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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처럼 강요된 정체성 벗어나려는 게 정치의 출발 아닐까”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61825295&code=960201

ㆍ대안지식연구회 첫 결과물 ‘인문정치와 주체’ 펴내

1969년 전태일이 만든 ‘평화시장 근로조건 실태조사’ 설문지의 11번 항목은 다소 이채롭다. ‘당신 교양을 위한 서적은? A. 본다 B. 안 본다 C. 볼 시간이 없다’. 이어 12번 항목은 ‘취미’를 묻기도 한다. 작업시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질문이 설문지의 주를 이뤘다는 점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대안지식연구회의 첫 결과물인 <인문정치와 주체>(열린길)에서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또한 비슷한 흔적을 발견했다는데 주목한다. 랑시에르는 1830~50년대 프랑스 노동자운동의 문서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낮에는 노동 하지만 밤에는 시와 철학을 공부해 종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봤다. 이를 통해 그는 노동자들이 외부 교육에 의해 지적으로 각성하거나 자의식을 키운다는 전통적 관념을 깨뜨린다.

김 교수는 전태일의 설문지 자체가 스스로 이뤄진 각성의 과정을 상징한다고 본다. 전태일은 “불쌍한 여공들을 보호해달라”는 지배담론의 언어를 답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동자로서 정체성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욕망”을 꿈꾸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전태일처럼 규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남, 즉 ‘탈정체화’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출발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내놓는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원 교수는 “전태일의 언어는 지배담론이라는 ‘적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인 논리를 지닌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고정된 정체성을 강요하는 ‘치안’에 불과하며, 진정한 정치는 새로운 주체를 통치과정에 참여시키는 작업이라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교수는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사건 또한 오늘날 ‘열사 정신’으로 계승되는 그 어떤 것을 넘어 “다른 정치의 가능성”으로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노예처럼 자리매김되고 있었던 ‘겁쟁이 여공’들이 주체로 묶여 일어나 자신들을 둘러싼 지배담론을 깨뜨려야 한다는, 진정한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나누게 된 계기가 바로 ‘전태일의 분신’이라고 분석한다.

<인문정치와 주체>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기적 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주체의 모습과 움직임을 탐색한다. 그것은 김 교수가 전태일에서 새로운 주체와 정치의 가능성을 봤듯,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정치·사회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라는 현재적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책을 펴낸 대안지식연구회는 2008년부터 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젊은 연구자들이 만들었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정한 고려대 HK연구교수, 김윤철·하승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승원 성공회대 연구교수, 이영제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정치학 박사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학 전공자이자 문학평론가다.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흔치 않은 만남이다. 면면을 보면 이명원·오창은·하승우 교수가 운영했던 대안 연구공간 ‘지행네트워크’가 떠오른다. 어느새 40대가 돼버린 그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체험했던 1991년 5월 투쟁, 강경대 사망 10주기였던 2001년에 처음 만났다. 이른바 ‘포스트 386세대’로도 분류되는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기점으로 학문적 관심이 거대담론에서 문화연구나 미시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번 책은 그간의 문제의식을 벼려, 2010년부터 각자 쓴 글을 모아서 상호토론과 보완과정을 거쳐 내놓았다. 김원 교수는 “문제의식의 출발은 30~40대 연구자들이 논문쓰기에 매몰되는 현실, 지식인의 사회적 실천 같은 연구자로서의 고민”이라며 “학문의 논리가 현실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책은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내느냐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컨대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과 ‘광주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 차이다. 5·18을 단순히 반독재민주화운동이라고 여긴다면 독재정권이 사라진 지금에는 저항의 원천으로서의 상징성을 잃고 ‘박제화’될 수밖에 없다. 다만 김정한 교수는 되레 시민군들의 모습에서 초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본다. 평범한 그들의 삶을 복원해야만 국가권력에 종속적이면서도 동시에 그에 저항하는 주체, 용감함과 비겁함의 양면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중들을 떠올릴 수 있고 오늘날 ‘새로운 주체’의 형식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 5월 투쟁은 어떨까. 이승원 교수는 이 사건이 사회적 망각의 대상이 돼 버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주요한 병리적 현상을 불러온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보수세력의 집중적인 ‘도덕성’ 시비로 무너졌던 투쟁은 결국 우리 정치가 민주주의의 실질적 실현보다는 ‘도덕적 순결성’을 강조하는데 급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3·1운동과 8·15해방을 민족적 의미보다 계급적 의미로 해석하고, 4·19혁명의 원천을 반공이데올로기로 상처입은 ‘피해 대중’과 학생들의 연대로 성공한 혁명으로 읽어낸다. 6월 항쟁을 통해서는 일상적인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점을 발견하고, 동학농민혁명에서는 ‘농민민주주의의 열망’을 본다. 1부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주체화의 가능성을 들여다본 학자들은 2부에서 현 시대 각자의 분야에서 느끼는 주체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하승우는 아나키즘에서 꾸준히 일상을 살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평범한 사람들을 발견한다.

오창은 교수는 “그동안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은 저항적 민중 주체와 지배계급의 대립으로만 읽혔다”며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들을 포함해 민중 주체들의 다양성을 살피고, 이 주체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 속에서 연대의 계기가 만들어지는 발전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하려 애썼는데 기존 역사학에서는 어떻게 볼지 조심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