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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타이밍

'기업 대학'에 저항하는 법

"안녕하지 못한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기업 대학에 맞서 싸워야만 했던 평범한 대학생의 미련한 분투기"

 

<기업가의 방문>(후마니타스)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중앙대 노영수씨의 이야기를 노씨가 직접 글로 쓴 겁니다.

 

그래서 책은 '대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업대학 탐사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그는 기업 대학들 중 가장 노골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중앙대의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2008년 5월 두산은 중앙대를 인수합니다.

이사장이 된 두산중공업 박용성 회장은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언하고

총장직 임명제, 계열별 부총장제, 등급별 교수 평가와 차등 연동제, D학점 5% 의무 부과제 등

기업식 경쟁 체제를 대학에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로 통폐합하라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죠.

 

저자는 이후 교육 여건에서부터 학생 자치 활동에 이르기까지

대학 공동체는 곳곳에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대형 강의가 늘어나면서 강의실은 콩나물시루가 되었고

교양 과목이 축소 통폐합되고 회계학이 필수과목이 되었습니다.

교수들은 S, A, B, C 등급으로 등급화해 연봉을 차등 지급하고

3년 연속 C등급을 받으면 개인 연구실을 회수하고 대학원 강의를 제한하는 조치까지 내려졌습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반발했습니다.

저자는 진중권 교수를 해임하겠다는 대학에 처음으로 반대를 외칩니다.

 

이후 눈에 띄는 농성장을 만들기 위해 학교 교정을 성황당처럼 꾸며 보기도 하고

본관 앞에 시멘트 블록으로 '불통의 벽'을 쌓기도 하고, 삭발도 하고, 타워크레인에도 올라갑니다.

 

이후 재단에 맞던 그에게 남은 건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퇴학, 학교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등이었죠.

 

그는 학교로부터 2500만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받았습니다.

그리고 전과 4범의 대학생이 되었죠. 분명 대학에 맞서기 전엔 평범한 대학생 그 자체였는데 말이죠.

 

이후 징계 철회를 위한 55km 삼보 일배 대장정을 했고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학교에 돌아갈 수 없었고 2014년 11년간의 대학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이 책을 냈습니다.

 

 

 

 

2010년 경향신문은 2010년을 마무리하면서

노영수씨를 '2010 사건과 사람' 5번째 인물로 꼽았네요.

 

당시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2010 사건과 사람](5) 대학 상업화와 중앙대 노영수씨


노영수씨가 4·19 혁명 당시 희생된 6명의 중앙대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의혈탑’ 앞에 섰다. 노씨는 이 탑의 표지석에 새겨진 문구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젊은 혼”이 되고자 한다. | 이상훈 선임기자

ㆍ“대학을 기업식 구조조정, 상아탑의 가치 실종됐다”



중앙대학교는 철학과 학생이든, 예술대 학생이든 의무적으로 회계학을 들어야 한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취업경쟁력 강화 쪽으로 커리큘럼을 바꿨기 때문이다. 중앙대는 또 경쟁력 없는 학과는 통폐합하기로 했다.

노영수씨(28·전 중앙대 독어독문학과)는 이 같은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발해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다 지난 4월 퇴학당했다. 노씨는 지난 7월 두산 본사 앞에서 농성하다 자신을 감시하던 두산 직원이 들고 있던 ‘노영수 관련 동향 보고’라는 문건을 발견했다. 노씨는 “학교 측에서 나에 대해 사찰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학교 측과 싸우고 있다. 현재 업무방해, 퇴학처분 무효소송 등을 포함해 3개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중앙대는 노씨의 크레인 점거 투쟁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됐다며 2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대학 당국이 학생들을 돈으로 길들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대학의 기본이 되어야 할 윤리와 정의가 사라진 겁니다. 이게 지성의 전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요?”

최근 들어 대학에서도 ‘구조조정’ 붐이 일고 있다.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기업 요구에 맞춰 ‘쓰임새 있는’ 인력을 공급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문사회과학 등 비인기 학과는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대는 이 같은 ‘변화’의 선두에 서 있다.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에서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경영대를 집중 육성하는 대목이다. 전교생이 취업을 위해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듣도록 커리큘럼이 바뀌었고, 의생명공학·금융공학·디자인학부도 신설됐다.

노씨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의 가치인 정의, 윤리, 창의성 등이 실종됐다”며 “교육의 주체인 학생을 배제한 채 대학 당국 뜻대로 학과를 없애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학뿐 아니라 동료 학생들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표시했다.

