한번 감사하고 흥미있는 질문 던져주셔서 생각할 기회가 된 것 같아 좋았다. 한국 처음 왔기 때문에 방문한 것 자체가 기쁘고 한국이라는 나라 조금이나마 보게 돼 기뻤다. 특히 여러 나라 많은 프로덕션 봤는데 한국 프로덕션 수준 높아서 긍정적이었고 기쁜 부분이다. 이런 부분들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겠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아래처럼 썼네요. 기사는 참 짧게 들어갔는데 기자간담회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죠?

앞으로도 이렇게 전문을 가지고 정리해보겠습니당. ㅎㅎ

 

“위키드 한국어 버전은 세계 여러 버전 중 최상”



ㆍ작곡가 스티븐 슈왈츠 첫 내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듣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뮤지컬 <위키드>의 작곡가 스티븐 슈왈츠(66·사진)가 처음 한국에 왔다. 2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위키드>의 매력에 대해 강조했다. <위키드>는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어 버전으로 공연 중에 있고, 내한공연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39만명이 관람했다.

슈왈츠는 처음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접했을 때부터 뮤지컬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초록 마녀와 하얀 마녀 위주로 다시 쓴 작품이다. 흔히 ‘나쁜 마녀’로 알려진 초록 마녀가 실은 불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받는 선인이고, 반대로 하얀 마녀는 허영에 가득 찬 악당이라는 설정이다. 그는 이 작품은 ‘모든 사람들의 근간에 깔려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성애자 탄압 등을 사례로 꼽은 그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실체도 없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권력을 획득해온 사례를 너무도 많이 경험해왔다”며 “<위키드>는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사람의 책임감은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슈왈츠는 지난 22~23일 캐스팅별로 <위키드> 한국어 공연을 관람하고 배우, 제작진과 작품에 관한 의견도 나눴다. 그는 “<위키드> 한국어 버전은 세계 여러 버전 중 최상”이라며 “배우들의 수준, 음향과 앙상블이 인상적이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히 객석 반응에 대해 “어떤 나라에 갔을 때는 영어로는 이쯤에서 ‘터진다’ 하는 부분에서 안 터지면 속상했는데 한국에서는 다 웃음이 나오고 또 뜻하지 않은 부분에서 웃음이 나오는 게 특색 있었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26세 나이에 작곡한 뮤지컬 <피핀>, <갓스펠> 등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천재 작곡가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노트르담의 꼽추> 등에서도 히트곡을 남겼다. 지금까지 3개의 아카데미상과 4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위키드>는 그의 대표작으로 10년 넘게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흥행작으로 손꼽힌다.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 ‘널 만났기에’(For Good) 등이 특히 사랑받는 대표 넘버다.

슈왈츠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 작곡가들에게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조언했다. “진실로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야 열정을 쏟을 수 있고 그 열정이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도 그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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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에는 독도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일 1905년 독도 점유 군사적인 목적 때문”

 

 

일본이 러일전쟁에 대비해 독도에 설치한 망루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동도와 서도에 1개씩 설치했으며 연두색 선은 망루에서의 관찰 가능 범위를 가리킨다.

ㆍ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일본 ‘메이지 해전사’ 발굴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략적 거점으로 1905년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기 훨씬 이전인 1899년부터 독도 일대를 해군기지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지학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86·사진)은 최근 일본이 1899년 독도에 군사기지를 세우고자 했다는 내용이 담긴 <극비(極秘) 메이지(明治) 37~38년 해전사>를 발굴했다. 메이지 37~38년은 러일전쟁(1904~1905) 시기다. 그는 이를 토대로 20일 열리는 역사연구소(소장 조용욱) 문화포럼에서 ‘독도문제와 한·일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10개년 군비증강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1898년 4월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해군 장교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파견돼 전쟁을 참관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통신과 해저케이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계 최고의 항해력을 자랑하던 스페인 함대가 미군이 전함에 설치한 무선 전신시설로 서로 연락해 협공하는 작전으로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군사 전략적 가치 간파
러일전쟁 거점 삼으려 해저케이블 설치 추진
독도 망루 1905년 준공 전함과 무선통신 구축


최서면 원장
아키야마는 러일전쟁에 대비해 무선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유일한 방어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1899년 6월 외무대신에게 무선기술 개발과 망루 설치를 제안했다. 망루는 전투를 지휘하는 곳이다. 그가 제시한 안에는 대만에서 시작해 일본과 한국에 무선 망루를 세우는 계획이 들어갔다. 이어 석 달 만에 이 안에 대한 허가가 떨어졌다.

일본은 이후 자국의 규슈와 주 고쿠, 한국의 죽변만(울진), 울산,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에 망루와 통신용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다. 실제로 러일전쟁을 지휘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한국의 진해에서 무선 전신을 받고 지시를 내렸다.

최서면 원장은 “일본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였고 이를 재확인하기 위해 1905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지만, 1899년부터 군사적 목표 아래 기지를 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독도는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는 러시아의 동해 종단 계획과 일본의 동해 횡단 계획의 교차지점에 있다.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일본 군함이 독도를 여러 차례 실사했다. 일본 해군은 러일전쟁의 시작점인 1904년 5월15일 중국 뤼순항 전투에서 최신예 해군 전력의 3분의 1을 상실했으나 이후 울릉도에 망루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전력 부족을 보완했다. 독도 망루 설치는 1904년 9월25일 해군 군령부가 조사를 명령하면서 시작됐다. 1905년 7월25일 기공해 8월19일 준공했다.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쓰시마(對馬)에서 격파한 뒤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서 동해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러일전쟁은 종결된다. 러시아 발틱함대 사령관 로세스트벤스키 중장이 중상으로 의식을 잃은 채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곳은 울릉도 서남방 약 40해리 지점이었고, 함대 지휘권을 장악한 네보가토프 소장이 주력 잔함을 이끌고 일본군에 투항한 곳도 독도 동남방 약 18해리 지점이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 흐름에서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며 “독도 경제수역 확보로 어장과 대륙붕을 이용하려는 경제적 측면보다 군사적 측면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내용이 어렵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이 '군사적 목적' 때문이고

이미 그 계획이 1899년 세워졌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게 밝혀졌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일본은 지금까지 독도가 원래 일본 영토였고

이를 재확인하기 위해 1905년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최서면 원장이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그보다 앞선 1899년부터 군사적 목표 아래 치밀하게 독도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위 일본 주장은 틀린 셈이지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요.

저는 기사에 인용한 장석흥 국민대 교수의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이 주장하는 바가 단순하게 영토 갈등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거죠.

아베 총리 등장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떼어서 보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참 착잡합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편입'이라는 용어도 문제입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1905년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고 하다가

'편입'이라는 용어가 "이전까지는 영토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므로

'편입 재확인'이라는 용어로 번복했습니다.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다른 근거도 있죠.

또 일본은 17세기 이래 일본의 독도 영유권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1696년 일본의 '독도 1차 도해금지령'에 의해 이 주장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에도 막부는 1695년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돗토리현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고

1696년에는 도해 금지(바다를 건너는 것을 금지)를 지시했죠.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독도는 신라시대 이래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한국의 영토로 관리하다.

2) 일본의 1905년 영토 편입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3) 조선의 공도 정책은 왜구의 침탈로 인한 정책이지, 실효지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4) '도해면허'는 타국에서 어로 활동을 해도 된다는 허가서의 성격이므로 일본 스스로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5)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 탐욕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조약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 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위 입장은 기억해두면 좋겠네요.

 

 

 

 

 

Posted by 누런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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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 <그것이 알고싶다>와 그에 힘입은 실시간 검색어에 덕에 되살아났다. '형제복지원'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는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에게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2년 전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씨가 쓴 <살아남은 아이> 출간 당시 이 책을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동저자 전규찬 선생님과 함께 저자 인터뷰를 했다.

기사가 나오고 난 뒤 당시 "살아남은 아이의 책 제목처럼 꿋꿋하게 살아남아 보이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한종선씨께 받았다. 보잘것 없는 내게 그런 문자를 보내주셔서 오히려 내가 힘이 됐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으로 인해 당장 뭔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돼 울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살아남은 아이'의 꿋꿋함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 꿋꿋함은 결국 누군가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믿음의 가장 큰 증거일테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한 인간의 삶은 적어도 바꿀 수 있다.

종선씨는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이 글 쓰는 게 많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물었을 때 제가 그랬죠. 죽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고통은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겪었던 것에 비하면 견딜 수 있는 정도였어요."

"분노에 뻗쳐서 사이코패스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교수님은 어떤 실망을 할까. 그런 것이 내 머릿속에 다 있습니다. 그것 때문이라도 일단 끝까지 버텨야 해요."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씨가 쓴 <살아남은 아이> 표지. 그다지 많이 팔리진 못했다고 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심 있으신 분은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건 특성상 생존자가 멀쩡한 정신으로 남아 자신의 기억을 서술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이다.

 

아래는 당시 썼던 기사

9세 때 강제수용 ‘형제복지원’ 생존자, 그는 아직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종선씨가 1984년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경험한 구타 장면을 묘사한 그림. 한씨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시 복지원에서 자행된 고문과 형벌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ㆍ‘살아남은 아이’ 낸 한종선씨·전규찬 교수


1984년, 당시 9살이던 한종선씨(37)는 영문도 모른 채 누나와 함께 검은 지프차에 태워졌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하자 뺨에 손바닥이 날아왔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한씨가 끌려간 부산 형제복지원은 겉으로 사회복지시설임을 내세웠지만 일상적 인권유린이 벌어지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소대 단위로 편제된 이 ‘수용소’는 중대장·소대장·총무·조장 등의 위계서열로 관리됐다. 관리자들은 ‘한강철교’ ‘전깃줄’ 등의 기합을 주거나 한겨울에 맨몸 위에 찬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유는 없었다. 때론 날이 침침하다며 매타작이 이어졌고 맞아 불구가 된 사람도 있었다.

12살짜리 누나는 성적 유린을 당하고 정신을 놓았다. 주변 산에는 맞아 죽은 이들의 새로운 무덤이 계속 생겨났다. 전국 최대 규모의 형제복지원은 많을 때는 3900명을 수용하면서 매년 국가로부터 19억원을 지원받았다.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의 성공을 위해 ‘사회정화’를 내세웠다. ‘내무부 훈령 410호’에 따라 떠돌이·앵벌이·거지·행려병자 등의 ‘부랑인’들을 잡아들여 이곳에 가뒀다.

1987년에야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10여년 동안 513명이 복지원에서 죽어나갔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비롯해 부산시장까지 형제복지원 원장인 박인근의 구제에 나섰다.

결국 박인근은 횡령 등의 죄목으로만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내무부 훈령에 따른 적법한 행위였다”며 무죄 처분했다. 한창 조사 중일 때 당시 대통령 전두환은 “거리에 거지를 없앤 훌륭한 사람”이라며 박인근을 칭찬했다. 아직도 박인근은 사회복지사업에 열심히 나서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진 듯했다. 생존자 중 거의 유일하게 당시의 기억을 제정신으로 증언할 수 있었던 한씨는 올해 여름부터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흘러간’ 사건에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15일쯤 됐을까, 한 사람이 나타나 한씨에게 권유했다.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글을 써 보세요. 난 그걸 논문으로 써 보겠습니다.” 바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였다.

한씨는 그 길로 1인 시위를 접었다. 경북 구미의 집으로 내려가 바로 공책을 샀다. 초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한 그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첫 장을 펴자마자 줄잡아 열 장을 써내려갔다. 그러고는 3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가끔씩 내려가 ‘숙제검사’를 했다. ‘빠따’는 어떻게 맞았는지, 고문과 형벌은 어떤 형태였는지 그림으로 그려보라고도 제안했다.

