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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일하지 말고 좀 쉬시라~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 시절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쉬시는 게 오히려 전 사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된다. 예컨대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와 편파왜곡으로 점철된 기사를 쏟아내는 기자들이나 댓글선거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정원의 일부 고위층과 직원들이 그렇다. 제발 일 좀 하지 말고 쉬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 분들은 돈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기에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알아서들 하시겠지. 그러나 정말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대다수일 거다. 언젠가 들었던 윤구병 선생의 강연도 그랬다.

 

"옛날에 모든 노동은 필요노동이었습니다. 지금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최루탄 공장에도, 대량살상무기 공장에도, 유해색소를 만드는 공장에도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열에 아홉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잉여노동입니다. 삶에 불필요한 것을 생산하니까요.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공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먹고살기 위해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단결할 수도 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서로 이익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삶에 해악을 끼치는 것을 생산하는 줄 알면서도 그저 돈을 주니까 우리는 그것을 만드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극이다. 생태사회주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그린레프트>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곳곳에 묻어났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오염을 일으키고 파괴적인 산업에 대개 의존하고 있다.노조원들이 생태사회주의 정치에 결합되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 대안적 생산양식에 대한 요구는 매우 중요하다. 무기 대신에 어째서 풍력 터빈을 생산하지 않는가? 자동차 대신 어째서 버스나 기차를 만들지 않는가?"(182쪽)


해악을 끼치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없는 것들도 무지하게 만들어낸다. 어차피 인생을 통틀어 한 번밖에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이 많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을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쓰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로 구입하기를 부추긴다. 심지어 우리는 폐기물도 잊지말고 꼭 내놓아야 한다. 그게 없으면 폐기물 처리를 하는 업체가 도산하기 때문이다. 만약 집 뒤 텃밭에서 비료를 만들면 비료 회사가 도산한다. "자본주의는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원래 공짜였던 자원을 팔 수 있게 만든다. (...) 그처럼 봉쇄된 접근으로 말미암아 낭비적인 중복 생산이 발생한다."(87쪽)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가 나오고 있다. 최근 붐이 일어나고 있는 협동조합은 대표적 예일 것이다. 생산을 하는데 조합원들끼리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쓸데없고 필요없고 심지어는 해악까지 일으키는 물건들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이 협동조합의 규모가 아직은 너무나도 작다는 사실이다. 최루탄을 만들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기업들은 무지하게 덩치가 큰 기업이다. 이걸 현재로서는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거나 인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이라는 사례가 있지만 특수하고 아직은 머나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결국은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을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하에 두려고 시도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결국은 삼성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 것보다 삼성과 대형마트의 운영구조를 민주화하고 사회화시키는 길이 우리가 가진 욕망에 대응하는 길일 것이다. 대형마트를 가고 삼성 휴대전화를 쓰는 지금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편한데, 이걸 포기하고 다른 방식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론 민주적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 자체가 실패할 확률이 높겠지만... 언젠가는 김상봉 교수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처럼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린레프트>의 사례들을 참조할 만하다.

 

직접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원의 재분배는 생태사회주의사회의 창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한 사회는 자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자주관리라는 주제는 노동의 자유로운 연대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인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미 영국에서는 노동자 소유에 기반한 경영 방식인 뮤추얼과 파트너십이 있다. 영국의 슈퍼마켓 존 루이스 그룹은 모든 이윤을 주주가 아니라 파트너십을 소유한 노동자들과 나눈다.

