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경상·사진 강윤중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3022002425&code=900308
ㆍ‘시장은 정의…’ 이정전 교수
원숭이와 증권전문가가 투자 대결을 벌였다. 증권전문가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따라 높은 수익률이 예상되는 주식을 매입했다. 반면 원숭이들은 다트를 던져서 매입할 주식을 결정했다. 1998~2004년에 걸쳐 벌어진 실험 결과는 해괴했다. 전문가들의 평균 수익률은 3.5%에 불과했는데 원숭이들은 10.2%에 이르렀던 것이다.
라면과 달리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시장의 상품들은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원숭이의 사례는 그것이 운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떼짓기’가 성행하고 심지어는 사기까지 벌어진다. 미국은 1990년대 이래 세 차례 큰 경기침체를 맞았는데 모두 자본시장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터지면서 시작됐다. 1991년에는 부실 저축은행의 연쇄 파산이, 2001년에는 엔론 사태가, 2008년에는 무분별한 파생금융상품이 경기침체의 원인이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69·사진)는 최근 펴낸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에서 “자본주의 시장은 공정하고 정의로울까”를 되물으며 이런 얘기들을 꺼내놓는다. 우리 소득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이다. 앞서 본 자본시장이 불공정하다면 노동시장은 어떨까. 흔히 경제학은 실업자들이 게을러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한다. 현실을 보면 대부분 노동자들의 선택은 제한돼 있고, 열심히 일하고도 길바닥에 나앉는 일도 허다하다. 미국의 노동경제학 권위자인 앨버트 리조차 “교과서 이론이 현실 문제에 도움되지 않았다”고 술회했을 정도다.
지난달 29일 만난 이 교수는 “이미 시장논리에 복속된 우리 사회에서 시장을 빼놓고 사회정의를 얘기하는 것은 헛된 논의”라고 말했다. “자유경쟁과 시장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시장이 정의롭기만 하면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만 보살피면 됩니다. 그게 바로 선별적·시혜적 복지논리죠. 반면 시장이 공정치 못하다면 대수술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시장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대표적 논리는 “시장에서 이뤄진 모든 결과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상호이익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합의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듯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제3자 피해가 없는 거래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교수는 시장에서 파악하는 사람들의 선호는 ‘1차적 선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담배를 끊고 싶으면서도 계속 피우는 사람의 선호는 무엇일까. 인간 욕망의 구조에 무관심한 경제학자들은 이를 예외적 사례로 치부한다. 반면 과학자들은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1차적 선호가 즉흥적으로 느끼는 욕망을 반영한다면, 2차적 선호는 그 즉흥적 욕망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또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행태가 1차적 선호에 해당하는 ‘열정’과 2차적 선호에 해당하는 ‘공정한 방관자’ 사이의 갈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지난해 벌어진 ‘통큰치킨’ 논란도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맞서 5000원짜리 치킨 출시를 옹호한 이들은 “치킨을 사기 위해 늘어선 소비자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자들의 1차적 선호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은 당장 치킨을 싸게 먹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의 저가 공세가 독과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우려한다. 이것이 2차적 선호다. 이 교수는 “대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지가 곧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약 구입에 혈안이 돼 있는 중독자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이들이 원하는 마약을 대량 공급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과 진배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공적인 선호, 2차적 선호는 어떻게 반영하는가. 바로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사실 대화가 필요없죠. 가격표 보고 돈만 내고 물건 받고 나오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나 정의롭고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시장이 그걸 자꾸 말살하니까 사회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이 교수는 저울과 칼로 재단하는 정의를 추구하기보다 신뢰와 협력, 우애와 경청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맹목적으로 ‘자유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논리는 여러 차례 허구성이 입증됐고 2008년 경제위기로 실증됐다. 그럼에도 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 교수는 “기득권 옹호에 유리한 것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들은 남미나 남유럽이 복지지출 과다로 망했다고 합니다. 수치로만 보면 복지지출이 굉장히 많았으니 사실이죠. 그러나 그 복지지출이 부정부패로 인해 결국 부유층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 교수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재벌개혁에 관해선 새롭게 내놓을 것도 없고 실천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경쟁만을 강조하는 시장에서는 늘 대기업들의 승자독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시장의 고삐를 당기는 일이 핵심이죠.” 이 교수는 “고삐를 죄기 위해선 시민들이 정부를 투표로 압박해야 하며 그래서 올해 선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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