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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모든 순간

<건축학개론> -안녕, 스무살

'누런돼지'가 <건축학개론>을 너무 보고 싶다며, '기억의 습작'에 대한 영화라고 신나할 때

저는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첫사랑에 대한 서사가 이제 저에겐 어떤 호소력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서른 하나. 어쩌면 '겨우 서른 하나'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아 어느 새 서른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설렘, 열정 같은 명사에 가 닿아 있는 첫사랑이라는 것에

서른 하나의 나이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구름 위에 둥둥 떠버린 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홍대부터 합정까지 걸었습니다.

바람은 약간 쌀쌀했지만 여름 밤의 달뜬 기분처럼 땅 위를 걷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건축학개론>은 '스무살을 기억하는 영화'였습니다.

 

서툴러서 상처를 주고 서툴러서 상처를 받는 스무살.

그 여리고 찬란했던 시절의 장면장면이 떠올라 오랜만에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저는 01학번이라 영화 속 서연(한가인)이나 승민(엄태웅)보다 한 3~4살 어리지만

스무살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딱 한 번만 찾아오는 때라

그 기억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겠지요.

 

영화 속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제게는 토이의 <좋은 사람>,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또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였고

영화 속 CDP가 제게는 mp3플레이어였지만

콘텐츠와 미디어가 달라진다고 해서

그 '추억'의 의미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어제 저는 오랜만의 '스무살의 노래들'을 하루종일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이 노래들을 들으니 근무 중에는 이어폰을 빼야 했지만 빼기 싫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더군요.

 

영화 속에서 스무살 승민(이제훈)이 스무살 서연(수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

"아 나도 나도 저랬는데" 했습니다.

고등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하고 캠퍼스를 걷던 시절, 

누군가의 손짓, 표정, 작은 말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그때.

"아 나도 그때는 정말 어렸구나" 싶어서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무살의 첫사랑'은 서툴러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서연과 승민도 엇갈리지요.

영화 속에서는 '오해' 때문인 걸로 그려지지만

서른 하나가 된 저는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스무살의 사랑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투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해보는 모든 경험은 서툴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첫사랑이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열등감'과 '욕망'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열등감에 예민해지지 못하면 스스로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아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무살은 아직 그럴 수 있는 나이가 아니겠지요.

 

'제주도 학원 출신'인 음대생 서연(수지)가 '압서방(압구정동, 서초동, 방배동)'으로 상징되는 '강남'을 욕망할 때

승민(이제훈)은 '정릉'에 산다는 것이 부끄러워 집 대문을 발로 찹니다.

서연을 만나 승민에게는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부끄러움이 생기는 것이죠.

 

 

사랑에는 지나친 열등감도, 지나친 욕망도 해가 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영하는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여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내미는 손을 눈치채지 못하지요. 승민도 그랬을 겁니다.

또 가질 수 없는 욕망을 원하게 되면 서른다섯이 된 서연처럼

그 욕망이 한낱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뭘까요?

같이 있어주는 것? '보고싶다'라는 말 한 마디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 열정? 애정? 신뢰?

서른 하나가 된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진심에 예민해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스스로가 되는 것'

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누구보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어른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건

사랑을 잃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랑을 잃고 사람을 잃게 되면 스스로의 바닥을 보게 됩니다.

그 바닥을 보게 되면 '내가 얼마나 상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투른 폭력을 휘둘렀는지' 알게 되지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자존감이 튼튼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존감은 열등감이나 비뚤어진 욕망 때문에 어긋나기 쉬운 '정체성'입니다.

자존감이 튼튼해져야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서른 언저리에 그 진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누런돼지'와 집에 걸어오면서 "아 그게 10년이나 걸렸구나"라고 얘기했지요.

물론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비밀을 알게 된 건 아닐 겁니다. 당연하게도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평생토록 노력하며 할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스무살은 다른 사람의 진심에 예민해지기 어려운 서툰 때입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첫사랑'이 어긋나 버린 서연과 승민이 안타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그리고 참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른 다섯이 된 두 사람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결론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마 '첫사랑의 결론'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서른 다섯의 두 사람의 키스신이 몹시도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15년은 두 사람을 성장시켰습니다.

승민(엄태웅)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엄마를 보고 마음 아파하고

스무살에 발로 차 망가져버린 대문을 원상복귀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서연(한가인)도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새 터전을 가꿉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단순히 '첫사랑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라

'첫사랑으로부터 성장하는 드라마'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첫사랑을 하던 스무살의 저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왠지 저도 조금쯤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었거든요.

 

 

마흔 하나가 되면 이 영화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새삼 나이드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테니까요.

그때가 기대됩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기쁘게 '안녕, 스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