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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모든 순간

경향신문 기자가 본 '기자윤리강령' 1면 광고

기자가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지, 월급 받는 회사원이냐.”

 가끔 이런 인터넷 댓글이 눈에 띈다. 댓글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이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 자괴감과 열패감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기자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구석에 던져버렸던 취재수첩과 컴퓨터 메모, 제보 연락처들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걸 제대로 들여다봤나. 살피지 못한 곳에 <도가니> 같은 억울함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느니 다른 어떤 능력 좋은 이가 와서 하는 것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 이 사회를 위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미친다.

 경향신문 창간 65주년을 맞아 106일자 1면에 실린 이제석씨의 광고 기자윤리강령은 오랜만에 기자가 회사원이냐라는, 그 물음을 상기시켰다. 물론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강령이지 기자의 사명감을 말한 문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과 금력 등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개인 또는 집단의 어떤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도 단호히 배격한다는 말에서는 고리타분한 윤리를 넘어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이 광고를 실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 창간기획팀에서 일했지만 이 광고를 지면에 싣는데 관여한 것은 아니다. 이 광고의 정당성을 강변하거나 홍보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 광고의 시안을 처음 보면서 든 생각을 나누고 싶다. 회사의 공식입장과 전혀 관계가 없는 그 개인적 생각의 시작은 이렇다. 이제석씨가 이 구닥다리문서를 가위로 오려서 책상 앞에 부착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과연 누구를 상대로 한 말이었을까.

 1차적으로는 언론인이다. 그 중에서도 경향신문 기자였을 것이다. 이제석씨의 아이디어를 그저 싣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계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다음으로는 모든 언론인이다. 어떤 이들은 불편함도 느꼈을 것이다. 너희가 그런 광고를 실을 자격이 있느냐, 혹은 뭘 한 것이 있다고 너희만 잘난 척 하느냐 하는 질문은 당연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차원을 넘어선 대상을 말하고 싶다. 이제석씨가 굳이 이 광고를 구닥다리라고 지칭한 것에 주목한다. 말 그대로 먼지 켜켜이 먼지 쌓인 창고 구석에서 겨우 찾아낼 수 있는 고문서 같은 강령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문서다. 이 문서가 한국기자협회가 공표한 기자윤리강령이라는 점을 빼놓고 생각해 보면 이런 문서는 우리 주변에 널렸다. 지키지 않는 가훈에서부터 시작해 종종 웃음거리가 되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공무원이나 변호사의 윤리강령 등은 다 그런 축에 속한다. 넓게 보면 우리나라의 헌법도 그렇다. 어느 나라 헌법보다도 이상적인 조항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국민의 기본권은 심심찮게 무시당한다. 그야말로 구닥다리 문서의 완결판이다.

 그래서, 이것은 기자뿐 아니라 2차적으로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자 조롱이 될 수도 있다. 헌법이 그 조항 그대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을 때, 원리와 원칙이 외면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느냐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로 돌아가면 기자가 회사원이냐고 묻는 당신은 얼마나 이 사회에 대해, 당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언론이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이전에 스스로는 과연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이제석씨의 메시지는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수억 원을 받아 챙겼던 이들이 있고, 이 기자강령에 열광하는 시민들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그 윤리강령을 지키지 않는 기자는 누가 만들어냈나.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언론, 악의적 왜곡 기사를 쓴 사실을 반성하기보다 그것이 팩트라며 호통치기 바쁜 기자들을 쉽게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는 당신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아예 언론 자체의 콘텐츠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경멸하고 손쉽게 소비하면서 정의롭고 참다운 언론이 저절로 커 가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을 묻고 싶다. 정치가 국민수준을 반영한다면 언론도 그렇다. 기자는 단순히 회사원이 아닐 지도 모르지만, 그냥 아니라고 말할 수만도 없다. 스스로도 혹은 독자들도.

황경상/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안녕하세요. 블로그에 글을 처음 남기네요.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임아영 기자라고 합니다.

윗 글을 쓴 황경상 기자와 결혼을 보름 정도 앞둔 ‘예비 신부’입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ㅎㅎㅎ)


앞으로 이 블로그는 ‘진짜 신랑’ 황 기자와 제가 함께 꾸릴 계획입니다.

그 첫번째로 황 기자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을 싣습니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 10월 19일자에 실렸어요.

<경향신문 부부 기자가 사는 법>이라는 블로그 주제와 잘 어울리지 않나요? ㅎㅎ



사실 이 광고가 1면에 실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와 황경상 기자의 반응은
“손발이 오그라든다”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1면에 실을 자격이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독자들이 이 광고에 대해 ‘오버한다’라는 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을 했더랬죠.

그런데 다음날 반응은 매우 좋았습니다.
기자윤리강령을 지키는 언론이 되어달라, 부터 경향신문이 이런 광고를 낸 것이 좋아보인다,
경향이니까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다,까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 더 신기해하면서 트위터 글 등을 살펴봤는데 가슴 한쪽이 찔리더군요.

“입사 3년차 나는 얼마나 ‘기자윤리강령’에 충실했는가.”
황경상 기자의 말대로 우리는 얼마나 ‘기자가 회사원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았을까 등등.

2008년 10월 1일 경향신문 입사 이후 3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황경상 기자는 저와 동기입니다 ㅎ)
이 광고가 입사 3년을 찍은 저희 둘에게는 ‘주의’를 환기하는 선언문이 되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이 선언문을 마음 속에 담아 일하느냐가 더 중요하겠지만요.

‘예비 남편’이 미디어오늘이 기고를 한다길래
무슨 글을 쓰나 했더니 이런 내용이었네요.
그 글에 제가 먼저 ‘공감’을 해 이렇게 올려봅니다.

첫 글 치고는 매우 엄숙(?)하네요. 다음에는 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
근데 저희 둘다 재밌는 스타일은 아니라...ㅎㅎ;; 여튼 부부 기자의 이야기이니 좀더 재밌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