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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광기의 철학자’ 푸코의 삶 조각 맞춰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212025125&code=960201

ㆍ심포지엄 맞춰 출간된 ‘미셸 푸코, 1926 ~ 1984’

“하루는 한 친구가 푸코에게 ‘너 어디 가니?’ 하고 묻자 그는 ‘목을 맬 줄을 사러 베아슈베(염가상품 백화점)에 간다’고 대답해 놀라게 했다.” 고등사범학교 시절 20대 초반의 미셸 푸코는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정신치료기관을 찾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혼란을 겪었던 탓이 컸다. 푸코가 ‘광인’과 ‘정상인’을 가르는 불확실한 선을 처음 접한 순간이다.

‘푸코 심포지엄’에 맞춰 출간된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는 푸코의 저서와 인터뷰,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과 논쟁들,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푸코의 삶을 조각조각 맞춰 보인다. 그 과정에서 푸코의 철학이 싹튼 토양을 살펴볼 수 있는 평전이다. 저자 디디에 에리봉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저널리스트로 일했고 프랑스 지성사에 정통한 학자이기도 하다.

에리봉은 “푸코의 이론 작업은 그의 개인적 경험에 뿌리박고 있다”고 말한다. 푸코는 한 인터뷰에서 “내 개인사 속에서도 내가 배제되었다는 것, 진정 배척되었다는 것, 사회의 그늘 속에 속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였다”고 말한다.

물론 동성애가 그의 모든 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그의 삶이 너무나 다채롭다. 초기에 푸코의 박사논문 <광기와 비이성>은 “페이지 아래 각주가 달려 있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반면 1966년 <말과 사물>은 ‘모닝빵’처럼 잘 팔리게 됐고 알튀세르와 함께 교수자격시험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푸코는 자크 데리다가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크리티크’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싣지 못하도록 부탁한 것이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격렬한 데리다 비판에 나서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평생에 걸쳐 샤르트르, 알튀세르와 같은 당대의 학자와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샤르트르와 각자 확성기 하나씩을 들고 반인종주의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1984년 6월25일 푸코는 숨을 거뒀다. 장례식에서 질 들뢰즈는 푸코의 <성의 역사> 2권 서문을 읽었고 조문객들은 묵묵히 들었다. “철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사유에 대한 비판작업,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