그렇게 나온 <살아남은 아이>(문주)는 한씨의 수기를 앞에 내세우고, 당시 시대상과 사건의 맥락을 짚은 전 교수의 논문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반복되는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를 다룬 인권활동가 박래군씨가 글을 덧붙였다. 그간에도 여공과 성매매집결지 여성, 판자촌 도시빈민 등 이른바 ‘하위주체’의 삶을 복원하는 구술사 연구는 있었다. 하지만 학자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갖다 쓰는 방식이었다. 전 교수는 한씨를 ‘대상’이 아닌 ‘주체’로 불러 ‘대화적 글쓰기’를 시도했다. ‘후견인 혹은 해설자’를 자처했고, 자신이 가진 ‘명망’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만을 했다.

26일 전 교수의 연구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전 교수는 “최근에 벌어진 주폭 단속이나,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안전한 국가’에서 여전히 단속과 배제 담론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간간이 터지는 대규모 복지시설 비리는 ‘형제복지원’이 ‘오래된 미래’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 단속과 배제의 대상은 언젠가 ‘우리’가 될 수도 있다. 형제복지원에 갇힌 이들 중에는 “일찍 귀가하지 않고 거리를 배회한다”는 이유로 끌려온 평범한 회사원도 있었다. 자갈치시장의 노점상, 농촌에서 흘러든 일용직 노동자,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까지도 잡혀왔다. 자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 실적을 위해 강제로 잡혀 온 이들이었다.

조르조 아감벤을 들어 수용소나 죽음을 말하는 진보담론은 있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 희생됐거나 희생되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말하면 ‘도가니 2’아니냐며 아는 체할 뿐이죠. 둘의 차이나 공통점을 말하고 사유하지는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지만 막상 집단학살이나 사회적 죽음에 대해 말하는 법이 거의 훈련돼 있지 않습니다. 작가나 예술가, 지식인과 저널리스트들이 제대로 된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한씨에게도 이번 작업은 특별했다. 그는 복지원 생각이 날 때마다 머릿속에 ‘칼’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책에서 “나는 결코 사회의 잠재적 범죄자,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 게시판의 ‘죽고 싶다’는 고민상담 글에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위로하는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여의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뉴스로 봤어요. 소통하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도 칼을 잡는 대신에 피켓을 들었을 겁니다.”

한종선씨(왼쪽)와 전규찬 교수가 지난 26일 전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씨가 직접 만든 형제복지원 모형 앞에 앉았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전 교수는 “정말 사회 안보를 위해서는 어떻게 잠재적 범죄자들을 실제 범죄자가 안되도록 경로 변경을 시킬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종선씨도 사이코패스가 아닌 소설가, 예술가, 창작자로 바뀌었잖아요. 다른 경로로 희망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건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인간으로 대면하고자 하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한씨는 대화 도중 ‘추위’를 호소했다. 그는 아직도 복지원 시절의 후유증으로 작은 추위도 견디지 못하고 한낮에도 전깃불을 켜놔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허리를 다쳐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생활하면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와 누나를 돌봐야 하는 현실도 변함이 없다. 시간이 많이 지나 박인근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고, 특별법 제정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버티겠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잊혀진 ‘무명씨’가 아니라 ‘한종선’으로 사회 속에 걸어들어왔기 때문이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그리고 당시 모두 싣지 못했던 책 안의 그림들. 종선씨가 직접 그렸기 때문에, 그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는 것일수도. 끔찍하지만, 몇 장 올려본다. 임신부나 노약자, 청소년들은 가급적 스크롤를 피하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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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수현 2014.03.25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근혜정부는 통일을 외치고 있습니다.
    통일.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것입니다.
    허나, 저런 실상이.. 북한보다 못한 저런 파렴치한 실상이..
    저렇게 일어나고 있다니.. 솜털이 곤두스고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하... 정말.. 통일이 되고나서 저런 몰상식한 복지원들이 판을 칠것을 생각하니..
    역한기운이 솟구쳐 오릅니다..
    대한민국이 안전한 국가라구요.. 그 어느곳도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런 근본을 처리하질 못하면, 대한민국의 복지는 분명 겉치래 뿐일 것입니다..
    저 대상이 혹여 나의 소중한 가족이 될까, 혹은 나의 친구가 될까..
    두렵고 또 두렵네요..
    모두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또 내주세요..
    우리 모두가 듣고 분노할 수 있게 목소리를 크게 내어주세요..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음짓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봅니다..

기본소득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그런데 어제 기사 <“일자리·복지로는 한계… 국민 누구든 먹고살 기본소득을 달라”>를 보면서 반가운 마음에 문득 지난 번 인터뷰한 기사가 떠올랐다. (두진이를 낳은 뒤 병원에서 기사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ㅎㅎ)

 

그때 인터뷰한 제임스 퍼거슨 스탠포드대 교수는 인상 깊은 말을 많이 했다. 기사에 미처 쓰지 못한 말들을 메모해 둔다.(통역으로 받아 친 것을 이해하기 쉽게 다소 윤문을 했음을 밝혀둔다. 그 과정에서 혹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하시길...)

 

인상 깊었던 농담은 바로 이것.

 

"이런 우스개가 있다. 미국 남부의 한 마을에 직물회사가 있었다. 원래는 이 직물회사에 모든 마을 주민들이 다 고용이 돼 있었다. 그런데 기계화와 자본집약화가 진행되면서 결국 이 공장에는 사람 하나와 개 한 마리만 필요하게 됐다. 사람은 개한테 먹이를 줘야 하기 때문에 필요하고, 개는 사람들을 기계 가까이 못 오도록 쫓아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제 말 그대로 '노동자'되기도 힘든 시절이다. 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비정규직, 계약직 자리 하나 얻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퍼거슨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현재 임금노동이 기본이 아닌 시대에서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는 것이 경제고아다. 이 시대는 경제고아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면 이 경제고아들을 내칠 것이냐. 예전에 우리가 고아들을 모아서 쓰다듬고 보듬고 연대했듯이 사실 경제고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임금노동자가 아닌) 잉여라는 이 사람들이 이미 사회의 다수가 됐다면 다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말 그대로 "나의 노동을 더 이상 이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고전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당은 노동자와 대중을 동일시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오히려 혜택을 받는 범주가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꼭 노동을 해야만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이 땅에 살아가는 것만으로 우리는 뭔가를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알래스카는 내가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고 등록이 돼 있으면 거기 있다는 이유로 알래스카의 자원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농부가 자기 땅에서 사탕무를 재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탕무를 경작하다가 갑자기 그 땅에서 석유가 솟아났다. 그러면 그 석유는 나의 정당한 노동에 대한 가치라고 볼 수 있는가. 그건 아마도 지금 내가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현재 돌아가고 있는 산업 자체가 이렇게 석유가 샘솟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제는 절대 다수의 노동력이 아니라, 몇 명의 소수정예가 굉장히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서 마술과도 같이 돈이 뿜어져 나온다. (...) 과거에 직물공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노동자이고, 우리의 손때가 묻은 공장은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제는 소수의 몇 사람들이 거대기업을 굴린다고 했을 때, 다시 이 기업은 나의 것이다 라고 주장하면 폭력적인 주장이 된다. 그랬다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떨거지가 되는 거다. 더 억압적인 주장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모두 '기본소득'에 동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냐 할 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들어보시길.

 

"문제는,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눈치채지 못하는데, 인류학자들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는 현상이 있다. 바로 포멀섹터(정규직 등)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사회부조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친지, 가족 등 빌붙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자기가 받고 있는 임금으로 부양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지고 있다. 재밌었던 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본소득을 입안한 대표적인 집단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었다는 거다. 어차피 부양할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러자면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그들에게 줘라, 차라리 나는 그만큼 세금을 내겠다고 나오는 거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가장 많은 유형이 아마도 부모님에 기대는 것일테다. 50대의 탄탄한 정규직 직장을 갖고 있는 부모님들이 취직 못하는 20대 자식들에게 바로 현금 혹은 현물을 쏴 주지 않는가. 그만큼 세금을 거둬서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주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다. 물론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건 아깝지 않지만, 누군지 모를 놈에게 돌아가는 돈은 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어쨌거나 이치는 그렇다는 얘기다.

 

이 분이 바로 제임스 퍼거슨 교수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2042135425&code=960201

 

[2012-12-04]“정규직 기반 복지국가, 구조조정 확산에 한계 봉착”

 

ㆍ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 교수 연세대 초청 강연
ㆍ“‘기본소득’ 보장으로 양극화 해소할 새 모델 찾아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오늘날 ‘정규직 임금노동자’조차도 얻기 쉬운 지위는 아니다. 상당수는 비정규직, 시간제근무, 아르바이트, 그것도 아니면 실업자나 노숙자 혹은 ‘잉여’로 살아간다.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도 나돈다. 문제는 이런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복지국가’ 모델조차도 정규직 임금노동자가 사회의 절대적 다수였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53·인류학·사진)는 지난주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초청 강연(29일)과 한국문화인류학회 가을학술대회(11·30~12·1)에 참석해 이런 문제의식을 펼쳐냈다. 퍼거슨 교수는 지난달 29일 연세대 강연 전 인터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실업률이 40%가 넘는 나라에서 임금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북유럽식 복지모델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본래 유럽식의 사회보험제도는 정규직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시행됐다. 이들의 배우자·자식은 피부양자로 복지에 편입됐다. ‘정규직 노동자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적 문제를 관리하는 태도는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일부 유럽에서조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확산으로 ‘정규직 임금노동자’라는 복지국가의 기반이 허물어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가 남아공에서 찾아낸 건 바로 그 이후 우리가 개척해 나가야 할 ‘미래’다.

 

퍼거슨 교수는 남아공의 ‘현금지급식’ 사회부조를 소개한다. 남아공은 전 인구의 30%인 1500만명의 국민들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극빈지역은 75%가 넘는다. 아동지원보조금의 경우 결혼 유무를 따지지 않으며, 아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돌보는 자인지 여부만을 조사한다. 현재는 모든 국민에게 매달 15달러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재산·노동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매월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소득을 지급) 정책까지 입안돼 있는 상황이다.

 

우파들은 ‘공짜’로 제공되는 복지가 의존성만을 조장한다고 말하고, 좌파들은 현금 지급이 사람들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계로 몰아넣어 타인과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퍼거슨 교수는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은 아예 배제된 자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 돌아올 수 있게 만든다”고 반박한다. “예컨대 교통비가 부족해서 장소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이들은 결국 고립됩니다. 이들에게 현금을 지급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데 쓰게 만들면 다시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적은 액수라도 삶을 굉장히 변화시킵니다.”

 

퍼거슨 교수는 “지금 우리가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혜택을 받고 있는 부류”라며 “남아공에서도 보듯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의 부류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자가 곧 대중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소위 ‘잉여’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미 사회의 다수가 됐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사람들을 여전히 국가 바깥의 소외된 존재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기본소득을 지급해 이들을 자기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인정해야 할까요.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기본소득의 입장은 임금노동자 중심의 정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급진적인 정치의 포문을 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노동’을 하지 않는 이에게 ‘소득’을 지급한다는 게 불편할 수 있다. 퍼거슨 교수는 이런 예를 든다. “미국 알래스카 주민들은 단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알래스카에서 나오는 자원에 대한 소득을 받습니다. 전통적인 노동가치설은 노동 외에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사탕무를 재배하고 있는 농부가 자신의 땅을 경작하는 과정에서 석유가 솟아난다면 그것은 노동으로 생긴 가치인가요, 아니면 그 땅에 살고 있기에 생긴 가치인가요. 내가, 우리의 조상이 이 자연을 가꿨고 여기가 내가 사는 땅이라는 이유로 그곳에서 생산된 가치에 대한 권리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노동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합니다.”

