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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어느 출판사의 주 30시간 노동 실험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72140565&code=940702





<참고>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안내
http://blog.boribook.com/blogs/440

보리출판사에서는 노사간 합의에 따라 2012년 3월 1일부터 6시간 노동제를 예비 시행합니다.

보리 식구들의 이해와 협력으로 6시간 노동제가 성공적으로 안착되길 바랍니다.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시행 규칙 가운데 일부를 공개합니다.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시행 규칙

전문

()도서출판 보리(이하 보리라 부른다)는 처음 기획실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눈 밖에 둔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리가 지켜 온 정신이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노동이 인간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꼭 필요한 노동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도리어 인간의 삶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돈벌이에는 도움이 되는 반 생태적인 유해 노동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 결과로 인간다운 삶의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기대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과 생명계 전체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도 불필요한 노동은 하지 않는 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사회 변혁의 길에 선뜻 앞장서려는 사람이 없다. 노동자가 잔업, 철야까지 해서라도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절한 생존투쟁에 내몰린 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가족과 다른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 것과 다름 아닌 상황이다. 이에 보리가 6시간 노동제를 시행함으로써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다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기로 한다.

1장 총칙

1목적이 규칙은 보리의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보리에 6시간 노동제가 잘 정착되도록 한다.

2적용범위이 규칙은 보리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한다.

3성실의무보리는 노동자에 대해 본 규칙에 정한 노동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하며, 노동자는 본 규칙에 정한 사항과 규칙에 따른 회사의 운영방침을 성실히 따를 의무를 진다.

4복무원칙보리 노동자는 보리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

2장 노동시간 및 휴게휴일

5노동시간

1. 하루 6시간, 30시간 노동을 기본 노동시간으로 주5일을 근무한다. , 노사합의에 의해 한 달에 18시간 내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토요일은 휴무한다.

2. 시업시간은 09:00, 점심시간은 12:00~13:00, 종업시간은 16:00를 원칙으로 하되, 노사합의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6연장근로휴일근무와 시간적립제】

연장근로가 발생했을 때는, 연장근로를 한 시간만큼 휴가를 부여하는 시간적립제를 적용한다. (이하 중략)



ㆍ도서출판 ‘보리’, 철야 당연시했던 관행 파괴

경기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도서출판 보리는 지난 1일부터 하루 6시간씩 주 30시간 노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짧아졌지만 임금은 줄이지 않았다. 직원 32명의 작은 회사지만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신선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진다.

보리는 지난해 5월부터 직원들이 미국 기업 켈로그의 노동단축 사례를 공부하며 여러 차례 노사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 1월에는 노사 합동으로 추진팀을 구성했으며 2월 말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켈로그는 1930년대 초 6시간 노동제를 실현한 미국의 시리얼(우유를 부어 바로 먹는 가공식품) 제조 기업이다.

지난 6일 보리 1층 식당에서는 6시간 노동제 시행 경과 설명회가 열렸다. 윤구병 보리 대표는 “(이번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함께 살기 위해서 정착시킬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만큼 취지를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설명해야 합니다.”


 

윤 대표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우리 출판계의 현실 때문이다. 대부분 영세하고 양극화가 심각한 데다 외주와 임프린트(사내 분사)의 성행으로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국내 출판사 가운데 노조가 있는 곳도 5군데에 불과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보리의 홍보담당 김누리씨(27)도 “자기들만 잔치를 벌이는 귀족노동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보리는 본사 노동자들의 삶의 질만 고려해 6시간제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 대기업 노동자들조차 잔업과 특근을 자처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보리의 시도는 이런 상황에 작은 ‘숨구멍’을 내보자는 것이다. 그 근본에는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에 시간을 빼앗기면서 정작 자기실현을 위한 일들은 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바빠진 노동자들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돈으로 사들여야 했고 갈수록 돈이 더 필요했으며, 그래서 더 일해야 했다. 그 일은 유해식품이나 무기 생산 공장이어도 관계없었다. 이 악순환을 끊어보자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다. 줄어든 노동으로 새롭게 생긴 시간에는 공동체를 가꾸는 데 참여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하거나 물품을 만드는 데 품앗이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부적으로 세부 조율을 거치는 문제뿐만 아니라 8시간 노동제가 일반화돼 있는 상황에서 대외 업체나 독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도 문제다. 6시간 노동제 실무추진팀장을 맡았던 조혜원씨(36)는 “새롭게 얻은 2시간을 생산적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이 본래 취지인데 홀로 도시생활 속에 갇히다보면 자칫 소비나 지출로만 이어지기 쉽다”며 “우리의 시도가 외롭지 않도록 동감하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