“스펙과 효율을 위해 주변 한 번 돌아볼 여유 없이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안타깝습니다. 대기업이 인수한 만큼 취업에 유리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학생들도 비판을 꺼리고 있어요.”

기업식 구조조정은 비단 중앙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국대도 입학률이 저조한 학과를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자신들이 특성화학과로 자랑해오던 북한학과도 폐과 위기에 놓였다. 대학의 상업화 기류는 심지어 국공립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면서 국공립대마저 거대한 자본의 틀 안으로 흡수될 처지다.

대학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노영수씨처럼 자성하는 젊은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씨(24)가 대자보를 붙이고 홀연히 학교를 떠났다. 대자보에서 김씨는 이렇게 썼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 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대학의 상업화, 시장화, 취업학원화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다. 김씨의 ‘인간 선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그를 지지하는 청년들이 인터넷포털 다음에 카페 ‘김예슬 선언’을 만들기도 했다. 노씨는 “ ‘김예슬 선언’이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며 “대학이 자본에 길들여지면 부조리하고 잘못된 일이 사회에서 뻔뻔하게 행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중앙대 측은 노씨 퇴학 조치와 관련, “학칙위반에 따라 처분한 것”이라며 “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미래인재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이 인문학 말살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에서 노씨 기사를 쓴 것을 찾아봤습니다. 당시 상황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심각하네요.

 

 

[현장에서]중앙대 구조조정 반대 학생 또 퇴학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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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중앙대에서 독어독문학과 노영수씨(28)가 퇴학 징계를 받았다. 지난달 14일 “교직원과 몸싸움을 하고 폭언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총학생회 교육국장인 김주식씨(25)를 퇴학시킨 데 이어 두 번째 내려진 조치다. 노씨의 퇴학 처분은 지난 3월 구조조정 반대 시위 중 채증을 하려던 관리직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교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인 것이 주된 이유다. 고공시위가 언론에 보도돼 대학 이미지가 훼손된 데다 노씨가 ‘학교를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정당성을 상실한 대학에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앙대는 노씨가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난달 8일 한강대교 아치 난간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인 김창인(20)·표석(21)씨에 대해서는 무기정학·유기정학 처분을 각각 내렸다. 김씨는 집회시위법 위반 전력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2008년 5월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는 경쟁력·성과·취업률이 중심 가치로 자리잡은 기업식 대학운영의 상징이 됐다. 대학 동문과 학생들도 우려하는 초강수 ‘퇴학’ 카드를 연달아 빼든 배경이다. 중앙대는 징계 후에 “극소수 학생들이 이번처럼 극단적인 돌출행동으로 반대한다면 우리 대학은 큰 혼란에 빠져 필요한 개혁을 할 수가 없다”며 “재단의 투자의욕과 도약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학본부가 재단의 ‘전위부대’로 나섰다는 학내 논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방증이다. 중징계 처분을 받은 4명의 학생들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지성과 비판적 기능이 살아 있고 사회나 구성원들과 소통이 되는 대학을 바란 것이다. 고공시위라는 극단적 저항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내려진 중징계는 그들이 우려한 ‘기업화된 대학’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중앙대 재단 ‘퇴학생 동향보고’ 문건 발각



ㆍ두산중공업서 파견 직원그룹 비판 퇴학생 감시

ㆍ당사자 “경찰에 고소할 것”



중앙대가 두산그룹의 재단 인수와 운영을 비판하다 퇴학당한 학생을 계속 감시·미행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그를 미행하다 적발된 재단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에서 파견 근무 중인 직원이었다.

25일 중앙대 총학생회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주변에서 중앙대 학생들과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 등이 집회를 몰래 사진촬영하는 두산중공업 소속 직원 오모씨(32)를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오씨는 학생들에게 발각되자 택시를 타고 도주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학생들에 의해 40여분 만에 종로5가에서 붙잡혔다.

현장조사 결과 오씨는 지난 5월 중앙대에서 퇴학당한 노영수씨(28)의 최근 동향을 기록한 ‘노영수 관련 동향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소지하고 있었다. A4용지 3장 분량인 이 문건에는 노씨의 이날 행적과 동선, 다음날 일정 등 노씨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문건의 첫장에는 노씨의 일정에 대해 ‘24일 오후 2시40분 동대문 두산타워 건너편에서 두산 노동자 및 학생 일동과 집결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집회에 대해 ‘현재 교내 대안포럼 행사 관계로 학생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파악됨’이라는 의견과 함께 ‘(중앙대) 문과대 유○○ 실장이 노씨와 면담 계획 중’이라고 적어놨다. 또 노씨의 다음날 일정으로 ‘25일 오전 10시 명동성당 정문 계단 앞 1인시위 예정’이라고 적었고, ‘1인시위 피켓 제작, 피켓 글자에 LED 조명 부착’이라며 상세한 시위 내역도 기록됐다.