 

남아공의 기본소득 입안자들이 본래 신자유주의자들로 분류되는 이들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퍼거슨 교수는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라는 거대 ‘괴물’의 탓으로 돌리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것은 곧 과거의 ‘노동’이나 ‘복지국가’ 패러다임에 갇혀 신자유주의 비판만 하는 사이 프레카리아트의 고통은 가중됐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는 “어떤 곳에서는 개혁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떤 곳에서는 반동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나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 ‘완전고용’을 고집하며 떠들어대기보다 어떤 의미에서 보다 더 급진적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밑바닥’을 깔아 주는 일이다. “누구나 기본적인 수입을 올리고, 기본적인 교육·의료 등을 받는 토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서 어떤 이는 정규직, 또 다른 이는 비정규직, 또 다른 이는 비정부기구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다르게 살아갈지라도 출발점은 같게 하자는 거죠.”

 

글·사진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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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 시절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쉬시는 게 오히려 전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와 편파왜곡으로 점철된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들이나 댓글선거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정원의 일부 고위층과 직원들이 그렇다. 제발 일 좀 하지 말고 쉬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 분들은 돈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기에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알아서들 하시겠지. 그러나 정말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대다수일 거다. 언젠가 들었던 윤구병 선생의 강연도 그랬다.

 

"옛날에 모든 노동은 필요노동이었습니다. 지금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최루탄 공장에도, 대량살상무기 공장에도, 유해색소를 만드는 공장에도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열에 아홉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잉여노동입니다. 삶에 불필요한 것을 생산하니까요.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공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먹고살기 위해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단결할 수도 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서로 이익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삶에 해악을 끼치는 것을 생산하는 줄 알면서도 그저 돈을 주니까 우리는 그것을 만드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극이다. 생태사회주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그린레프트>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곳곳에 묻어났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오염을 일으키고 파괴적인 산업에 대개 의존하고 있다.노조원들이 생태사회주의 정치에 결합되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 대안적 생산양식에 대한 요구는 매우 중요하다. 무기 대신에 어째서 풍력 터빈을 생산하지 않는가? 자동차 대신 어째서 버스나 기차를 만들지 않는가?"(182쪽)


해악을 끼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없는 것들도 무지하게 만들어낸다. 어차피 인생을 통틀어 한 번밖에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이 많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을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쓰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로 구입하기를 부추긴다. 심지어 우리는 폐기물도 잊지말고 꼭 내놓아야 한다. 그게 없으면 폐기물 처리를 하는 업체가 도산하기 때문이다. 만약 집 뒤 텃밭에서 비료를 만들면 비료 회사가 도산한다. "자본주의는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원래 공짜였던 자원을 팔 수 있게 만든다. (...) 그처럼 봉쇄된 접근으로 말미암아 낭비적인 중복 생산이 발생한다."(87쪽)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가 나오고 있다. 최근 붐이 일어나고 있는 협동조합은 대표적 예일 것이다. 생산을 하는데 조합원들끼리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쓸데없고 필요없고 심지어는 해악까지 일으키는 물건들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이 협동조합의 규모가 아직은 너무나도 작다는 사실이다. 최루탄을 만들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기업들은 무지하게 덩치가 큰 기업이다. 이걸 현재로서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거나 인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이라는 사례가 있지만 특수하고 아직은 머나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결국은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을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하에 두려고 시도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결국은 삼성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 것보다 삼성과 대형마트의 운영구조를 민주화하고 사회화시키는 길이 우리가 가진 욕망에 대응하는 길일 것이다. 대형마트를 가고 삼성 휴대전화를 쓰는 지금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편한데, 이걸 포기하고 다른 방식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론 민주적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 자체가 실패할 확률이 높겠지만... 언젠가는 김상봉 교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처럼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린레프트>의 사례들을 참조할 만하다.

 

직접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원의 재분배는 생태사회주의사회의 창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한 사회는 자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자주관리라는 주제는 노동의 자유로운 연대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미 영국에서는 노동자 소유에 기반한 경영 방식인 뮤추얼과 파트너십이 있다. 영국의 슈퍼마켓 존 루이스 그룹은 모든 이윤을 주주가 아니라 파트너십을 소유한 노동자들과 나눈다.

 

(...) 노동자들의 계획 역시 생태사회주의사회의 건설에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산업이 오염을 일으키고 낭비적이며 위험성이 있다. 환경 및 윤리적 고려와 고용 사이의 충돌은 진보를 가로막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그 해법은 환경 파괴적인 산업을 긍정적인 대안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무기 체계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공학적 기술은 풍력발전소 건설에 사용될 수 있다. 생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노동자들이 대안적 생산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가지 예로 1970년대의 루카스항공 프로젝트가 있다. 실직의 위협에 직면한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은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서 제품을 생산한다는 대안적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회사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판매하는 군사 장비 대신 사회에 유익한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가능한 제품 목록은 인상적이며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가늠케 해 준다. 계획된 제품들에는 의료 장비, 재생에너지 그리고 청정 운송 수단이 포함되어 있다. (...)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계획은 묵살되었고,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군용 제품 생산은 계속되었다. (89~90쪽)

 

 

[책과 삶]환경파괴 주범은 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가 ‘출구’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그린레프트
데렉 월 지음·조유진 옮김 | 이학사 | 265쪽 | 1만5000원

 

자동차를 적게 탄다. 타이어 공기압을 채운다. 전구를 효율성 높은 것으로 바꾼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웠던 영화 <불편한 진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만약 영화의 제안을 모든 미국인이 실천한다면 어떨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탄소 배출량은 단 22%가 줄어들 뿐이다. 과학자들은 보통 탄소 배출량이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75%는 줄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생활 습관’의 변화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일회용품을 적게 쓰거나 채식을 하면 좋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개인주의적 접근’에 반대한다. 현재 생태 위기의 핵심은 구조에 있고,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계속 성장해야 한다.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이상주의자, 혁명가로 간주”된다. 성장해서 이윤을 재투자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현대 경제는 안정을 위해 구조적으로 성장에 의존하고 있다. 성장이 흔들리면 패닉에 빠진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상품을 구입한 다음 그걸 버리고 다시 구입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오래 쓸 수 있거나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면 성장은 저하된다. 부족하면 돈까지 빌려주며 소비를 하라고 부추긴다. 이전까지 공짜로 즐겼던 영역, 공유재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주고 사게 만든다. 중복 생산이 벌어지고 낭비는 일상이 된다.

 

공유지나 미개간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로 만들어버렸던 ‘엔클로저 운동’이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 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식민지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장을 통해 우리는 번영했는가? 지난 30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우리가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됐다기보다 그것들의 화폐가치만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20억명이나 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생태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다. 고로 자본주의 경제에 굴복한 일부 녹색당이나, 생태 문제에 무관심한 구 소련식 사회주의와는 뚜렷이 선을 긋는다. 흔히 마르크스는 생태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여기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사회 전체, 한 국가, 또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다 합해도 지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지구의 점유자이고 수혜자일 뿐이며, 마치 한 집안의 훌륭한 가장처럼 그것으로 개선된 상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현재 온실가스의 농도는 지난 40만년 중에 가장 높다. 지난 세기에 기온은 0.7도나 상승했다. 그럼에도 “늘어난 이산화탄소는 식물 성장의 증가와 같은 여러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석유화학 기업 엑손모빌은 이런 연구기관에 한 해 1600만달러를 지원한다. 기후변화가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배출권 거래제’ 같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온실가스는 증가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해악을 동일한 시장 논리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는 폐기물마저 처리해야 할 ‘돈’으로만 보일 뿐이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the more)’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어쩌다 한 번’ 사용할 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 생산의 증가 없이도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장난감을 서로 빌려주고, 카풀을 이용하면 된다. 상점을 가까운 곳에 만들고 서비스가 지역에서 이뤄지게 만들면 자동차 이용이 줄어든다.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더 잘 살 수 있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면 된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건,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하기 싫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생태사회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쓸데없는 것을 떠밀리듯이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꿈 같은 일은 아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움직임이 일고 있고, 그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승리를 일궈내고 있다. 책 말미에 공부하고 참조할 수 있고, 지지와 연대를 시도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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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마 인류 역사상 요즘처럼 행복에 대한 논의가 많이 분출되고 소비되는 시절도 없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배는 부른 것 같은데 왠지 옆구리 한 쪽이 허전하다, 이제 성장보다는 행복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매주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장의 추구에서 행복의 추구로 옮겨가는 것은 하나의 거짓 우상을 또 다른 거짓 우상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든 시민으로서든 우리의 올바른 목표는 단지 행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이유를 가지려는 데 두어야 한다. 건강, 존중, 우정, 여가 등 삶의 좋은 것들을 갖는 것은 행복할 이유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없는데 행복하다는 것은 망상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삶이 잘 되어간다는 망상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그러한 망상을 이데올로기라 불렀으며 그것은 억압과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는 데 쓰였다. (...)

만약 행복이 잘 사는 것과 내적인 연관이 전혀 없는 그저 사적인 기분에 불과하다면, 소마나 두뇌 자극술이 가장 값싸고 효과적으로 행복을 달성해 줄 수단임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왜 우리의 관심이 좋은 삶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행복은 스스로를 돌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가? (206쪽)

 

마음 한 번만 바꿔 먹으면, '행복'이 우리 곁에 찾아올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은 마치 '파랑새'처럼 우리 곁에 있는데 발견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이들도 많다. 한 술 더 떠서 파랑새가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에게 파랑새가 날아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잘 사는 것과 내적인 연관이 전혀 없는 그저 사적인 기분"에 불과하다면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을까. 다들 그렇게 멍청해서 '행복'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일까.

 

'행복'은 추상적이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추상적이지 않다. 되레 행복의 조건은 매우 구체적이다. 정말 우리가 '행복'하려면 책에서 말한대로 "건강, 존중, 우정, 여가 등 삶의 좋은 것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는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말 '망상'이거나 "억압과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빠진 것일수도 있다.

 

맨날 밤늦게까지 야근한 뒤 집에 와서 쓰러져 자는 것이 일상이거나, 비정규직인데다 최소한의 기본적 생활을 겨우 이어갈 수 있는 임금을 받으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내거나 자신만을 위한 여가를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끼기는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의 목표가 즐거움이라는 견해, 사람들이 평생 분주하게 활동하고 고통을 겪는 것이 즐거워지기 위함이라는 견해는 정말 이상한 생각이다."(164쪽)

 

행복은 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리는 것일 텐데, 그러기엔 우리 삶들이 너무도 피곤하다. 

 

 

 

2013-06-15 

[책과 삶]부 얻으려 만족 잃은 우리, 모두에 ‘좋은 삶’ 고민할 이유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김병화 옮김 | 부키 | 376쪽 | 1만6000원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세상이 온다. 그 정도만 일하고도 대부분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임금은 현재와 같거나 좀 더 많을 수도 있다. 인류는 이제 처음으로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기술 발달로 시간당 생산량이 늘어나 필요 노동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거의 일할 필요가 없는 단계에 이른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0년에 발표한 에세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 전망한 미래다. 케인스는 불과 100년 뒤, 즉 2030년이면 이런 여건에 도달하리라 봤다. 전망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1인당 실제 소득은 예상대로 1930년 이후 70년 동안 4배나 높아졌다. 노동시간 예측은 틀렸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은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2030년이라고 해도 주당 15시간 일한다는 건 꿈 같은 얘기다.

 

케인스의 예측은 왜 틀렸을까? 우선 노동자들이 “더 적게 일해도 될 만큼 실질소득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산성은 증대됐지만 그 혜택은 부유층이 가장 많이 가져갔다. 1970년대에는 미국 최고위 최고경영자의 보수가 평균 근로자 보수의 30배를 밑돌았지만 지금은 263배에 이른다.