 

(...) 노동자들의 계획 역시 생태사회주의사회의 건설에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산업이 오염을 일으키고 낭비적이며 위험성이 있다. 환경 및 윤리적 고려와 고용 사이의 충돌은 진보를 가로막는 데 악용될 수 있다. 그 해법은 환경 파괴적인 산업을 긍정적인 대안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무기 체계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공학적 기술은 풍력발전소 건설에 사용될 수 있다. 생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노동자들이 대안적 생산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가지 예로 1970년대의 루카스항공 프로젝트가 있다. 실직의 위협에 직면한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은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서 제품을 생산한다는 대안적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회사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판매하는 군사 장비 대신 사회에 유익한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가능한 제품 목록은 인상적이며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가늠케 해 준다. 계획된 제품들에는 의료 장비, 재생에너지 그리고 청정 운송 수단이 포함되어 있다. (...) 루카스항공 노동자들의 계획은 묵살되었고,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군용 제품 생산은 계속되었다. (89~90쪽)

 

 

[책과 삶]환경파괴 주범은 자본주의…생태사회주의가 ‘출구’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그린레프트
데렉 월 지음·조유진 옮김 | 이학사 | 265쪽 | 1만5000원

 

자동차를 적게 탄다. 타이어 공기압을 채운다. 전구를 효율성 높은 것으로 바꾼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웠던 영화 <불편한 진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만약 영화의 제안을 모든 미국인이 실천한다면 어떨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탄소 배출량은 단 22%가 줄어들 뿐이다. 과학자들은 보통 탄소 배출량이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75%는 줄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생활 습관’의 변화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일회용품을 적게 쓰거나 채식을 하면 좋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개인주의적 접근’에 반대한다. 현재 생태 위기의 핵심은 구조에 있고,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계속 성장해야 한다.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이상주의자, 혁명가로 간주”된다. 성장해서 이윤을 재투자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현대 경제는 안정을 위해 구조적으로 성장에 의존하고 있다. 성장이 흔들리면 패닉에 빠진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상품을 구입한 다음 그걸 버리고 다시 구입하면 경제가 성장한다. 오래 쓸 수 있거나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면 성장은 저하된다. 부족하면 돈까지 빌려주며 소비를 하라고 부추긴다. 이전까지 공짜로 즐겼던 영역, 공유재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주고 사게 만든다. 중복 생산이 벌어지고 낭비는 일상이 된다.

 

공유지나 미개간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로 만들어버렸던 ‘엔클로저 운동’이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 활동의 새로운 영역을 식민지화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장을 통해 우리는 번영했는가? 지난 30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우리가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됐다기보다 그것들의 화폐가치만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20억명이나 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없이 생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생태를 잇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다. 고로 자본주의 경제에 굴복한 일부 녹색당이나, 생태 문제에 무관심한 구 소련식 사회주의와는 뚜렷이 선을 긋는다. 흔히 마르크스는 생태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여기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사회 전체, 한 국가, 또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다 합해도 지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지구의 점유자이고 수혜자일 뿐이며, 마치 한 집안의 훌륭한 가장처럼 그것으로 개선된 상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현재 온실가스의 농도는 지난 40만년 중에 가장 높다. 지난 세기에 기온은 0.7도나 상승했다. 그럼에도 “늘어난 이산화탄소는 식물 성장의 증가와 같은 여러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다국적 석유화학 기업 엑손모빌은 이런 연구기관에 한 해 1600만달러를 지원한다. 기후변화가 ‘지속가능한 개발’이나 ‘배출권 거래제’ 같은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온실가스는 증가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해악을 동일한 시장 논리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는 폐기물마저 처리해야 할 ‘돈’으로만 보일 뿐이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만족함(enough)’이 ‘더 많이(the more)’를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어쩌다 한 번’ 사용할 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과 공유하면 생산의 증가 없이도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장난감을 서로 빌려주고, 카풀을 이용하면 된다. 상점을 가까운 곳에 만들고 서비스가 지역에서 이뤄지게 만들면 자동차 이용이 줄어든다.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더 잘 살 수 있도록 구조를 변화시키면 된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건,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하기 싫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생태사회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쓸데없는 것을 떠밀리듯이 생산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생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이 “학술서적이 아니라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꿈 같은 일은 아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움직임이 일고 있고, 그들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승리를 일궈내고 있다. 책 말미에 공부하고 참조할 수 있고, 지지와 연대를 시도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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