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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

죽은 사람을 관에 넣고 못질까지 한 뒤 막 흙을 덮으려고 하는데 깨어난다면 어떤 심정일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실제 그런 사례들이 꽤 됐던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독을 먹고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게 흔했던 모양이다. 한 남성은 복어독에 죽은 것으로 알고 사신을 화장터로 옮겼는데, 갑자기 시신을 수레에서 내려놓자 마자 깨어났다고 한다. 197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교토에 사는 40세의 남자가 복어 독에 중독되어 병원에 실려왔는데, 곧 숨이 멎었고 모든 증상이 뇌사 상태와 일치했다. 하지만 24시간 뒤 남자는 저절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깨어난 뒤 모든 의식이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필사적으로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생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복어를 먹고 죽은 사람은 매장하기 전 사흘 동안 관 옆에 눕혀뒀다고 한다.

 

유럽에는 '안전관'이라는 것도 있었다. 죽은 것으로 알았는데 매장하기 직전 깨어나는 사례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매장돼도 혹시 숨을 쉰다든가 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관에다 설치한 것이다. 실제로 80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리스 정교회 주교가 이틀 만에 눈을 뜨는가 하면, 1905년 영국의 한 의사는 조기 매장을 모면한 219건의 사례, 산 채로 묻힌 149건의 사례를 책으로 엮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안전관'의 모습(출처 : 위키피디아) "봉인된 상자와 스프링으로 연결된 커다란 유리그릇을 시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혹시라도 숨을 쉰다든지 해서 유리그릇이 미세하게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스프링이 튀어 올라 봉인된 상자 뚜껑이 열리고 빛과 공기가 관으로 들어간다. 이와 동시에 스프링이 기계적으로 연쇄반응을 시작하면서 이 루브 골드버그(단순한 일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처리하게 한 장치) 장치의 진가가 발휘된다. 상자의 1m 20cm 위에 매달린 깃발이 휙 움직이면서 종이 울리는데, 이 종소리가 30분간 지속되면 전깃불이 켜진다. 튜브는 산소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확성기 역할도 한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허약해진 사람의 목소리를 증강해 주는 것이다. -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 191쪽

 

'산 채로 매장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극히 일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 토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보여도 가사 상태일지도 모르니 죽은 지 5일이 지나서 매장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조기 매장을 걱정하던 영국의 유명한 골동품 상인 프란시스 듀스는 자신이 죽으면 시체에서 머리를 절단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무엇일까. 아이티에 실재했던 좀비 이야기를 다룬 <나는 좀비를 만났다>라는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물론 이것도 기사에는 그렇게 반영하지 못했다. 책의 본질적 내용을 소개하느라...)

 

 

오늘날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사들이 결정짓는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타운젠드 대령의 사례를 보면 그 경계가 꼭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타운젠드 대령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심박동수를 줄여서 자기유도 가수면상태, 달리 말하자면 가사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맥박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면서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고 시체처럼 경직되었는데, 30분간 이를 지켜본 의사들은 대령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의사들이 막 돌아가려고 할 때, 타운젠드 대령은 천천히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언론뿐 아니라 법의학에 관한 학술서에서도 수없이 인용되었으며, '지금까지 인류는 가사상태와 죽음의 차이를 명백히 이해한 적이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르는, 가사상태를 일시적으로 일으키는 질병이 있다면 우리는 그 상태만을 보고 죽었다고 판단한 뒤 매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확장하면, 사회가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사회에서는 마법사가 커다란 도마뱀에서 발라낸 길고 가느다란 뼈로 한 사람을 가리키고 죽음의 주문을 외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병들고 거의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던 일은 실마리를 던져 준다. 죽음이 난무했던 생지옥 같은 서부 전선에서 병사들이 아무런 외상을 입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충격으로 쇼크사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의사들은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공포'가 진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청난 생리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는 마법의 주문에 홀린 사람도 전장의 병사들처럼 교감-부신 계통의 과도한 자극을 받아서 치명적인 쇼크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해석으로도 이어진다. 책은 "뇌는 자신을 품고 있는 육체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202쪽)고 말한다.

 