 

케인스는 ‘필요’와 ‘욕구’를 혼동했다. 필요는 만족시킬 수 있지만 욕구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케인스는 물질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소득이 많아질수록 추가로 얻는 소득의 만족도는 줄어든다고 봤다. 이미 충분한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추가로 1시간 더 일해서 소득을 얻기보다 더 고상한 일에 1시간을 쓰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부자들은 노동시간을 더 늘려 가난한 이들보다 더 빨리 앞서 질주했다. 1000달러짜리 넥타이를 매는 이들을 조롱하며 2000달러짜리 넥타이를 사들였다.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성장을 이루려는 노력은 오늘날 칭송받는 덕목 중 하나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보면 욕심, 질투, 탐욕 등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동력으로 삼아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풍족한 삶을 선사했다. 저자들이 “자본주의는 파우스트적 협상을 기초로 세워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악마와의 계약이 늘 그렇듯 자본주의는 부가 주는 진정한 편익을 빼앗았다. 바로 ‘이제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끝없는 욕망’의 추구가 늘 인정받았던 건 아니었다. 되레 늘 지탄과 걱정의 대상이었다. 중세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돈에 대한 애착은 권력욕이나 성욕보다 더 나쁜 인간의 죄악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비난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렇게 경제적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을 만들어낸 것이 자본주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끝없는 욕구’라는 인간의 원천적 성향을 관습과 종교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불을 붙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은 악덕의 이미지가 강한 ‘탐욕’, ‘허영’, ‘끝없는 욕구’라는 단어를 ‘이기심’, ‘효용’, ‘선호’라는 무색무취한 단어로 바꿔나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 추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공적 복지를 증진하게 만든다고 봤다. 경제학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 됐다. “내가 포도주보다 코카인을 사는 데 돈을 쓰고 싶다면 그저 코카인이 내게 더 효용이 있을 뿐”이다.

 

“어떤 마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가 있다. 도중에 그들은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계속 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오로지 함께 걸어가는 옆 사람보다 앞서겠다는 목표만 남았다.” 저자들은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가를 묻는 것은 금기시 돼 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모든 시대와 문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말했던 ‘좋은 삶’이라는 건 한 쪽 구석으로 치워졌다. 어떤 삶이 더 좋은 것인가를 공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종종 전체주의가 아닌지 의심을 받는다.

 

저자들은 왜 우리가 ‘좋은 삶’을 묻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좋은 삶을 위한 일곱 가지 기본재로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를 든다. 사람들이 이 기본재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주당 노동시간의 제한과 일자리 나누기,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등을 꼽는다.

 

우리에게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는 오히려 “충분한 것을 너무 적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것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에 사람들이 더 게을러지고 창조성은 사라질 것이란 반론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창조성과 혁신을 ‘돈’으로 자극해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은 상상력이 빈곤한 탓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고대 아테네와 로마에는 생산성이 낮더라도 정치, 전쟁, 철학, 문학에서 최고 수준으로 왕성한 시민들이 있었다.

 

오히려 과거에는 노예와 여성의 희생에 기대어 소수 엘리트만 그런 생활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두에게 ‘좋은 삶’을 선사할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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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관에 넣고 못질까지 한 뒤 막 흙을 덮으려고 하는데 깨어난다면 어떤 심정일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실제 그런 사례들이 꽤 됐던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독을 먹고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게 흔했던 모양이다. 한 남성은 복어독에 죽은 것으로 알고 사신을 화장터로 옮겼는데, 갑자기 시신을 수레에서 내려놓자 마자 깨어났다고 한다. 197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교토에 사는 40세의 남자가 복어 독에 중독되어 병원에 실려왔는데, 곧 숨이 멎었고 모든 증상이 뇌사 상태와 일치했다. 하지만 24시간 뒤 남자는 저절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깨어난 뒤 모든 의식이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필사적으로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생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복어를 먹고 죽은 사람은 매장하기 전 사흘 동안 관 옆에 눕혀뒀다고 한다.

 

유럽에는 '안전관'이라는 것도 있었다. 죽은 것으로 알았는데 매장하기 직전 깨어나는 사례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매장돼도 혹시 숨을 쉰다든가 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관에다 설치한 것이다. 실제로 80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리스 정교회 주교가 이틀 만에 눈을 뜨는가 하면, 1905년 영국의 한 의사는 조기 매장을 모면한 219건의 사례, 산 채로 묻힌 149건의 사례를 책으로 엮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안전관'의 모습(출처 : 위키피디아) "봉인된 상자와 스프링으로 연결된 커다란 유리그릇을 시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혹시라도 숨을 쉰다든지 해서 유리그릇이 미세하게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스프링이 튀어 올라 봉인된 상자 뚜껑이 열리고 빛과 공기가 관으로 들어간다. 이와 동시에 스프링이 기계적으로 연쇄반응을 시작하면서 이 루브 골드버그(단순한 일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처리하게 한 장치) 장치의 진가가 발휘된다. 상자의 1m 20cm 위에 매달린 깃발이 휙 움직이면서 종이 울리는데, 이 종소리가 30분간 지속되면 전깃불이 켜진다. 튜브는 산소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확성기 역할도 한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허약해진 사람의 목소리를 증강해 주는 것이다. -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 191쪽

 

'산 채로 매장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극히 일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 토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보여도 가사 상태일지도 모르니 죽은 지 5일이 지나서 매장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기 매장을 걱정하던 영국의 유명한 골동품 상인 프란시스 듀스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에서 머리를 절단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 아이티에 실재했던 좀비 이야기를 다룬 <나는 좀비를 만났다>라는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물론 이것도 기사에는 그렇게 반영하지 못했다. 책의 본질적 내용을 소개하느라...)

 

 

오늘날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사들이 결정짓는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타운젠드 대령의 사례를 보면 그 경계가 꼭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타운젠드 대령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심박동수를 줄여서 자기유도 가수면상태, 달리 말하자면 가사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맥박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면서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고 시체처럼 경직되었는데, 30분간 이를 지켜본 의사들은 대령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의사들이 막 돌아가려고 할 때, 타운젠드 대령은 천천히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언론뿐 아니라 법의학에 관한 학술서에서도 수없이 인용되었으며, '지금까지 인류는 가사상태와 죽음의 차이를 명백히 이해한 적이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르는, 가사상태를 일시적으로 일으키는 질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상태만을 보고 죽었다고 판단한 뒤 매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확장하면, 사회가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사회에서는 마법사가 커다란 도마뱀에서 발라낸 길고 가느다란 뼈로 한 사람을 가리키고 죽음의 주문을 외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병들고 거의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던 일은 실마리를 던져 준다. 죽음이 난무했던 생지옥 같은 서부 전선에서 병사들이 아무런 외상을 입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충격으로 쇼크사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의사들은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공포'가 진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청난 생리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는 마법의 주문에 홀린 사람도 전장의 병사들처럼 교감-부신 계통의 과도한 자극을 받아서 치명적인 쇼크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해석으로도 이어진다. 책은 "뇌는 자신을 품고 있는 육체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202쪽)고 말한다.

 

그렇다면 좀 비약같지만, '공포'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죽었소'라고 하는 권위의 목소리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경우도 있지 않을지.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가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짜로 죽었을지라도 그로 인해 정말 죽어버렸으니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현대의 최신 측정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는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가 발견된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2013-06-22
[책과 삶]좀비 실존 보고서 …아이티 ‘비밀조직’은 범죄자를 좀비로 만들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나는 좀비를 만났다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김학영 옮김 | 메디치 | 404쪽 | 1만6000원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다. 흔히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에 군데군데 상처나고 뜯겨져 나간 몸으로, 두 팔을 내뻗은 채 멍한 표정으로 인간을 향해 돌진하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떠올린다. 1982년 당시 하버드대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실제로 좀비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향정신성 약물을 연구하던 정신과 의사인 네이선 클라인 박사와 그의 동료 하인즈 리먼 교수는 저자에게 좀비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보라는 제안을 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카리브해 연안의 섬나라 아이티였다. 1962년 봄, 아이티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라는 40대 농부는 사흘 만에 숨졌다. 의사 두 명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며 큰누이는 사망증명서에 지장까지 찍었다. 시신은 냉장창고에 20시간 보관됐다가 안장됐다. 그런데 이 ‘죽은 남자’는 18년 뒤 고향마을의 시장에서 다시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 재산 문제로 다퉜던 형이 홧김에 자신을 좀비로 만들라고 청부를 했다는 하소연과 함께. 뿐만 아니다. ‘티 팜’이라고 불리던 서른 살의 여인은 1976년에 공식 사망진단을 받았지만 3년 뒤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는 관자놀이의 상처를 확인한 뒤 딸이 맞다고 직접 확인했다.

 

클라인과 리먼은 아이티 전통 사회에 좀비를 만드는 독성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물질은 적당량을 투여하면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대사활동을 낮출 수 있고, 해독제를 투여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래도 관 속에 들어가 땅에 묻힌다면 산소가 결핍돼 죽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뇌세포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자발적인 행동과 사고를 관장하는 뇌세포는 죽을 수 있지만 이 부분만 온전히 살아남는다면 좀비가 될 순 있다고 봤다. 환자를 완벽히 마비시켰다 손상 없이 되돌려 줄 수 있는 이런 ‘동면 물질’을 발견한다면 현대 의학의 불완전한 마취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이 있었다.

 

저자는 이 독성 물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곧바로 아이티로 떠났다. 아이티에는 ‘부두교’라는 독특한 토속신앙이 존재했다. 이 부두교의 사제들이 마법의 가루를 써서 좀비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소문 끝에 저자는 이 가루를 입수하고 제조법까지 알아낸다.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이 주 성분이었다. 이 독은 죽음에 가까운 심각한 마비를 이끌어낸다. 실제 일본에서도 복어를 먹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화장 직전에 다시 깨어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다시 꺼내진 뒤 ‘좀비의 오이’라고 불리는 독말풀을 먹어야 했다. 이 풀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고기능을 정지시켰다. 좀비가 된 이들은 마음껏 부림을 당했다.

 

하지만 저자는 독성 물질보다 그 너머를 주목했다. 나르시스와 티 팜은 왜 하필 ‘좀비’로 선택됐을까. 가족들의 반응이 힌트였다. 죽었다 살아온 가족이 있으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게 상식일 터다. 그러나 티 팜의 어머니는 ‘그 애는 신의 뜻에 따라 죽었다’면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르시스도 가족들로부터 고향을 떠나라고 종용받는다. 알고 보니 그들은 ‘살아있을’ 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티 팜은 늘 사람들에게 욕을 해대는 무례한 여인이었고 도둑질까지 일삼곤 했다. 나르시스는 가족과 자주 다퉜을 뿐더러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으면서도 전혀 돌보지 않았고 과도한 사치까지 부린 인물이었다.

 

그들을 벌 준 건 누구일까. 지역의 한 주민은 말한다. “모두가 죽였어! 한 사람이 죽였을 리는 없어.” 그 말이 정답이었다. 아이티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 단위인 촌락은 수 세기 동안 내려온 ‘비밀조직’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부두교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이 비밀조직의 수장들은 평소에는 평범한 운전기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 동료를 중상모략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등 7가지 규정을 위반하면 재판을 열었다. 유죄가 입증되면 좀비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가혹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비밀조직은 ‘모두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궁핍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음식이나 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수장은 관할 구역 내 주민들의 민주적 합의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다.

