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누런돼지입니다.
(누런돼지 관리자가 아니라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는 누런돼지랍니다...ㅎ)
지난 번 세종대왕 글에 이어 두 번째로 글을 올려 봅니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정치학회 발표 논문을 조선일보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궁금해서 한 번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저는 학술대회 당일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학술대회에 참여한 한 패널은 "조선일보가 진보의 거장이 드디어 우리 품에 안겼다는 식의 보도를 했을 만큼 논쟁적 차원을 넘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라고 말한 모양입니다. 류근일씨도 이번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하셨네요.
조선뿐만 아니라 연합 등 보도를 보면, 최 교수님이 마치 최근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논쟁에서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준 것처럼 돼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2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연례학술대회를 통해 작금 중학교 역사교과서 개정을 둘러싸고 주로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자유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중략) 이런 언급에 의한다면 헌법 정신에 기초해 한국현대사가 추구한 흐름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에 그다지 문제는 없는 셈이다."
보도에 나온 최 교수님의 발언 인용만 보면 그럴듯 합니다.
한 마디로 이런 주장들은 최 교수님이 언급한 자유주의가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같다는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기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어쨌든 최 교수님의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니 그런 얘기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지요.
제목만 보고 기사를 설렁설렁 읽어보면 어쨌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면 족하다"는 진보진영과 역사학계 대부분의 시각을 반박한 것처럼 느껴지지요.
논문을 직접 읽어보자!!
저도 궁금해서 그 논문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한 번 살펴봅시다. 첫 부분부터 최 교수님이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전문을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일으킨 것 자체가 그들이 '자유주의'를 체제 수호의 이념, 정치언어로서 과도하게 수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그들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죠. 다음 부분을 보면 더 확연해 집니다.
결국 굳이 멀쩡한 교과서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하는 이들의 속내는,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로 채색해 왔던 그들이 늘 해 왔던 뻔한 수법이라는 것이죠. 자유주의를 강화하자는 빌미로 북한과의 대결구도, 나아가 남한 내에서 복지 같은 사회주의적(?) 제도 수용,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확연해지는 대목이죠.
이어지는 최 교수님의 글을 보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란 최 교수님의 말을 열심히 인용했던 보수진영에는 안타깝지만 결코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최 교수님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일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자유주의를 배척했던) 진보파들은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
최 교수님은 오늘날 '자유'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파자 중 하나인 한국 사회의 기업엘리트들에게도 일침을 놓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전면적 지원하에 성장한 국가의존적 집단이었기에 자유주의 가치와 상응하기 어려웠으며, 서구에서와 같이 정치적·경제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헤게모니(도덕적 리더십)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입만 열만 '자유'를 외치는 그들이 실은 그닥 '자유스럽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오늘날에도 자행되고 있는 중소기업 죽이기 등을 보면 그 잔재를 알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뉴라이트'를 표방한 이들 보수세력은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최 교수님의 현실인식입니다.
물론 기사에도 언급됐듯 최 교수님의 비판이 향하는 곳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이지만, 진보진영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이념이나 가치, 또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보수에 대해서는 아마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만...
글의 나머지
어쨌든 기사화돼 논쟁이 된 나머지 논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겠습니다.
최 교수님은 진보파가 이러한 보수파의 '냉전적' 자유주의에 반발해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데 하나의 비극”이라는 평가죠.
진보진영이 자유주의를 “냉전반공주의 이외의 다른 말이 아닌 것 혹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구 질서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진보파들은, 그 구 질서가 자유주의 또한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유주의 기반 없는 민주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이 과정을 최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좌우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라고 표현합니다. “보수, 진보 모두 다른 이유로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동안 양쪽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집단(합)주의적인 반자유주의의 경향성을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죠.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추구한 보수와 마찬가지로 진보 또한 냉전반공주의에 맞서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민족주의적 노력과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의 건설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분석입니다.