그렇다면 좀 비약같지만, '공포'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죽었소'라고 하는 권위의 목소리가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경우도 있지 않을지.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가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짜로 죽었을지라도 그로 인해 정말 죽어버렸으니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현대의 최신 측정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는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가 발견된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2013-06-22
[책과 삶]좀비 실존 보고서 …아이티 ‘비밀조직’은 범죄자를 좀비로 만들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나는 좀비를 만났다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김학영 옮김 | 메디치 | 404쪽 | 1만6000원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다. 흔히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에 군데군데 상처나고 뜯겨져 나간 몸으로, 두 팔을 내뻗은 채 멍한 표정으로 인간을 향해 돌진하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떠올린다. 1982년 당시 하버드대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실제로 좀비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향정신성 약물을 연구하던 정신과 의사인 네이선 클라인 박사와 그의 동료 하인즈 리먼 교수는 저자에게 좀비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보라는 제안을 한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카리브해 연안의 섬나라 아이티였다. 1962년 봄, 아이티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클레어비우스 나르시스라는 40대 농부는 사흘 만에 숨졌다. 의사 두 명이 그의 죽음을 확인했으며 큰누이는 사망증명서에 지장까지 찍었다. 시신은 냉장창고에 20시간 보관됐다가 안장됐다. 그런데 이 ‘죽은 남자’는 18년 뒤 고향마을의 시장에서 다시 여동생 앞에 나타난다. 재산 문제로 다퉜던 형이 홧김에 자신을 좀비로 만들라고 청부를 했다는 하소연과 함께. 뿐만 아니다. ‘티 팜’이라고 불리던 서른 살의 여인은 1976년에 공식 사망진단을 받았지만 3년 뒤 다시 나타났다. 어머니는 관자놀이의 상처를 확인한 뒤 딸이 맞다고 직접 확인했다.

 

클라인과 리먼은 아이티 전통 사회에 좀비를 만드는 독성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물질은 적당량을 투여하면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대사활동을 낮출 수 있고, 해독제를 투여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래도 관 속에 들어가 땅에 묻힌다면 산소가 결핍돼 죽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뇌세포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자발적인 행동과 사고를 관장하는 뇌세포는 죽을 수 있지만 이 부분만 온전히 살아남는다면 좀비가 될 순 있다고 봤다. 환자를 완벽히 마비시켰다 손상 없이 되돌려 줄 수 있는 이런 ‘동면 물질’을 발견한다면 현대 의학의 불완전한 마취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가능성이 있었다.

 

저자는 이 독성 물질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곧바로 아이티로 떠났다. 아이티에는 ‘부두교’라는 독특한 토속신앙이 존재했다. 이 부두교의 사제들이 마법의 가루를 써서 좀비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소문 끝에 저자는 이 가루를 입수하고 제조법까지 알아낸다.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이 주 성분이었다. 이 독은 죽음에 가까운 심각한 마비를 이끌어낸다. 실제 일본에서도 복어를 먹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화장 직전에 다시 깨어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다시 꺼내진 뒤 ‘좀비의 오이’라고 불리는 독말풀을 먹어야 했다. 이 풀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고기능을 정지시켰다. 좀비가 된 이들은 마음껏 부림을 당했다.

 

하지만 저자는 독성 물질보다 그 너머를 주목했다. 나르시스와 티 팜은 왜 하필 ‘좀비’로 선택됐을까. 가족들의 반응이 힌트였다. 죽었다 살아온 가족이 있으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는 게 상식일 터다. 그러나 티 팜의 어머니는 ‘그 애는 신의 뜻에 따라 죽었다’면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르시스도 가족들로부터 고향을 떠나라고 종용받는다. 알고 보니 그들은 ‘살아있을’ 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티 팜은 늘 사람들에게 욕을 해대는 무례한 여인이었고 도둑질까지 일삼곤 했다. 나르시스는 가족과 자주 다퉜을 뿐더러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으면서도 전혀 돌보지 않았고 과도한 사치까지 부린 인물이었다.

 

그들을 벌 준 건 누구일까. 지역의 한 주민은 말한다. “모두가 죽였어! 한 사람이 죽였을 리는 없어.” 그 말이 정답이었다. 아이티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 단위인 촌락은 수 세기 동안 내려온 ‘비밀조직’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부두교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이 비밀조직의 수장들은 평소에는 평범한 운전기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 동료를 중상모략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등 7가지 규정을 위반하면 재판을 열었다. 유죄가 입증되면 좀비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가혹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비밀조직은 ‘모두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궁핍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음식이나 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수장은 관할 구역 내 주민들의 민주적 합의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다.

 

‘비밀조직’은 아이티의 독특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1700년대 아이티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수십만명의 흑인 노예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본국 사람들의 탐욕을 채워줬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몇 년 동안 압착기에 빨려 들어가 죽은 이들만 1만8000명에 이를 정도로 극악한 노동 환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들은 탈출해 ‘마룬’이라는 독립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그들은 서구 가톨릭 문화와 아프리카 토속 신앙을 결합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했고 훗날 ‘비밀조직’으로 계승된다. 이들이 주축이 된 식민지의 흑인 노예들은 프랑스에 맞서 무장 혁명을 일으켜 승리하기도 했다. 아이티가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흑인 독립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구 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좀비’는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인권침해이자 범죄행위일 테다. 저자는 달리 본다. 부두교 사회에서 좀비화는 사회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조직들의 승인 아래 부과되는 ‘사회적 제재’라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문명 사회라는 곳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사형’이 ‘좀비화’보다 더 자애로운 것이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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