 

‘비밀조직’은 아이티의 독특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1700년대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수십만명의 흑인 노예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본국 사람들의 탐욕을 채워줬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몇 년 동안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죽은 이들만 1만8000명에 이를 정도로 극악한 노동 환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들은 탈출해 ‘마룬’이라는 독립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서구 가톨릭 문화와 아프리카 토속 신앙을 결합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했고 훗날 ‘비밀조직’으로 계승된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식민지의 흑인 노예들은 프랑스에 맞서 무장 혁명을 일으켜 승리하기도 했다. 아이티가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구 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좀비’는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인권침해이자 범죄행위일 테다. 저자는 달리 본다. 부두교 사회에서 좀비화는 사회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조직들의 승인 아래 부과되는 ‘사회적 제재’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문명 사회라는 곳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사형’이 ‘좀비화’보다 더 자애로운 것이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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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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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화 하는 일본>을 보면서 '근대'라는 개념을 새롭게 바라봤던 이전의 책들이 떠올랐다. <중국화 하는 일본>에서 말하는 근대의 개념은 봉건제와 특권귀족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기회의 평등이 이뤄진 시기를 뜻한다. 그리고 과거제가 도입돼 누구나 관료가 될 수 있었던 송나라 시기를 최초의 근대라고 평가한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가 쓴 <잃어버린 근대성들>의 의견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기사참조) 과거제를 통해 능력에 따라 공직자를 뽑는 일은, 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떨 지 몰라도 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는 극히 예외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버트런드 러셀은 1922년 <중국인의 문제>에서 중국이 오래된 낡은 제도와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여전히 당대의 영국은 세습적인 상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조선 혹은 동아시아 역사에 일종의 근대성이 숨어있었다는 얘기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소농 사회'를 근대의 출발이라고 말한다.(기사참조) 소농 사회란 대토지 귀족 중심의 경제가 아니라 토지를 개별적으로 소유한 소농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사회다. 물론 그 시기를 명나라부터라고 보는 데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특권 귀족과 봉건제가 없어진 그 시점을 근대의 출발로 여긴다. 어쩌면 그것은 서구의 '근대'와는 다른 '유교적 근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대=서구화'라는 생각을 무너뜨리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무자비한 서구식 근대화가 가져온 폐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근대화(=서구화)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물결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근대'의 지진아로서, '근대'라는 말만 들어도 서양에 대해 움츠러드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식민 시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당사자들은 이런 호칭을 탐탁치 않게 여기므로 ''를 쳤다)도 이런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은 많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수치로 보면 분명히 이 시기에 GDP는 성장했으며, 그 팩트를 무시하는 것은 어린애가 혼자서 고집을 부리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또 식민지 시기 근대적 경제성장(인구와 1인당 생산이 동시에 30~40년 동안 지속 성장하는 상태)이 이뤄졌다는 사실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과는 다른 말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식민지배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시기 경제성장(연평균 GDP 2.3% 증가)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는 말이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또 대체로 일제의 지배로 이뤄진 근대화가 해방 후 고도성장에도 영향을 끼쳤다고도 본다. (기사참조)

이런 주장과 논리는 탄탄해서 쉽게 반박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근대'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면 완전히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일제시대에 수치상으로 늘어난 GDP 대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어떤 긍정적 의미의 근대를 빼앗겼는지. 또 우리나라의 경제 고도성장이 꼭 일제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나 박정희식 경제성장 정책에 힘입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근대적 속성이 마침 세계경제의 활황 등 좋은 기회를 맞아 폭발적으로 발현된 것인지... 나아가 우리는 옛 근대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동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소개한 3가지 책들에서 말하는 '근대'가 꼭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중국화 하는 일본>이 소개하는 '근대'는 기회의 평등을 주었을 지언정, 나머지 결과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던져놓았다. 이것이 중국화, 신자유주의, 하이에크의 생각과도 비슷했다는 저자의 통찰력(나보다 2살밖에 안 많은..ㅠ)이 놀랍다. 반면  일본식 봉건제는 다 같이 못살고 굶더라도 울타리 안으로만 들어간다면 공동체 구성원들을 보듬어 주었다. 이것이 오히려 사회주의와 가깝다. 어쨌건 이 책들은 역사조차도 "고대 -> 중세 -> 근대"라는 서구적 도식으로 이해해야만 했던 사고 틀을 넓혀준 계기였던 것 같다.

 

 

2013-06-30

“[책과 삶]1000년간 ‘중국화’에 역행한 일본, 휘청거릴 이유 있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중국화 하는 일본
요나하 준 지음·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310쪽 | 1만4800원

 

왜 소니는 삼성에 추월당했을까. 2011년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도 일본을 확실히 넘어섰다.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은 ‘최후의 일격’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뤄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 모델로 여겨졌던 일본이 휘청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모든 일들이 갑자기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미 1000년 전부터 일본은 근대화에서 뒤처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근대’는 상식과는 다르다. 흔히 근대의 출발을 르네상스라고 보지만, 저자는 중국 송나라(960∼1279)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대로 들어섰다고 본다.


 

송나라의 무엇이 이전과 달리 ‘근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이었을까. 송나라는 귀족제도를 없애고 과거시험으로 관료를 뽑기 시작했다. 노력만 하면 지배층으로 상승할 수 있었으니 신분제의 철폐, 즉 기회의 평등이 이뤄졌다. 모든 관료는 황제의 신하였기에 철저한 중앙집권이 가능하기도 했다. 황제의 무소불위 권력은 주자학으로 견제됐다. 황제는 주자학이 말하는 성인의 행동거지를 가장 잘 체화한 자이므로 신하들은 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요구할 수 있다.

 

황제를 중심으로 일극화된 정치질서와는 달리, 경제와 사회제도는 철저하게 자유를 보장했다. 개혁파 재상 왕안석이 실시한 청묘법은 자유시장을 활성화시켰다. 백성들에게 저리 융자를 준 뒤 나중에 수확물을 시장에 갖다 팔아 생긴 화폐로 갚도록 했기 때문이다. 화폐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백성을 한 곳에 가둬 노역에 종사시키던 자급자족적 장원 경영은 무너졌고, 귀족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됐다.

 

저자는 이처럼 1000년 전에 최고의 선진국으로서 시스템을 구축한 ‘차이나 스탠더드’에 세계가 발 맞춰 따라가는 것을 ‘중국화’라고 명명한다. 유럽의 근대 계몽주의조차 송나라에서 체계화한 근세유학, 즉 신보다 이성을 사고의 중심에 두는 철학을 재구성한 것이란 설도 있다. 르네상스의 3대 발명품이라는 화약, 나침판, 활판인쇄는 모두 송나라가 앞서 내놓았다. ‘후진지역’이었던 유럽은 식민지로부터 대량의 은을 약탈해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에야 겨우 중국을 추월한다. 그것도 잠시, 중국은 이제 다시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원을 따져보면 놀랄 일이 아니라 세계가 원래 질서로 되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구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역사의 종언’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탈냉전의 세계는 ‘송나라 스타일’의 축소·복사판이라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정치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일극화됐고(황제), 세계적 규모의 시장경쟁 자유가 우선된다(경제·사회적 자유). 주자학의 방식도 남아 있다. 버락 오바마에게 노벨상을 주면서 ‘세계 최고의 대국답게 행동해 달라’고 읍소하는 것이다. 현대 중국을 떠올려봐도 비슷하다. 무슨 장사든 해도 좋지만 ‘당’에 대한 비판만은 절대 금지다. 역사는 이미 1000년 전에 ‘종언’을 고했던 셈이다.

 

반면 일본은 중국화와 반중국화 세력간의 다툼에서 중국화 세력이 패했다. 전국시대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은 에도시대가 개막되면서 ‘중국화’와는 다른, 완전히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 바로 ‘에도시대화’다. 정치는 소수 지배 가문끼리 직위를 나눠 가지면서 유지됐다. 신분제는 대를 이어 유지됐는데, 소규모의 장원 안에서 자신의 경작 토지만 유지한다면 자손대대로 먹고 살 수 있었다. 다만 ‘중국화’가 기회의 평등을 주는 대신 낙오자를 가차 없이 밟아버렸다면, ‘에도시대화’는 집단 구성원들이 상호부조를 통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일본이 서구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중국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이나 한국은 근대화에 뒤처졌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근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왜 ‘서양화’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남녀평등이나 참정권 보장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는 동시대의 서양에서도 거의 달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와 달리 일본은 1000년 간 중국화를 지연시킨 끝에 사회 전체가 발목이 잡혀 있었다. 마침내 중국화를 감행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시점에 서구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백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중국화와 서양화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 메이지유신이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유신 중반쯤부터 다시 ‘에도시대화’를 택했다. 경작지에 농민을 묶어뒀던 과거와 비슷하게 종신고용·연공서열제로 노동자를 회사에 묶어두었다. 중국화가 하이에크식의 자유시장경쟁을 닮았다면 에도시대화는 케인스주의, 나아가 사회주의를 닮았다. 하이에크가 걱정한 국가에 ‘예속되는 길’은 일본에서 현실화됐다. 사회주의와 군부가 결합된 국가사회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에도시대화의 극단으로 간 것이 타국에 대한 에도시대화의 강요이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발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이후에도 일본은 ‘긴 에도시대’를 유지하게 된다. 70~80년대 중국화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가 불어닥쳤지만 일본은 그 시대흐름에는 역행했다.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인 중국에 맞추지 못했던 일본이 이제와 뒤지는 것은 새삼 새로울 것이 없다. 이제야 일본은 책의 제목대로 다시 ‘중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는 중국화나 에도시대화 어느 쪽을 지지하지 않는다. 중국화로 이뤄진 세계 역사를 이해해야만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구도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누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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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티노 평전의 수많은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저널리즘의 원조'로서의 아레티노다.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겠지만, 그 인상적인 그 부분을 기사에서도 좀 중점적으로 썼다. 비록 생각한 대로 제대로 쓰지는 못했지만...

아레티노는 글로 먹고 살면서, 심지어 비난을 무마하는 대가로 심지어 돈이나 선물까지 받아 챙겼다. 그럼에도 그는 독립적인 위치를 잃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가 자신을 따르라고 했지만 그 제안도 거절했다. 비교적 독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베네치아에 거주하면서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았다.

그가 돈을 벌어들인 것도 물론 부와 명성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1차적으로는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특히 아레티노처럼 집안도 별로인데다 배운 것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재능으로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는 펜 하나만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유럽 최초의 인물이었다. 궁정이나 교회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글을 팔아 생활했다.

오늘날 기사를 무기로 광고와 바꿔먹는 언론사들이 많다. 아마 크든작든 어떤 언론사도 그런 광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레티노의 행동을 비난하기엔, 수세기나 지난 지금까지도 저널리즘의 아레티노의 방식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먼저 회의가 든다.

무엇보다 언론의 실질적 주인이 기업인 곳도 있고, 언론인 행세를 하다가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언론사에 감놔라 배놔라 지휘하는데다, 심지어 국정원까지 파고들어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레티노가 누렸던 언론의 독립성마저 요즘은 유지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아레티노는 자신의 부와 명성을 사람들에 나눠주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턱이 닳도록 그의 집을 드나들었고, 그 사람들은 또 아레티노가 군주와 고위 사제들을 '협박'할 수 있을 만한 팩트들을 던져주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언론사 제보의 시초였던 셈이다. 지금 사람들이 어떤 언론사를 그렇게 믿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수 있을지...

미천한 출생의 아레티노가 부와 명성을 누린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독립성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에 나온대로 "권력을 이용하면서도 권력과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스로가 또 하나의 권력이 되는 자신만의 방식"이었다. 어떤 세력과도 거리를 유지하고 할 말은 해 버린 지라 사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가 죽자마자 교황 같은 권력자들이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해 버린 것도, 그런 그의 저널리즘을 봉쇄하고 나아가 그런 저널리즘의 출현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2013-7-13

[책과 삶]통속작가서 문화 아이콘으로 되살아난 ‘르네상스의 괴짜’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아레티노 평전…곽차섭 지음 | 길 | 400쪽 | 3만원

 

서양 역사상 최초의 포르노그래피 발명자. 한 줄의 문장으로 세상을 뒤흔든 저널리즘의 원조.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괴짜 논객 피에트로 아레티노(1492~1556)를 이르는 말이다. 르네상스를 다룬 책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수백년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단지 돈을 벌 욕심으로 음란한 책들을 쓰고 제후와 명사들에게 협박조의 편지를 보냈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통속작가”라는 비난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읽는 아레티노의 글맛은 오히려 각별하다. 1525년 무렵 벌어진 르네상스판 음란물 단속이었던 ‘체위 사건’에 대해 아레티노는 이렇게 일갈했다. “남자가 여자를 올라타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대를 만든 것도 바로 이것이라네… 사실 가두어놓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일 것이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것으로 도박을 하고, 선서를 하며, 고리(高利)를 놓고… 찢고 끌고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남을 죽이기까지 하기 때문이지.”