노씨는 동향보고 문건을 압수해 현장에 출동한 효제파출소에 보관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노씨는 “문건의 다른 2장에는 지난 1주일간 내가 남대문·동대문시장과 세운상가 등을 돌며 각종 집회 관련 물품을 산 내역이 시간대별로 적혀 있다”며 “26일 문건의 나머지 2장을 열람한 뒤 오씨를 경찰에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단 측이 노씨의 동향을 감시·미행한 것은 노씨가 퇴학을 전후해 지속적으로 두산그룹을 비판하는 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학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노씨는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성과·취업률 등을 중심으로 한 학과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본격화하자 이에 항의하는 학내 활동을 벌이다 퇴학처분을 받았다. 노씨는 이후 퇴학처분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꾸준히 벌였고 중앙대 총학생회, 두산계열사 노조 등과 함께 두산그룹의 노무정책을 비판하는 집회 등에도 참가해왔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성명을 통해 “재단과 두산 측이 퇴학생을 불순분자 다루듯 뒤를 밟아 조사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학내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노씨가 퇴학 후에도 학교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고 향후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공언하고 있어 노씨의 활동을 파악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반대 시위 중앙대생 퇴학 무효”

ㆍ승소 판결 받은 노영수씨



중앙대의 기업식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퇴학 처분을 받은 노영수씨(29·사진) 등에 대한 학교의 중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박경호 부장판사)는 14일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은 노씨와 김주식씨(27), 무기정학을 받은 김창인씨(21)가 중앙대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노씨 등은 2008년 5월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가 기업식 구조조정안을 내놓자 이에 저항하다 학교 측으로부터 지난해 4~5월 중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8월 “학교 측이 ‘학생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에도 해당되지 않는 이유로 징계를 내렸고, 설사 징계사유가 존재하더라도 재입학이 허가되지 않는 퇴학처분은 징계권 남용”이라며 학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중앙대는 두산그룹에 인수된 뒤 경쟁력·성과·취업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해왔다.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부로 통폐합했다. 경영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모든 학생에게 취업을 위해 회계학을 필수적으로 듣도록 했다.

노씨 등은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교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저항해왔다. 이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학의 가치인 정의, 윤리, 창의성 등이 실종됐다”며 “교육의 주체인 학생을 배제한 채 대학 당국 뜻대로 학과를 없애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대는 그러나 “극소수 학생들이 극단적 돌출행동으로 반대한다면 우리 대학은 필요한 개혁을 할 수 없고 재단은 투자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며 징계 처분을 내렸다. 노씨는 퇴학처분 뒤 두산계열사 노조원 등과 함께 두산그룹을 비판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날 선고 직후 노씨는 “판결이 나기 전 조금 긴장했지만, 주변에서 이변이 없는 한 승소할 것이라고 해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저의 승리는 상식과 양심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퇴학을 무효로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에서도 이긴 그는 오는 3월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학 측과 노씨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앙대는 노씨의 크레인 점거 투쟁으로 공사가 지연됐다며 노씨 등을 상대로 2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상태다.

