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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타이밍

일제시대 강장제 광고는 어땠을까

 

 

 

 

옥시크린 광고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ㅎㅎ 바로 "빨래 끝~"이라는 외침이죠.

 

이 광고는 "대한민국 주부들의 30년 외침"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1984년부터 옥시크린 광고를 보여주죠.

주부들이 한결같이 외칩니다. "빨래 끝~"

 

주인공은 늘 여자입니다.

1984년부터 1988년, 1990년, 1996년, 2002년 모두 주부가 주인공입니다.

1996년에 처음 남자가 등장하지만 주부의 아들로 보이는 남자로 보조 인물이죠.

그렇다면 이 광고에서 처음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2013년입니다.

 

1984년부터 2013년까지 남자가 '빨래 끝~'을 외치는 데에는 자그마치 30년 가까이가 걸렸습니다.

 

광고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셈이죠.

빨래는 여자의 일이라고.

 

2012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조사 결과

광고의 주 등장인물 114(여성 60, 남성 54)의 역할을 보면

어린이와 함께 등장해 부모 역할을 하는 여성은 6명이었고 전문직 역할을 하는 여성은 2명이었습니다.

반면 남성은 3명이 부모 역할로 등장하고 7명이 전문직 역할로 등장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사례죠.

광고를 보는 시청자에게 남성이 전문가로서 해야 할 역할을 더 많이 담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여성은 여전히 엄마, 주부로 재현되거나 성적인 표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당시 광고 속에서 변화하는 여성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08년 유럽의회는 '성역할 광고 중단 보고서'를 승인하기도 합니다.

남자는 밖에서 세차하고 여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는식의 광고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 것이죠.

 

 

다음 광고 보실까요. 밥솥 광고입니다.

 

 

 

 

장동건이 말합니다.

"요즘 밥 먹고 살기 힘들지. 힘들면 연락해. 내 전화 한통이면 밥이 된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등장합니다.

스마트폰 터치로 전기밥솥에 밥을 하네요.

그리고 광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의 터치로 밥이 되는 쿠첸 NFC 기능"

 

밥솥 광고에 남성이 등장하니까 진일보한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 정장 빼 입은 장동건이 스마트한 밥솥 기능을 설명해주는 게

과연 밥하는 일이 남자도! 하는 일이라고 보여주는 걸까요.

 

여기서 남자 주인공은 '스마트한 밥솥'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보입니다.

장동건이 앞치마라도 하고 나왔다면 정말 '밥하는 남자'로 보였을 것도 같은데요.

 

 

 

 

ㅎㅎ 너무 삐딱한가요?

 

최근 나온 신간 <상품의 시대>(권창규 지음, 민음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성 엘리트 제작자의 생산물로서 근대 광고가 대변하는 바는 기업이라는 새로운 가부장의 목소리다. 근대 광고는 전통적인 소비 시장과 구매 습관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고 자본주의적인 생활 가치를 주입했다. 소규모의 생산과 소비, 공동체적인 관습에 '젖어 있는' 이들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무리로 규정되었다. 이성적인 남성 엘리트의 발화 형식은 사람들을 '여성화', 다시 말해 감정적이고 무지한 일군의 무리로 묶어 냈다. 실제로 소비 영역으로 분리된 여성이 집중 공략이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성 발화자가 미숙한 대중을 상대로 훈육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소비자는 '여성화'되었다. (60쪽)

 

이 책은 20세기 초 한국 소비 사회의 시작을 '광고'를 통해 되짚어 본 책인데요.

21세기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네요.

 

책 내용을 먼저 살펴볼까요.

 

한국에서 소비 사회가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개항지를 중심으로 박래품이 유입된 이후입니다. 

낯선 물품들이었기에 이를 알리는 광고가 필요했죠.

그러나 광고는 단순히 물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숩나다.

“상품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죠.

결국 광고라는 신화는 상류층의 생활을 표준으로 제시하며

사람들의 계층 상승 욕망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광고도 그렇죠? 

 

한 번 당시 광고를 살펴볼까요. 현재 우리 광고와 얼마나 닮았는지 살펴보세요. 재밌습니다.

 

 

 

 

다정한 부부를 내세운 조미료 광고입니다.

"안해(아내)의 음식 솜씨를 돋우고 수고를 덜어주고 경제하시는 남편은 잊지 않고 아지노모도를 사 오시지요!"

라는군요.

 

조미료 이름이 '아지노모도'인데요.

1938년 <조광>에 실린 광고입니다.

 

이렇게 다정한 남편, 알뜰한 아내의 표상은 현대 광고에서도 무한 재생되고 있죠.

 

 

 

강장제 광고입니다.

동아일보 1938년 2월 27일자에 실린 광고인데요.

 

"몸도 마음도 늙지 않는 묘법", '킹 오브 킹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성기의 무능과 성욕의 쇠약은 남자의 대적(大敵)이니 속히 격퇴하라"라는 문구도 있네요 허허.

"먹으면 그날에 곧 알게 되는"이란 말도 있구요.

요즘 광고 못지 않습니다. ㅎㅎ

 

이때에도 주로 여성을 '야하게' 만든 광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여성의 눈이 웃은 건지 게슴츠레하게 처리돼 있네요 ^^;;;

광고에서 여성은 '대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책은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광고를 살펴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우리의 욕망인데요.

광고는 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상품화하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제 누구나 다 성공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고 건강한 몸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성은 유희의 대상으로 부상했고 민족과 국민이라는 가치가 일상에서 구현되기 시작했죠.

 

광고는 이 가치들을 삶의 표준으로 제시하며 소비를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광고는 새로운 가부장으로 등장한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의식주를 공급하고

삶의 윤리와 철학까지 가르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오늘날 '소비 인간'이 된 우리들의 과거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현재 '소비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요.

 

생산자로서 상품을 대면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때, 그보다 더 빠르게 소비 이데올로기가 뿌리내렸던 때를 지나서 현재에 이르렀다. 오늘날처럼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모두가 생산자는 아니지만 모두가 소비자들이다. 소비 인간(Homo consumus)은 상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구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었고 오늘날 우리 모두의 이름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거쳐 국가의 역할은 다시 최소화되었고, 기업적 가부장제는 더 은밀하고 더욱 강성해졌다. (3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