라파엘로의 제자였던 줄리오 로마노가 그림을 그리고 마르칸토니오가 판각한 ‘체위’는 남녀 간의 교합 장면을 묘사한 16장의 작품이다. 광장이나 교회에서까지 팔릴 정도로 널리 퍼지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일로 마르칸토니오는 투옥되기까지 한다. 아레티노는 한술 더 뜬다. 적나라한 내용의 시 ‘음란한 소네트’를 지어 판화에 덧붙인 뒤 출간해버린다. 그림과 글이 합쳐진 서양 최초 포르노그래피의 탄생이다.

 

아레티노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재조명됐다. 그의 삶과 저작이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일면을 대변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삶과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전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 아레티노의 숨결을 되살려낸 저자의 작업을 눈여겨볼 만한 이유다. 저자는 아레티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도덕주의’에 빠진 지나친 편견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엘리트 계급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상하층 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문화 아이콘”이라는 설명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현실적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설파했다면 아레티노는 성과 섹슈얼리티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다”고도 본다.

 

아레티노는 출신이 비천했다.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고 당시 식자층의 필수 언어였던 라틴어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코끼리 유언장’이란 한 편의 글로 유명세를 탔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키우던 흰 코끼리가 죽었는데, 이 코끼리의 유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교황 주변의 탐욕스러운 추기경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게 된 아레티노는 교황의 코르테자노(정신·廷臣)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레티노는 ‘음란한 소네트’ 사건에 휘말려 목숨까지 위협당하면서 당대의 유력자에게 몸을 의탁하는 코르테자노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 무렵 그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공화국이었으며 인쇄와 출판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로 건너간다. 이후 30여년 집필에 열중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 ‘음란한’ 창녀들의 대화를 다룬 <6일간의 대화>처럼 포르노그래피의 형식을 빌려 쓴 사회풍자도 있었지만 기독교 성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왕과 제후, 명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두 책으로 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후원을 구걸하는 편지도 있었지만 그들의 치부나 비밀을 들이대며 돈을 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편지도 있었다. 이것이 출판되자 두 사람의 비밀은 만인이 아는 사실로 바뀌었다. 아레티노는 “불특정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 내에 특정 정보를 퍼뜨림으로써 생겨나는 권력”을 거의 처음으로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당대에 발달한 활판인쇄술을 이용해 현대의 신문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다.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공개적인 글로 압력을 가하는 아레티노의 행태를 ‘저널리즘의 원조’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어떤 정의감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돈과 명성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는 종종 글에서 비난한 사람들에게서 무마의 대가로 돈이나 선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레티노는 권력자에게서 이익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비상한 균형감각이 있었다. 심지어 교황도 어쩌지 못하는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아레티노는 권력자들에게 받아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써서 ‘자비의 은행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의 집에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군주나 고위 사제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호소해왔다. 그는 이를 적절히 이용해 다시 군주·제왕들과 서한을 주고받았다. 당대의 시인 아리오스토는 이런 그의 면모를 보고 “군주를 벌하는 채찍, 신이 내린 피에트로 아레티노”라고 말했다.

 

저자는 정교하면서도 즉흥적이고, 세련되면서도 통속적이며, 신랄하면서도 부드러운, 통상적 인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괴짜’의 모습이 아레티노에게는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인’이 보여주는 개성이 어쩌면 이런 괴짜들의 독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르네상스는 ‘천재의 시대’이기보다 ‘괴짜의 시대’라는 지론을 펼친다. 저자는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나름의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레티노의 <6일간의 대화>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카스틸리오네의 <정신론>과 더불어 16세기 르네상스의 3대 저작으로 꼽아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Posted by 누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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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230715071&code=940100


어떤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기억하기’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22일 오후 7시30분 서울 홍대에서 개그맨 김미화씨의 사회로 <기억하라>는 제목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기억하라>는 시사만화로 엮은 ‘MB 정권 4년의 현대사’다. 이 책은 지난 이명박 정권 4년간의 역사를 시사만화로 풀어냈다. 국내 최고의 시사만화가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 한겨레의 장봉군 화백, 경향신문의 김용민 화백, 노컷뉴스의 권범철 화백이 참여했다.


4명의 화백은 이날 <기억하라>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각기 풀어냈다. 장봉군 화백은 “지금은 MB 4년에 대한 미움만 있는데 이 정권이 어떻게 도래했고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정확한 기억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잘 기억을 해야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같은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민 화백도 “이번에 책을 내면서 그림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그린 그림인데도 기억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며 “기억하는데서 머물지 말고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냈다”고 말했다.

손문상 화백은 과거 모 매체에서 일할 때의 기억을 꺼냈다. 그는 “과거 한 매체에 다닐 때 저소득층을 동정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편집국장 말이 ‘당신이 그런 궁상스러운 그림을 그리니까 베르사체, 루이뷔통 광고가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며 “과연 우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표하고 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홍대 브이홀에서 북 콘서트를 열고 있는 한겨레신문의 장봉군 화백(왼쪽에서 두번째), 경향신문의 김용민 화백,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 노컷뉴스의 권범철 화백(순서대로). 개그맨 김미화씨(가장 왼쪽)가 사회를 맡았다. |임아영 기자

 
희망버스 시인 송경동씨, 4대강 르포르타주를 쓴 송기역씨, 용산참사 현장을 시로 기록했던 심보선씨가 ‘기억하라’는 의미로 시낭송을 곁들였다. 송기역 시인은 “4대강으로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있는 생명들을 죽일 권리가 인간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를 낭송했다.

강은 포클레인이 삼켜버렸네
벌린 입 속 치솟은 이빨 사이
허리 부러진 단양쑥부쟁이
꼬리 잘리고 눈깔 빠진 꾸구리가 있네
재두루미 발자국이 있네
강의 철거민들이 무한궤도 아래 깔려 있네

- 송기역 <눈물을 찾아 우시네> 中


심보선 시인은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시를 쓰게 된 장면을 얘기했다. 그는 “용산 참사 현장에서 작가들과 피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에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씩 들고 지나가면서 우리를 보고 ‘아 여기 TV에서 봤다’라며 지나가더라”며 “사건이 일어난지 채 1년도 안 됐고 용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 이제 생각났다’는듯이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남일당 자리를 주차장이 돼 있는데 용산참사 기억을 할 수 있는 나지막한 기념비 하나라도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 시를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 위에 앉아 있기만 하지는 않겠네 우리는 그 위에 일어서서 말하겠네 이제 인간이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하나 불붙은 망루가 되었다 생존의 가파른 꼭대기에 매달려 쓰레기와 잿더미 사이에 흔들리며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단 말이다! 절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 심보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中
 


심보선 시인이 용산참사에 관한 시,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을 낭송하고 있다. |임아영 기자



송경동 시인은 이날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기룡전자에서 떨어져 다친 발이 좋지 않아 다시 재수술했다고 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희망광장’이라고
서울광장에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며 8년을 해고자로 살아온 코오롱 노동자들, 5년째 기타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콜트콜렉 노동자들, 16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들, 21명 동료들을 묻어야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치권이 민생을 얘기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지금 오늘 싸우고 있는 그들 곁에는 사람들이 없다”며 “저희들이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3차 희망버스를 준비할 때 쓴 시를 읊었다.

저 문을 열어라
전깃불 하나 없는 깜깜한 쇠기둥 위에서
내려오는 법을 까먹을까봐
날마다 어둠속 되짚으며
계단씩 내려오는 연습을 한다는
저 서러운 철문을 열어라
저 문을 열어라
모두가 열고 싶어하는 저 문을 열어라

- 송경동 <저 문을 열어라> 중에서



 


송경동 시인이 <저 문을 열어라>를 낭송하고 있는 모습. | 임아영 기자



이날 북콘서트는 명진 스님이 초대손님으로 나오면서 대미를 장식했다. 명진 스님은 김미화씨 등을 가리키며 “이 정권에서 쫓겨난 분들이 많다”며 “쫓겨난 분들이 모임을 가져서 ‘MB를 쫓아낼 사람’이라고 바꿀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끝나고 봉은사 앞에 ‘대검 중수부 검사 봉은사 출입 금하시오’라고 플래카드를 걸었고 5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시오’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면서 “‘준수하지 마시오’는 욕이지만 ‘준수하시오’가 왜 욕이냐”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뽑을 때 인사가 ‘부자되세요’였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만하면 되는데 얼마나 더 부자가 되라는 뜻이냐. 좀 나눠갖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부자되세요, 뉴타운 이런 것들 때문에 ‘MB 괴물’을 탄생시켰다”며 “2012년에는 국민의 피땀흘린 세금을 함부로 안 쓸 사람들을 뽑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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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te.com/view/20120311n00690


 

다음 아담 페이지 캡처 화면.http://mobile.biz.daum.net/top/intro.do


-"올해는 모바일이 디지털 광고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광고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거듭나는 동시에 모든 광고가 소셜해질 것입니다." (염동훈 구글코리아 대표)

-스마트폰 2000만 시대. 스마트폰이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최근 모바일 광고 시장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2012년 국내 모바일 광고 시장이 1700억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황금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업체들간의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국내에 TV가 보급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50년. 약 2100만대가 보급됐다고 한다. PC는 30년만에 약 2100만대가 보급됐다. 그에 비해 스마트폰은 불과 2~3년 만에 2000만 시대를 맞이했다.

-
1cm의 배너 광고를 뛰어넘어 3차원(3D), 증강현실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가 속속 등장하면서 모바일 광고 시장의 변화 또한 숨가쁘다. 특히 2012년 모바일 광고 시장의 화두는 단연 HTML5를 기반으로 한 리치미디어 광고. 리치미디어 광고는 다채로운 비디오, 오디오, 애니메이션 효과로 소비자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해 모바일 상에서 영화나 게임과 같은 광고 형태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와 같이 역동적인 상품의 광고에는 스크린을 터치해 자동차가 달리는 장면을 영화처럼 재연한다거나 중력센서를 이용해 자동차 게임을 제공하는 식이다.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광고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때문에 광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미 해외시장에서는 영화 겥캐리비안의 해적겦, 자동차 '쉐보레', '라디오 알람 캠페인' 등 다양한 리치미디어 광고가 수행되며 모바일 광고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치열한 선두다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모바일 광고 플랫폼 아담. 지난 2월 월간페이지뷰 150억건을 돌파하며 국내 1위 모바일 광고 플랫폼으로 올라섰다. 아담의 가장 큰 특징은 세심한 타깃팅 광고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다. 광고주는 광고 등록 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모바일웹의 카테고리, 국내 시/군/구 단위 지역, 모바일 운영체제(iOS 또는 안드로이드), 단말기, 시간 등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세분화된 타깃에게 광고를 집중적으로 노출함으로써 광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대별 트래픽을 측정해 점심시간에는 가정이나 직장을 겨냥한 배달 음식 광고를 집행하고 저녁 시간대에는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광고를 보여주는 식으로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실제로 한 보안업체의 경우 새벽 1시에 진행되는 홈쇼핑 상품판매를 아담을 통해 저녁 12시에 미리 판매 예고 광고를 진행해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구글은 최근 유튜브 등 기존 서비스와 최신 광고플랫폼을 연계한 디지털 광고 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모바일 광고사업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자사 서비스를 활용,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뛰어난 동영상 광고들이 SNS를 통해 전파되며 더 큰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글 관계자는 "구글은 쉽게 리치미디어 광고를 만들 수 있는 제품과 플랫폼 기술력이 앞서 있다"며 "다음, 네이버 등 국내 포털들과 경쟁이 쉽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두고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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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상·박영환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92201235&code=910100

ㆍ백용호, 청 정책특보로 복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장에 정부의 주요 요직을 거쳤던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이어 임명돼 낙하산·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부는 9일 임기 3년의 신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55·사진)을 임명했다. 문화부는 YTN 보도국장과 상무를 지낸 언론인 경험과 홍보수석으로서의 공직 경험을 임명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노조가 속한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 노동조합 협의회’(문노협)는 이미 홍 전 수석이 최종 후보에 올랐던 지난달부터 성명서를 내고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해왔다. YTN 보도국장 재직 시절 청와대의 요구로 이동관 대변인과 관련된 ‘돌발영상’을 삭제한 전력에서 보듯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방송 콘텐츠를 폐지한 반콘텐츠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문노협은 “콘텐츠가 미래고 문화산업이 밥이라고 백날 떠들면서 무능력하고 비전문적이며 공공성에 대한 철학이 없는 인물을 내려보내 어쩌겠다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홍 전 수석은 YTN 노조의 ‘구본홍 사장 저지 투쟁’에 강경대응을 주도하는 등 정권의 코드를 맞춰왔다는 평을 받는다. 2005년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파문 때는 MBC가 황 박사 쪽 연구원을 강압적으로 인터뷰했다는 보도를 황 박사의 의뢰로 내보내 ‘청부 취재’라는 비판 속에 보도국장직에서 물러났다. 최근에는 저축은행 비리 사태 연루 의혹을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신설된 정책특별보좌관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56)를 내정했다. 백 특보는 현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뒤 지난해 12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함께 물러났다가 3개월 만에 이 대통령 곁으로 복귀했다.