요컨대 진보, 보수 모두 국가나 집단에 맞선 개인의 권리, 자유와 같은 가치보다는 으쌰으쌰하면서 집단적으로 나가는데 중점을 뒀다는 얘기죠.
그래서 최 교수님은 로크와 몽테스키외, 토크빌이 제시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갑니다. 예컨대 “한국의 보수정부 하에서 시민적 기본권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면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나 의사가 개개시민의 자유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가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정치·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권력이 엘리트 중심으로 중앙집중화되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현상 또한 자유주의의 허약해서 시민적 자율성을 낳지 못한 탓이라고 보십니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죠.
이런 맥락에서 교수님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성찰로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된 조건들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최 교수님이 늘 강조해 오셨던 문제의식, 즉 정당정치의 강화로 결론은 모아집니다. 자유주의적 실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위해 자율적 결사체,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일부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 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경향성”에 대해 자유주의가 “해독제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말씀 중 인상 깊은 구절을 남기면서 이만 갈음하겠습니다. 꾸벅(--)(__)(--)
(누런돼지 관리자가 아니라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주로 서식하고 있는 누런돼지랍니다...ㅎ)
지난 번 세종대왕 글에 이어 두 번째로 글을 올려 봅니다.
최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정치학회 발표 논문을 조선일보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궁금해서 한 번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저는 학술대회 당일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학술대회에 참여한 한 패널은 "조선일보가 진보의 거장이 드디어 우리 품에 안겼다는 식의 보도를 했을 만큼 논쟁적 차원을 넘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라고 말한 모양입니다. 류근일씨도 이번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하셨네요.
조선뿐만 아니라 연합 등 보도를 보면, 최 교수님이 마치 최근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논쟁에서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준 것처럼 돼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2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연례학술대회를 통해 작금 중학교 역사교과서 개정을 둘러싸고 주로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자유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중략) 이런 언급에 의한다면 헌법 정신에 기초해 한국현대사가 추구한 흐름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에 그다지 문제는 없는 셈이다."
보도에 나온 최 교수님의 발언 인용만 보면 그럴듯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서 얻을 게 많다."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적극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 이유로 나타났다"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적극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 이유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이런 주장들은 최 교수님이 언급한 자유주의가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와 같다는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기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어쨌든 최 교수님의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니 그런 얘기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지요.
제목만 보고 기사를 설렁설렁 읽어보면 어쨌든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면 족하다"는 진보진영과 역사학계 대부분의 시각을 반박한 것처럼 느껴지지요.
논문을 직접 읽어보자!!
저도 궁금해서 그 논문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한 번 살펴봅시다. 첫 부분부터 최 교수님이 그들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전문을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민주화 이전 보수파들에게 자유주의는 체제를 수호하는 공식적인 이념이자 정치언어, 슬로건으로서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수용된 바 있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교과서내용을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둘러싼 좌우이념논쟁이 일어난것도 그러한 현상의 하나이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자유주의를 실천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렇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논쟁을 일으킨 것 자체가 그들이 '자유주의'를 체제 수호의 이념, 정치언어로서 과도하게 수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그들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 아니란 것이죠. 다음 부분을 보면 더 확연해 집니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해방 후 민족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이념적 갈등이라는 환경 하에서 분단국가가 건설됐을 때, 제도 건설을 뒷받침하는 공식 이념으로 수용되었다. 민주주의가 이념이라기보다 정치체제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수용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민주주의의 수식어가 되는 자유주의는 사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하면서 이념적 갈등의 중심적 요소로서 자기 위상을 갖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갈등이 분단을 가져왔던 것만큼 냉전 하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곧 급진적인 냉전 자유주의를 의미했고 그렇게 실천되었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데 있어 하나의 비극이었다. 보수파들은 실제로 자유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수용하고 실천하기보다 이를 반공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했고, 그에 반하여 진보파들은 그것이 사실상 냉전반공주의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고 비판하였다."
