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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대처·레이건 이전 신자유주의 핵심원리 정확히 파악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212023575&code=960201

ㆍ‘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 오늘부터 열려

“자, 이 분석 작업에서 여러분들에게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하지만, 너무 늦었군요. 고맙습니다.”

미셸 푸코(사진)는 사망 3개월 전인 1984년 3월28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이렇게 끝맺었다. 이 말은 결국 유언이자 최후의 작별 인사가 됐다. “준비한 것을 모두 말할 수 없었다”는 뜻으로 들리는 이 말은 오늘날 푸코의 영향력을 따져볼 때 더욱 상징적이다.

푸코는 사후 3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로 손꼽힌다. 푸코를 격렬히 비판한 위르겐 하버마스조차도 “우리 세대의 철학자 집단 가운데 시대정신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린비 출판사는 이런 푸코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22~23일간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특히 주목받는 것은 푸코 사후 1997년부터 계속 발간되고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1970~1984)다. 푸코는 1976년 <성의 역사> 1권을 내놓고도 8년이나 지난 1984년에야 2·3권을 내놓는다. 그것도 1권과 사뭇 다른 주제와 문제의식으로. 그 사이 푸코가 어떤 사유의 변화를 보였는지 추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강의이지만 아직까지 전체 13강 중 9편의 강의록만 발간된 상태다. 이 강의록은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등 현대 정치철학을 주도하는 사상가들에게 공공연하고도 은밀하게 참조돼 왔다.

그 중에서도 <안전, 영토, 인구>(1977~1978)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1978~1979)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5~1976) 강의와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신자유주의를 해석하고 비판하는 3부작으로 꼽힌다. 푸코가 여전히 ‘동시대의 사상가’이자 현재적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푸코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발표하는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푸코는 이미 대처나 레이건이 집권하기 이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연구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 계보를 다루면서 핵심 원리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코는 신자유주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유주의 권력의 핵심을 예속적인 신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본다. 이는 곧 ‘호모 에코노미쿠스’ 혹은 ‘기업가 인간’으로 불리는데, 자유주의는 모든 인간을 ‘비용과 수익’이라는 계산을 중심으로 경쟁하고 모든 위험 부담을 스스로 책임지는 주체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푸코는 사람들이 이러한 품행으로 처신하고 행위하도록 이끄는 기술이나 절차, 자격, 합리성 따위를 ‘통치성’이라 이름붙였다.

이것은 시장의 영역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의 논리도 모두 경쟁과 수익성 위주로 재편되고 모든 행위는 일종의 투자로 여겨지면서 사람들 각각의 삶 자체가 바뀐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도 단순히 정권을 교체하고 경제 정책을 바꾸고 복지 제도를 확충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개개인의 삶이나 가치관, 행위양식 등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근본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코와 사회적인 것’을 주제로 발표하는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는 오히려 푸코가 분석한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발표를 할 예정이다. 서 교수는 “푸코가 자유주의 분석에서 말하는 경제라고 불리는 것, 즉 정치경제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판가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코와 마르크스의 상이한 경제 해석을 대조해 봄으로써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이 되레 신자유주의 분석을 가려버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푸코를 다시 읽기 위한 질문 가다듬기라는 취지다.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를 공역한 심세광 박사는 푸코가 발굴해 낸 고대 그리스의 ‘파레시아’ 개념을 통해 푸코가 만년에 천착한 문제의식을 설명한다. 파레시아는 ‘위험을 감수하는 진실 말하기’를 뜻하는 말로 푸코는 이를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봤다. 고대 그리스 시민이 민회에서 발언하고 논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 자체를 거는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철학적 삶’은 무엇인가 하는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설명이다. 심 박사는 이런 푸코의 고대 사상 독해가 “우리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명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나 잊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