또 문화특보에 계간 장애인문학지인 ‘솟대문학’의 발행인 방귀희 한국장애인문인협회 회장(55), 중소기업비서관에는 김진형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53)이 내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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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82114435&code=960100

ㆍ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 교수 ‘피로사회’ 출간

“독일에서는 번아웃(burn-out·탈진) 신드롬이 유행입니다. 교수들조차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끄는 사람들이 모두 피곤으로 쓰러져서 자본주의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 교수(53)는 저서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의 한국어판 번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집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서 출간된 이번 책은 2010년 독일에서 출간할 당시 철학서로는 유례없는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현재까지 8쇄를 찍었다.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한 교수의 책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책의 고갱이가 ‘자유를 통한 착취’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상당히 영악한 시스템입니다. 주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방식의 타인 착취는 한계가 있겠죠. 자유를 주고 더 많이 일하라고 부추기면 더 많은 생산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강요와 통제가 아니라 자유를 주면서 착취를 하다보니 자신은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새 그 자유는 강제가 되고 맙니다.”



한병철 교수가 8일 서울 태평로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책 <피로사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문학과지성사 제공

 

▲ 현재의 피로 극복하는 길은 성과주의·자기 집착 버리고 다른 이에게 마음 여는 것

이러한 한 교수의 분석은 현대사회를 보는 독특한 시각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로이트, 푸코, 아감벤의 이론이 억압, 규율, 감시, 면역학 등과 같은 ‘부정성’에 기반했다고 본다. “해서는 안된다”는 금지를 중심으로 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교수는 지금의 사회가 “할 수 있다”는 구호가 넘쳐나는 ‘긍정성’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겉으로 규제와 억압은 철폐되고 개인의 욕망이 긍정되면서 자유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성과주의라는 독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착취가 진행될 때는 착취자를 없애면 되지만 자기 자신을 착취할 때는 자신을 죽일 수도 없어요. 내가 주인이면서 동시에 노예가 되는 것이고, 쓰러져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하게 됩니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물결은 한국사회도 비껴가지 않았다. 한 교수는 책 서문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책을 번역한 김태환 서울대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한병철의 이야기는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며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별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입시 전형 방식이 도입됐지만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주체로 길러내기보다는 더욱 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는 것이 상징적 사례”라고 밝혔다.

노력과 성공이라는 신화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거기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좌절에 빠지고 만다. 한 교수는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피해자라고 생각도 안 해요. 번아웃 신드롬에 대해서도 쉬라는 얘기만 나오는데 일하기 위해 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노예의 쉼이고 모욕적인 것이죠.”

한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피로’ 자체에 대해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는 극복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한 교수는 “또 다른 피로로 현재의 피로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만 생각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피로가 아니라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명상적 피로가 되겠죠. 자기 속에 몰입하는 나르시즘을 극복하고 타자에게 자신을 열어나가야 우울증도 극복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렇게 다른 것을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생각이다.

한 교수는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하고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도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현재 독일 학계에 대해서도 “철학자들이 사회에 대해 관심이 없고 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비슷한 학문만을 되풀이하고 있어 철학 자체가 없어진 상황”이라며 “이론이 아니라 정보만이 넘쳐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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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72140565&code=940702





<참고>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안내
http://blog.boribook.com/blogs/440

보리출판사에서는 노사간 합의에 따라 2012년 3월 1일부터 6시간 노동제를 예비 시행합니다.

보리 식구들의 이해와 협력으로 6시간 노동제가 성공적으로 안착되길 바랍니다.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시행 규칙 가운데 일부를 공개합니다.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시행 규칙

전문

()도서출판 보리(이하 보리라 부른다)는 처음 기획실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눈 밖에 둔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리가 지켜 온 정신이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노동이 인간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노동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도리어 인간의 삶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돈벌이에는 도움이 되는 반 생태적인 유해 노동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인간다운 삶의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기대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과 생명계 전체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도 불필요한 노동은 하지 않는 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사회 변혁의 길에 선뜻 앞장서려는 사람이 없다. 노동자가 잔업, 철야까지 해서라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절한 생존투쟁에 내몰린 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가족과 다른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 것과 다름 아닌 상황이다. 이에 보리가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함으로써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다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기로 한다.

1장 총칙

1목적이 규칙은 보리의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보리에 6시간 노동제가 잘 정착되도록 한다.

2적용범위이 규칙은 보리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한다.

3성실의무보리는 노동자에 대해 본 규칙에 정한 노동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하며, 노동자는 본 규칙에 정한 사항과 규칙에 따른 회사의 운영방침을 성실히 따를 의무를 진다.

4복무원칙보리 노동자는 보리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

2장 노동시간 및 휴게휴일

5노동시간

1. 하루 6시간, 30시간 노동을 기본 노동시간으로 주5일을 근무한다. , 노사합의에 의해 한 달에 18시간 내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토요일은 휴무한다.

2. 시업시간은 09:00, 점심시간은 12:00~13:00, 종업시간은 16:00를 원칙으로 하되, 노사합의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6연장근로휴일근무와 시간적립제】

연장근로가 발생했을 때는, 연장근로를 한 시간만큼 휴가를 부여하는 시간적립제를 적용한다. (이하 중략)



ㆍ도서출판 ‘보리’, 철야 당연시했던 관행 파괴

경기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도서출판 보리는 지난 1일부터 하루 6시간씩 주 30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짧아졌지만 임금은 줄이지 않았다. 직원 32명의 작은 회사지만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신선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진다.

보리는 지난해 5월부터 직원들이 미국 기업 켈로그의 노동단축 사례를 공부하며 여러 차례 노사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 1월에는 노사 합동으로 추진팀을 구성했으며 2월 말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켈로그는 1930년대 초 6시간 노동제를 실현한 미국의 시리얼(우유를 부어 바로 먹는 가공식품) 제조 기업이다.

지난 6일 보리 1층 식당에서는 6시간 노동제 시행 경과 설명회가 열렸다. 윤구병 보리 대표는 “(이번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함께 살기 위해서 정착시킬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만큼 취지를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설명해야 합니다.”


 

윤 대표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우리 출판계의 현실 때문이다. 대부분 영세하고 양극화가 심각한 데다 외주와 임프린트(사내 분사)의 성행으로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국내 출판사 가운데 노조가 있는 곳도 5군데에 불과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보리의 홍보담당 김누리씨(27)도 “자기들만 잔치를 벌이는 귀족노동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보리는 본사 노동자들의 삶의 질만 고려해 6시간제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 대기업 노동자들조차 잔업과 특근을 자처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보리의 시도는 이런 상황에 작은 ‘숨구멍’을 내보자는 것이다. 그 근본에는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에 시간을 빼앗기면서 정작 자기실현을 위한 일들은 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바빠진 노동자들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돈으로 사들여야 했고 갈수록 돈이 더 필요했으며, 그래서 더 일해야 했다. 그 일은 유해식품이나 무기 생산 공장이어도 관계없었다. 이 악순환을 끊어보자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다. 줄어든 노동으로 새롭게 생긴 시간에는 공동체를 가꾸는 데 참여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하거나 물품을 만드는 데 품앗이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부적으로 세부 조율을 거치는 문제뿐만 아니라 8시간 노동제가 일반화돼 있는 상황에서 대외 업체나 독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도 문제다. 6시간 노동제 실무추진팀장을 맡았던 조혜원씨(36)는 “새롭게 얻은 2시간을 생산적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이 본래 취지인데 홀로 도시생활 속에 갇히다보면 자칫 소비나 지출로만 이어지기 쉽다”며 “우리의 시도가 외롭지 않도록 동감하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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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61825295&code=960201

ㆍ대안지식연구회 첫 결과물 ‘인문정치와 주체’ 펴내

1969년 전태일이 만든 ‘평화시장 근로조건 실태조사’ 설문지의 11번 항목은 다소 이채롭다. ‘당신 교양을 위한 서적은? A. 본다 B. 안 본다 C. 볼 시간이 없다’. 이어 12번 항목은 ‘취미’를 묻기도 한다. 작업시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질문이 설문지의 주를 이뤘다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대안지식연구회의 첫 결과물인 <인문정치와 주체>(열린길)에서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또한 비슷한 흔적을 발견했다는데 주목한다. 랑시에르는 1830~50년대 프랑스 노동자운동의 문서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낮에는 노동 하지만 밤에는 시와 철학을 공부해 종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봤다. 이를 통해 그는 노동자들이 외부 교육에 의해 지적으로 각성하거나 자의식을 키운다는 전통적 관념을 깨뜨린다.

김 교수는 전태일의 설문지 자체가 스스로 이뤄진 각성의 과정을 상징한다고 본다. 전태일은 “불쌍한 여공들을 보호해달라”는 지배담론의 언어를 답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동자로서 정체성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욕망”을 꿈꾸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전태일처럼 규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남, 즉 ‘탈정체화’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출발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내놓는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원 교수는 “전태일의 언어는 지배담론이라는 ‘적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논리를 지닌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고정된 정체성을 강요하는 ‘치안’에 불과하며, 진정한 정치는 새로운 주체를 통치과정에 참여시키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교수는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사건 또한 오늘날 ‘열사 정신’으로 계승되는 그 어떤 것을 넘어 “다른 정치의 가능성”으로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노예처럼 자리매김되고 있었던 ‘겁쟁이 여공’들이 주체로 묶여 일어나 자신들을 둘러싼 지배담론을 깨뜨려야 한다는, 진정한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나누게 된 계기가 바로 ‘전태일의 분신’이라고 분석한다.