이날 판결에 대해 중앙대는 “아직 명확한 입장은 없다”며 “노영수 학생 등과 관련된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사설]중앙대는 ‘구조조정 반대’ 퇴학처분 당장 철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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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가 대학의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퇴학 등 중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는 지난 14일 지난해 퇴학과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3명이 중앙대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등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학교 방침에 반대한다고 대학이 학생을 내쫓을 수 없음을 재확인한 것일 뿐 아니라, 중앙대가 학과 구조조정을 대학 구성원들과의 소통없이 강행해왔음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뒤 ‘대학의 기업화’ 논란으로 진통을 겪었다. 박용성 이사장(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 이야기이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18개 단과대학·177개 학과를 46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교수·학생들이 기초·인문학을 위축시키는 ‘돈 벌이’식 구조조정이라며 크게 반발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번에 소송을 낸 노영수씨는 지난해 5월 교내 신축공사장의 타워크레인에서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고공시위를 벌여 퇴학처분을 당했다. 대학은 징계사유로 학교 이미지의 심각한 훼손을 들었지만, 법원은 제동을 걸었다. 중앙대의 징계는 교육적 목적에서 일탈했다고 본 것이다. 퇴학처분에 대해 노씨는 중앙대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두산대’에서 해고됐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모습이다. 교육보다 효율을 앞세우고, 돈이 된다면 기꺼이 악마와의 거래도 불사하려는 뻔뻔함마저 보이고 있다. 반대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징계권을 남용하기 일쑤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건 헛소리라면서도 직업교육소로 이름을 바꾼 대학은 단 한 곳도 없다. 중앙대는 이런 ‘대학의 기업화’를 여느 대학보다 더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의심을 받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중앙대 퇴학생들도 대학의 구조조정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이사장의 소신만 앞세워 반대하는 학생을 퇴학시키고,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건 잘못이다. 중앙대는 구조조정이든 혁신이든 하려거든 당당하게 해야 한다. 반대한다고 학생들의 입을 막고 내칠 것이 아니라 소통부터 해야 마땅하다. 대학은 이사장의 사유물이 아니다.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어야 한다.

 

 

 

 

퇴학무효 소송 승소 중앙대생, 학교측 이번엔 ‘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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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이 죄수번호가 됐습니다.”

28일 오후 중앙대 본관 계단 앞에 이 학교 독문과 3학년인 노영수씨(29)가 맨발에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채 스티로폼으로 만든 감옥 안에 앉아 있었다. 감옥 앞에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의 광고 슬로건이 붙어 있고 철창에는 두산 로고 모양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중앙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였다.

노씨는 지난해 4월 학과 통폐합과 회계학 의무 이수 등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해 학교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노씨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지난 1월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퇴학처분 무효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중앙대는 3월23일까지 두 차례 상벌위원회를 열어 노씨에게 1년2개월의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복학해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있던 노씨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지난 10개월은 고통스러운 기간이었고 사실상 징계였습니다. 학교가 퇴학이라는 조치를 내린 것에 사과도 없이 다시 1년2개월의 유기정학을 내린 것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중앙대는 노씨와 함께 퇴학무효 판결을 받은 김주식씨(27·철학4)에겐 무기정학을, 김창일씨(21·철학2)에겐 1년6개월의 유기정학을 내렸다. 김주식씨는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학내 언론을 탄압하고 저항하는 학생들을 길들이기 위해 징계를 내리며 자기 입맛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일 자체가 내게는 힘겨운 투쟁이 되었다”며 “학교의 무기정학 처분에 맞서 다시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중앙대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은 징계해야 할 사유는 분명하지만, 징계 수위가 지나치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취지에 따라 재심의를 해 학생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췄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이 징계 결정을 받아들이고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징계가 경감될 수도 있다”며 “반대로 학교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가중처벌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로부터 4년이 지났네요.

 

노영수씨는 이 책을 두산중공업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산에 맞선 그들과의 연대와 우정 때문이다. 무려 11년간이나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복직 투쟁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들을 호명하는 것은 단지 여전히 투쟁 중인 네 분의 노동자들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모자라 대학에까지 쳐들어와 교육까지 망쳐놓은 두산과 박용성 이사장에 대한 호명이기도 하다. 악덕 기업에 의해 파탄 난 삶의 공간을 되찾기 위해 두산에 맞서는 사람들, 더 나아가 두산을 바꾸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학의 기업화' 결국 '기업 대학' 중앙대뿐의 문제는 아니죠.

 

이제 기업이 아닌 대학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노씨가 에필로그에 쓴 글은 마음을 치네요. 한 번 읽어보세요.

 

 

열심히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일개 대학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수많은 대학에서도 '기업화'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았다. 한국 사회의 권력이 정치의 영역에서 자본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여지없기 대학마저 삼켜 버렸다. 학문은 상품이 되었고, 학생은 그 상품의 소비자가 되었으며, 교수는 그 학문의 생산자가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시장 원리에 따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채찍을 맞아야 했다.

 

대학은 더 이상 성찰적 시민을 양산하는 공간도, 시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공간도 아니었다. 대안은커녕, 시장이 원하는 부품을 찍어 내기에 바쁜 공장, 직업 양성소가 되어 버렸다. 대학은 점차 시장을 닮아 갔다. 유감스럽게도, 대학이 시장을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학 역시 정글이 되었다.

(에필로그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