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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모든 순간

‘슈퍼맨’ 아버지, 그리고 ‘못 위의 잠’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선배가 블로그에 함민복의 <절하고 싶다>를 소개하셨길래 “저도 좋아해요”라고 하니
책을 빌려주셨습니다.

함민복 시인이 ‘시인의 마음으로 시 읽기’라는 부제로 책을 냈네요.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랍니다.

목차를 펴서 좋아하는 시인들을 먼저 찾아보았는데요.
그렇게 찾아진 시가 나희덕의 <못 위의 잠>입니다.

대학 때 친구에게 <어두워진다는 것>을 선물받았을 때부터
이 시인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건 쉽지 않아서(ㅎㅎ) 진득하게 읽지는 못했는데요.
<어두워진다는 것>을 읽었을 때 시인의 맑은 감성이 느껴져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못 위의 잠>에 대해 시인 함민복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달빛이 그림자 만들어주는 것 보면 가로등도 없는 길인가보다. 골목이 좁아 귀가하며 손잡은 세 식구의 그림자 벽에 접혔었겠다. 길이 좁아 가족들 대열에 설 수 없는, 아니 설 수 있는 길이라도 차마 같이 서지 못하고, 한 걸음 뒤처져서 자식들과 아내 그림자 보며 귀가하는 아비. 그 아비의 마음, 아비의 그림자 쓸쓸하다.

제비들도 사랑방은 아비가 쓰나보다.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 끝내 풀지 않았을 사랑방 초소, 못 하나. 새끼들 날 수 있을 때까지 말뚝근무 섰을 제비 한 마리, 서러운 이름 아비.

제비의 삶과 사람의 삶은 닮았구나. 모든 생명체의 삶은 마치 그림자처럼 서로 닮은 것인가.


이 시를 읽고 저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도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결혼한지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한 집에 살지 않게 된 것도 한 달밖에 되지 않았네요.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고 새삼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것들을 되새겼던 한 달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오늘 점심 때는 갑자기 아빠(아버지란 호칭은 아직도 어색합니다ㅋ)가 보고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평소에는 간단히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는 사이였던 부녀가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어제 된장찌개를 끓였다고 아빠에게 자랑을 했고 아빠는 그렇게 하나둘씩 할 수 있는 게 늘어날 거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거리를 걷는데 명치 끝이 살짝 울렸습니다.

아홉살 때인가 무주구천동에 여름 휴가를 갔는데 계곡에 첨벙첨벙 놀던 어린 제가 샌들을 계곡의 센 물살에 빠뜨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엉엉 우는 저를 보고 아빠는 멀리까지 가 샌들을 구해(?) 오셨습니다. 저 멀리서 아빠가 샌들을 찾았다며 머리 위로 흔들던 모습이 아련하게 기억납니다. 어린 제게 아빠는 ‘슈퍼맨’이었지요.

초등학교 때 살던 이층집은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가족들은 거실 창문을 다 열어 놓고 베란다에서 잠을 잤습니다. 더위를 쫓기 위해 도둑의 위험을 감수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신기하기도 한데요. 아빠는 가족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여름이면 늘 푹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피곤해하며 출근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결혼식을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하니 매우 신이 났었습니다.
살면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ㅎㅎ

신부대기실에 앉아서 신나게 손을 흔들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불러 사진을 찍자며 웃었지요.
그래서 친구들이 왜 그렇게 신부가 소리를 크게 내냐며 구박(?)을 하기도 했는데요.

신부 입장하는데도 신이 나서 사진마다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러다 눈물이 터진 건 케이크 커팅을 하고 나서 아빠와 눈이 마주쳤을 때였습니다.
아빠 표정이 “쟤가 참 많이 컸구나,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이제 우리 없이 잘 지내련가” 싶은 수만가지 생각이 스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보면서 이제 ‘슈퍼맨’이었던 아빠와 한 집에 살지 않게 됐다는 걸
‘실체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입사 이후 직업 특성상 술을 많이 마시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다지 즐겁지 않은 회식 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아빠가 주무시지 않길래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어떻게 싫은 술자리를 참았어요?”

아빠는 허허 웃으셨지만
힘든 회식 자리나 회사 일에 지칠 때나 그저 ‘사회적 성숙’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압박감을 느낄 때
아빠가 자주 생각났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못 위의 잠’이 떠올랐던 걸까요.

이제는 ‘슈퍼맨’ 없이 스스로 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가끔은 무작정 아이처럼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늘 “못 위에서 잠을 청하며” 돌봐주신 아버지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지네요.

이번주 목요일에는 (이제 친정어머니, 친정아버지가 된) 부모님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오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