<인문정치와 주체>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기적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주체의 모습과 움직임을 탐색한다. 그것은 김 교수가 전태일에서 새로운 주체와 정치의 가능성을 봤듯,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사회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라는 현재적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책을 펴낸 대안지식연구회는 2008년부터 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젊은 연구자들이 만들었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정한 고려대 HK연구교수, 김윤철·하승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승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이영제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정치학 박사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학 전공자이자 문학평론가다.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흔치 않은 만남이다. 면면을 보면 이명원·오창은·하승우 교수가 운영했던 대안 연구공간 ‘지행네트워크’가 떠오른다. 어느새 40대가 돼버린 그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체험했던 1991년 5월 투쟁, 강경대 사망 10주기였던 2001년에 처음 만났다. 이른바 ‘포스트 386세대’로도 분류되는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기점으로 학문적 관심이 거대담론에서 문화연구나 미시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번 책은 그간의 문제의식을 벼려, 2010년부터 각자 쓴 글을 모아서 상호토론과 보완과정을 거쳐 내놓았다. 김원 교수는 “문제의식의 출발은 30~40대 연구자들이 논문쓰기에 매몰되는 현실, 지식인의 사회적 실천 같은 연구자로서의 고민”이라며 “학문의 논리가 현실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은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내느냐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컨대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광주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 차이다. 5·18을 단순히 반독재민주화운동이라고 여긴다면 독재정권이 사라진 지금에는 저항의 원천으로서의 상징성을 잃고 ‘박제화’될 수밖에 없다. 다만 김정한 교수는 되레 시민군들의 모습에서 초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본다. 평범한 그들의 삶을 복원해야만 국가권력에 종속적이면서도 동시에 그에 저항하는 주체, 용감함과 비겁함의 양면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중들을 떠올릴 수 있고 오늘날 ‘새로운 주체’의 형식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 5월 투쟁은 어떨까. 이승원 교수는 이 사건이 사회적 망각의 대상이 돼 버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주요한 병리적 현상을 불러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보수세력의 집중적인 ‘도덕성’ 시비로 무너졌던 투쟁은 결국 우리 정치가 민주주의의 실질적 실현보다는 ‘도덕적 순결성’을 강조하는데 급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3·1운동과 8·15해방을 민족적 의미보다 계급적 의미로 해석하고, 4·19혁명의 원천을 반공이데올로기로 상처입은 ‘피해 대중’과 학생들의 연대로 성공한 혁명으로 읽어낸다. 6월 항쟁을 통해서는 일상적인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점을 발견하고, 동학농민혁명에서는 ‘농민민주주의의 열망’을 본다. 1부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주체화의 가능성을 들여다본 학자들은 2부에서 현 시대 각자의 분야에서 느끼는 주체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하승우는 아나키즘에서 꾸준히 일상을 살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평범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오창은 교수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은 저항적 민중 주체와 지배계급의 대립으로만 읽혔다”며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들을 포함해 민중 주체들의 다양성을 살피고, 이 주체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 속에서 연대의 계기가 만들어지는 발전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하려 애썼는데 기존 역사학에서는 어떻게 볼지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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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박용하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51508331&code=910100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1974. 5. 20. 대통령 박정희)

2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의 ‘친박연합당' 사무총장 사무실에는 한쪽 벽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액자 속에 적혀 있었다. 김기목 친박연합당 사무총장은 "친박연합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업과 정신을 기리는 당"이라고 소개했다.


"국가재건친박연합" 약칭 "친박연합"

'친박연합'은 '국가재건친박연합'의 약칭이다. 5·16 군사정변 직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대한민국 최고통치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연상시킨다. 이 당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지칭하는 표현을 당명으로 썼던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 2월에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과 합당)와는 다른 당이다. 2006년 5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으로 창당했고 2006년 8월 선진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이후 2010년 3월 지금의 ‘친박연합당'이 되었다.

이 당은 어떤 당일까. 김 사무총장은 "우리는 사람을 지향하는 정당이 아니라 이념 정당"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 국방, 조국근대화, 새마을운동 등의 이념을 가지고 당의 정체성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당헌 제3조 '정체성'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분을 명시했다. "우리 당은 대한민국의 번영을 일궈낸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 민족 중흥, 새마을운동 등 역사적 위업을 받들어 오늘에 되살리고 계승·유지하여 국가재건에 정성을 쏟는 한편, (…) 친 박정희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는 등 국가재건의 원동력으로서 친박연합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함의를 당헌·당규의 근간으로 삼는다."

거리에 설치된 친박연합당 홍보 현수막. |친박연합당 홈페이지

 

2012년 우리와 박정희

2012년 3월 현재 박정희 전 대통령을 계승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사무총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30년 정도 흘렀는데 지금 국민들에게 현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리더십, 조국과 민족을 위해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박연합당이 내세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된 유업은 조국근대화, 민족 중흥, 새마을운동 등 세 가지다. 김 사무총장은 "근대화된 21세기에 ‘조국근대화'를 다시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근대화가 아니라 G20에 속하고 선진국에 진입함과 동시에 우리가 더욱더 나아가야 하는, 그런 근대화를 말한다"고 말했다.

또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민족 중흥은 어떤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한민족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며 "외국에 나가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인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다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새마을운동은 유럽의 산업혁명보다 더 큰 변혁이었다"며 "100년에 걸쳐 이뤄진 산업혁명보다 20년에 걸쳐 이뤄진 새마을운동을 통해 세상이 뒤바뀌는 획기적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자'라는 기치 아래 ‘하면 된다'라는 민족 정신의 얼을 심어놓은 것"이라며 "그러한 정신을 계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2일 친박연합당 사무실에서 김종호 사무부총장(왼쪽), 정라곤 대표, 김기목 사무총장(오른쪽)이 나란히 섰다. 태극기 옆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임아영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의 관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는 어떤 관계일까. 김 사무총장은 "박근혜 위원장과는 상관 없다"며 "박근혜 대표
이미지가 짙고 짝퉁이다, 아니면 그쪽을 바라본다는 얘기가 있어서 2010년 1월에 당헌·당규를 정비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유업을 계승·발전시키는 당이라고 명시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당시 박근혜 위원장은 친박연합당에 ‘당명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이미 중앙선관위에 당명을 등록했기 때문에 (이것이) 당명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행정심판을 요청했어야 하는데 잘 아는 분들이 선거를 위해 '꼼수'를 쓴 것"이라며 "한나라당 영남권 쪽에서 우리 세력이 커지니까 견제하기 위해서 썼던 주변 사람들의 꼼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을 계승·발전시키려고 하면 직계 혈족보다 관계 없는 저희들이 더 객관적으로 잘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예를 들면 친박연합인데 박씨들만 있으면 좀 그렇지 않나"고 말했다.

그러나 강력한 대권후보인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지지 여부를 묻자 김 사무총장은 "저 개인적으로도 박근혜 위원장만한 대권 후보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총선이 우선이니까 대권에 대해서 뭐라 얘기하기가 그렇다"며 말을 돌렸다.

2일 경향신문과 만난 친박연합당 김기목 사무총장. |임아영 기자




박정희의 독재 "평가가 왜곡된 부분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명과 암으로 확연히 갈린다. 김 사무총장은 "박 전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지 않은 상황에서 잘했다, 못했다 하면 현명하지 않은 판단"이라며 "당시 기록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이 '10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라고 했었고 이는 당시 상황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그 정도 걸린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육영수 여사가 시해당했을 때
한복 안에 속치마가 떨어져 있어서 간호사가 영부인이라고 생각 못했을 정도로 독재로 부를 축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일본군 장교' 경력에 대해서도 김 총장은 "그 시대적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고 열심히 사셨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일본군 장교로 갔다는 건 서울대 간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일협정도 지금은 지탄받을 결정일지 몰라도 당시 외국에서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었고 적은 돈이라도 나라의 초석을 이루는데 핵심이라고 판단하셨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그것만 딱 집어서 평가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친박연합당은 2주 전부터 전국에 현수막을 500개 이상 걸어 당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친박연합의 당원이 되어주십시오", "기초노령연금 70만원! 사병봉급 50만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본 시민 180여명이 직접 당사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당원이 되는 법을 문의했다. 당은 15일까지 비례대표 후보자를 공개모집할 계획이다. 노령연금 70만원, 사병 월급 50만원 등 99개의 정책, '99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친박연합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도 광역·기초의원을 대구·경북 지역에서 22명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당 대표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박준홍씨가 공천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일부가 탈당하면서 현재 18명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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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출고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당. 취재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2012년 3월에도 살아있는 박정희. 그의 딸이 강력한 대권 후보인 대한민국.

끝으로 기사 외에
캄보디아에서 발견했던 훈센 총리의 사진(아래).
친박연합당 당사무실에 붙어 있던 사진(위)과 오버랩된다.

오래오래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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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경상·사진 강윤중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22002425&code=900308

ㆍ‘시장은 정의…’ 이정전 교수

원숭이와 증권전문가투자 대결을 벌였다. 증권전문가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따라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주식을 매입했다. 반면 원숭이들은 다트를 던져서 매입할 주식을 결정했다. 1998~2004년에 걸쳐 벌어진 실험 결과는 해괴했다. 전문가들의 평균 수익률은 3.5%에 불과했는데 원숭이들은 10.2%에 이르렀던 것이다.

라면과 달리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시장의 상품들은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원숭이의 사례는 그것이 운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떼짓기’가 성행하고 심지어는 사기까지 벌어진다. 미국은 1990년대 이래 세 차례 큰 경기침체를 맞았는데 모두 자본시장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터지면서 시작됐다. 1991년에는 부실 저축은행의 연쇄 파산이, 2001년에는 엔론 사태가, 2008년에는 무분별한 파생금융상품이 경기침체의 원인이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69·사진)는 최근 펴낸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에서 “자본주의 시장은 공정하고 정의로울까”를 되물으며 이런 얘기들을 꺼내놓는다. 우리 소득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이다. 앞서 본 자본시장이 불공정하다면 노동시장은 어떨까. 흔히 경제학은 실업자들이 게을러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한다. 현실을 보면 대부분 노동자들의 선택은 제한돼 있고, 열심히 일하고도 길바닥에 나앉는 일도 허다하다. 미국의 노동경제학 권위자인 앨버트 리조차 “교과서 이론이 현실 문제에 도움되지 않았다”고 술회했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만난 이 교수는 “이미 시장논리에 복속된 우리 사회에서 시장을 빼놓고 사회정의를 얘기하는 것은 헛된 논의”라고 말했다. “자유경쟁과 시장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시장이 정의롭기만 하면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만 보살피면 됩니다. 그게 바로 선별적·시혜적 복지논리죠. 반면 시장이 공정치 못하다면 대수술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시장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대표적 논리는 “시장에서 이뤄진 모든 결과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상호이익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합의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듯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제3자 피해가 없는 거래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교수는 시장에서 파악하는 사람들의 선호는 ‘1차적 선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담배를 끊고 싶으면서도 계속 피우는 사람의 선호는 무엇일까. 인간 욕망의 구조에 무관심한 경제학자들은 이를 예외적 사례로 치부한다. 반면 과학자들은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1차적 선호가 즉흥적으로 느끼는 욕망을 반영한다면, 2차적 선호는 그 즉흥적 욕망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또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행태가 1차적 선호에 해당하는 ‘열정’과 2차적 선호에 해당하는 ‘공정한 방관자’ 사이의 갈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지난해 벌어진 ‘통큰치킨’ 논란도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맞서 5000원짜리 치킨 출시를 옹호한 이들은 “치킨을 사기 위해 늘어선 소비자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자들의 1차적 선호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은 당장 치킨을 싸게 먹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의 저가 공세가 독과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우려한다. 이것이 2차적 선호다. 이 교수는 “대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지가 곧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약 구입에 혈안이 돼 있는 중독자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이들이 원하는 마약을 대량 공급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과 진배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공적인 선호, 2차적 선호는 어떻게 반영하는가. 바로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사실 대화가 필요없죠. 가격표 보고 돈만 내고 물건 받고 나오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나 정의롭고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시장이 그걸 자꾸 말살하니까 사회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이 교수는 저울과 칼로 재단하는 정의를 추구하기보다 신뢰와 협력, 우애와 경청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맹목적으로 ‘자유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논리는 여러 차례 허구성이 입증됐고 2008년 경제위기로 실증됐다. 그럼에도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 교수는 “기득권 옹호에 유리한 것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들은 남미나 남유럽이 복지지출 과다로 망했다고 합니다. 수치로만 보면 복지지출이 굉장히 많았으니 사실이죠. 그러나 그 복지지출이 부정부패로 인해 결국 부유층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 교수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재벌개혁에 관해선 새롭게 내놓을 것도 없고 실천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경쟁만을 강조하는 시장에서는 늘 대기업들의 승자독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시장의 고삐를 당기는 일이 핵심이죠.” 이 교수는 “고삐를 죄기 위해선 시민들이 정부를 투표로 압박해야 하며 그래서 올해 선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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