결국 굳이 멀쩡한 교과서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하는 이들의 속내는,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로 채색해 왔던 그들이 늘 해 왔던 뻔한 수법이라는 것이죠. 자유주의를 강화하자는 빌미로 북한과의 대결구도, 나아가 남한 내에서 복지 같은 사회주의적(?) 제도 수용,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확연해지는 대목이죠.
이어지는 최 교수님의 글을 보면, 최 교수님이 말하는 자유주의란 최 교수님의 말을 열심히 인용했던 보수진영에는 안타깝지만 결코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최 교수님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자일수는 있어도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동시에 (자유주의를 배척했던) 진보파들은 자유주의자일 수 있다.”
최 교수님은 오늘날 '자유' 이데올로기의 주요 전파자 중 하나인 한국 사회의 기업엘리트들에게도 일침을 놓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전면적 지원하에 성장한 국가의존적 집단이었기에 자유주의 가치와 상응하기 어려웠으며, 서구에서와 같이 정치적·경제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헤게모니(도덕적 리더십)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입만 열만 '자유'를 외치는 그들이 실은 그닥 '자유스럽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오늘날에도 자행되고 있는 중소기업 죽이기 등을 보면 그 잔재를 알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뉴라이트'를 표방한 이들 보수세력은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최 교수님의 현실인식입니다.
물론 기사에도 언급됐듯 최 교수님의 비판이 향하는 곳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이지만, 진보진영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최근 년에 들어와 보수주의이념이나 가치, 또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면서 자유주의를 속류화하거나 급진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보수에 대해서는 아마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시는 듯 합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생각입니다만...
글의 나머지
어쨌든 기사화돼 논쟁이 된 나머지 논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겠습니다.
최 교수님은 진보파가 이러한 보수파의 '냉전적' 자유주의에 반발해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자유주의를 수용하는데 하나의 비극”이라는 평가죠.
진보진영이 자유주의를 “냉전반공주의 이외의 다른 말이 아닌 것 혹은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구 질서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진보파들은, 그 구 질서가 자유주의 또한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유주의 기반 없는 민주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이 과정을 최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좌우구분에 있어 흥미로운 패러독스”라고 표현합니다. “보수, 진보 모두 다른 이유로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동안 양쪽 모두 민족주의적이고 집단(합)주의적인 반자유주의의 경향성을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죠. 국가중심적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추구한 보수와 마찬가지로 진보 또한 냉전반공주의에 맞서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민족주의적 노력과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의 건설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분석입니다.
요컨대 진보, 보수 모두 국가나 집단에 맞선 개인의 권리, 자유와 같은 가치보다는 으쌰으쌰하면서 집단적으로 나가는데 중점을 뒀다는 얘기죠.
그래서 최 교수님은 로크와 몽테스키외, 토크빌이 제시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갑니다. 예컨대 “한국의 보수정부 하에서 시민적 기본권들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면 민주주의 하에서도 국가의 목표나 의사가 개개시민의 자유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가 항상적인 위협 하”에 놓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정치·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권력이 엘리트 중심으로 중앙집중화되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현상 또한 자유주의의 허약해서 시민적 자율성을 낳지 못한 탓이라고 보십니다. “허약한 사회의 기초 위에 강력한 국가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는 국가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죠.
이런 맥락에서 교수님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성찰로 “오늘날의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된 조건들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유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과부하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최 교수님이 늘 강조해 오셨던 문제의식, 즉 정당정치의 강화로 결론은 모아집니다. 자유주의적 실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화를 위해 자율적 결사체, 포괄적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일부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 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경향성”에 대해 자유주의가 “해독제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말씀 중 인상 깊은 구절을 남기면서 이만 갈음하겠습니다. 꾸벅(--)(__)(--)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적 지형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지울 수 있을까? 그것은 진보, 보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진보가 어떤 천명되고 언표화된 이념과 이론, 또는 그것을 표현하는 정치적 언어의 진보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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