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경상·사진 강윤중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172137225&code=900308
ㆍ‘공장의 역사’ 펴낸 이영석 교수
1914년 1월5일.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갑자기 노동자 임금을 두 배로 인상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포드는 “노동자들도 자신이 만든 차를 구입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이직을 억제하고 숙련된 붙박이 노동자들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의 일관생산 공정에서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참기 어려워한 노동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공장의 역사>(푸른역사)를 펴낸 이영석 광주대 교수(59·사진)는 이 장면을 상징적으로 본다.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자본에 의존하는 임노동자의 지위에 길들여졌고, 기업가 또한 자본의 재생산과 성장을 위해 임노동에 기댔다”는 것이다. 20세기는 무엇보다도 이런 ‘거대한 대공장’들이 지탱한 시대였고 그 공장은 “사회의 기본구조를 형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가 ‘무거운 근대성’이라고 이름 붙인 시대의 특징이다.
영국 경제사를 ‘공장제도 변화’라는 창으로 재구성한 이 책에서 그는 “공장은 근대문명의 토양이며, 그 공장 생산을 둘러싼 사회관계야말로 근대사회의 특징을 이룬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 교수는 20세기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 또한 “거대 공장에서 성립된 노사관계의 역학을 사회 전체로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복지제도 자체도 거대 공장제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거대 공장제도가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체제 자체를 지속시키고 조절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전 인구의 삶에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복지국가 모델은 대공장의 벽 안에서 이루어진 노사 동거체제가 국민적 차원에서 재현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늘날은 탈공장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변화가 빠릅니다. 정보통신과 물류혁명으로 거대한 생산기지의 필요성이 줄고 있어요.” 애플만 해도 설계와 디자인은 미국에서 이뤄지지만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산업 부문마다 편차가 있지만 중후장대(重厚長大)식 거대 공장의 형태는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논란도 탈공장 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지요.”
이 교수는 ‘근대 복지국가의 완성’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한국 사회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특징이죠. 자동차산업 같은 중후장대식 산업이 번영을 누리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던적 탈공장 시대의 요소들이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근대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과연 복지국가 모델이 가장 정합적인가도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19~20세기 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 당시 직면했던 상황과 한국의 조건은 다르기 때문이죠.”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17~18세기 시장 발달과 수요 급증은 생산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고 토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했지만 생태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이를 극복한 것이 증기동력을 이용한 기계였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대공장제가 발달하면서 장인생산의 전통은 급속도로 무너졌고 대신 미숙련 노동자들이 주류로 성장했다.
“19세기 당시에는 그것이 축복이었겠죠.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석연료로 동력을 얻고 기계를 돌리는 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두 압니다. 석탄에서 석유로, 원자력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성찰해야 할 것은 “인간의 주체적인 사유와 판단이 기계의 움직임을 이끌어감과 동시에 생산과정 전체에 더 중요시되는 방식의 재현”이라고 본다.
“전산업시대에는 기계를 사용하면서도 장인들이 자신의 열정이나 숙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질서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공장제 발전과 더불어 단절됐죠. 탈공장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장인생산의 이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봅니다.”
어쩌면 이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과 ‘소규모 지역·자립 생산자의 연대’를 꿈꾸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사학자의 입장에서 “아는 부분만 말할 수 있다”며 “어떤 사회로 나가야 하는지는 종합적 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사고해야 하며 이 자료가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명쾌한 대답을 요구하는데 역사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 단순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국을 공부하는 이유도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낸 국가로부터 뭔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어서는 안됩니다. 인문학 자체가 다른 것 속에서 같은 것을 발견하고 같은 것 속에서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영국과 우리의 차이 속에서 우리 자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족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172137225&code=900308
ㆍ‘공장의 역사’ 펴낸 이영석 교수
1914년 1월5일.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갑자기 노동자 임금을 두 배로 인상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포드는 “노동자들도 자신이 만든 차를 구입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이직을 억제하고 숙련된 붙박이 노동자들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의 일관생산 공정에서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참기 어려워한 노동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영국 경제사를 ‘공장제도 변화’라는 창으로 재구성한 이 책에서 그는 “공장은 근대문명의 토양이며, 그 공장 생산을 둘러싼 사회관계야말로 근대사회의 특징을 이룬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 교수는 20세기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 또한 “거대 공장에서 성립된 노사관계의 역학을 사회 전체로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복지제도 자체도 거대 공장제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거대 공장제도가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체제 자체를 지속시키고 조절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전 인구의 삶에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복지국가 모델은 대공장의 벽 안에서 이루어진 노사 동거체제가 국민적 차원에서 재현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늘날은 탈공장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변화가 빠릅니다. 정보통신과 물류혁명으로 거대한 생산기지의 필요성이 줄고 있어요.” 애플만 해도 설계와 디자인은 미국에서 이뤄지지만 제품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산업 부문마다 편차가 있지만 중후장대(重厚長大)식 거대 공장의 형태는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논란도 탈공장 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지요.”
이 교수는 ‘근대 복지국가의 완성’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한국 사회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특징이죠. 자동차산업 같은 중후장대식 산업이 번영을 누리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던적 탈공장 시대의 요소들이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근대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과연 복지국가 모델이 가장 정합적인가도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19~20세기 유럽 국가들이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 당시 직면했던 상황과 한국의 조건은 다르기 때문이죠.”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17~18세기 시장 발달과 수요 급증은 생산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고 토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했지만 생태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이를 극복한 것이 증기동력을 이용한 기계였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대공장제가 발달하면서 장인생산의 전통은 급속도로 무너졌고 대신 미숙련 노동자들이 주류로 성장했다.
“19세기 당시에는 그것이 축복이었겠죠.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석연료로 동력을 얻고 기계를 돌리는 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모두 압니다. 석탄에서 석유로, 원자력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성찰해야 할 것은 “인간의 주체적인 사유와 판단이 기계의 움직임을 이끌어감과 동시에 생산과정 전체에 더 중요시되는 방식의 재현”이라고 본다.
“전산업시대에는 기계를 사용하면서도 장인들이 자신의 열정이나 숙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질서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공장제 발전과 더불어 단절됐죠. 탈공장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장인생산의 이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봅니다.”
어쩌면 이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과 ‘소규모 지역·자립 생산자의 연대’를 꿈꾸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사학자의 입장에서 “아는 부분만 말할 수 있다”며 “어떤 사회로 나가야 하는지는 종합적 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사고해야 하며 이 자료가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명쾌한 대답을 요구하는데 역사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 단순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국을 공부하는 이유도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낸 국가로부터 뭔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어서는 안됩니다. 인문학 자체가 다른 것 속에서 같은 것을 발견하고 같은 것 속에서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영국과 우리의 차이 속에서 우리 자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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