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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관리자

왜 일본군은 독도에 망루를 세웠을까

지난 18일에는 독도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일 1905년 독도 점유 군사적인 목적 때문”

 

 

일본이 러일전쟁에 대비해 독도에 설치한 망루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동도와 서도에 1개씩 설치했으며 연두색 선은 망루에서의 관찰 가능 범위를 가리킨다.

ㆍ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일본 ‘메이지 해전사’ 발굴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략적 거점으로 1905년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기 훨씬 이전인 1899년부터 독도 일대를 해군기지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지학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86·사진)은 최근 일본이 1899년 독도에 군사기지를 세우고자 했다는 내용이 담긴 <극비(極秘) 메이지(明治) 37~38년 해전사>를 발굴했다. 메이지 37~38년은 러일전쟁(1904~1905) 시기다. 그는 이를 토대로 20일 열리는 역사연구소(소장 조용욱) 문화포럼에서 ‘독도문제와 한·일관계’라는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논문에 따르면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10개년 군비증강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1898년 4월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해군 장교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파견돼 전쟁을 참관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통신과 해저케이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세계 최고의 항해력을 자랑하던 스페인 함대가 미군이 전함에 설치한 무선 전신시설로 서로 연락해 협공하는 작전으로 무너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군사 전략적 가치 간파
러일전쟁 거점 삼으려 해저케이블 설치 추진
독도 망루 1905년 준공 전함과 무선통신 구축


최서면 원장
아키야마는 러일전쟁에 대비해 무선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유일한 방어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1899년 6월 외무대신에게 무선기술 개발과 망루 설치를 제안했다. 망루는 전투를 지휘하는 곳이다. 그가 제시한 안에는 대만에서 시작해 일본과 한국에 무선 망루를 세우는 계획이 들어갔다. 이어 석 달 만에 이 안에 대한 허가가 떨어졌다.

일본은 이후 자국의 규슈와 주 고쿠, 한국의 죽변만(울진), 울산,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에 망루와 통신용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다. 실제로 러일전쟁을 지휘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한국의 진해에서 무선 전신을 받고 지시를 내렸다.

최서면 원장은 “일본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였고 이를 재확인하기 위해 1905년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지만, 1899년부터 군사적 목표 아래 기지를 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독도는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독도는 러시아의 동해 종단 계획과 일본의 동해 횡단 계획의 교차지점에 있다.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일본 군함이 독도를 여러 차례 실사했다. 일본 해군은 러일전쟁의 시작점인 1904년 5월15일 중국 뤼순항 전투에서 최신예 해군 전력의 3분의 1을 상실했으나 이후 울릉도에 망루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전력 부족을 보완했다. 독도 망루 설치는 1904년 9월25일 해군 군령부가 조사를 명령하면서 시작됐다. 1905년 7월25일 기공해 8월19일 준공했다.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쓰시마(對馬)에서 격파한 뒤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서 동해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러일전쟁은 종결된다. 러시아 발틱함대 사령관 로세스트벤스키 중장이 중상으로 의식을 잃은 채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곳은 울릉도 서남방 약 40해리 지점이었고, 함대 지휘권을 장악한 네보가토프 소장이 주력 잔함을 이끌고 일본군에 투항한 곳도 독도 동남방 약 18해리 지점이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 흐름에서 일본이 독도에 집착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며 “독도 경제수역 확보로 어장과 대륙붕을 이용하려는 경제적 측면보다 군사적 측면이 독도에 집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내용이 어렵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본이 독도를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이 '군사적 목적' 때문이고

이미 그 계획이 1899년 세워졌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게 밝혀졌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일본은 지금까지 독도가 원래 일본 영토였고

이를 재확인하기 위해 1905년 편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최서면 원장이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그보다 앞선 1899년부터 군사적 목표 아래 치밀하게 독도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위 일본 주장은 틀린 셈이지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요.

저는 기사에 인용한 장석흥 국민대 교수의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본이 주장하는 바가 단순하게 영토 갈등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거죠.

아베 총리 등장 이후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떼어서 보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참 착잡합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편입'이라는 용어도 문제입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1905년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고 하다가

'편입'이라는 용어가 "이전까지는 영토가 아닌 것을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므로

'편입 재확인'이라는 용어로 번복했습니다.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다른 근거도 있죠.

또 일본은 17세기 이래 일본의 독도 영유권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1696년 일본의 '독도 1차 도해금지령'에 의해 이 주장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에도 막부는 1695년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돗토리현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고

1696년에는 도해 금지(바다를 건너는 것을 금지)를 지시했죠.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독도는 신라시대 이래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한국의 영토로 관리하다.

2) 일본의 1905년 영토 편입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3) 조선의 공도 정책은 왜구의 침탈로 인한 정책이지, 실효지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4) '도해면허'는 타국에서 어로 활동을 해도 된다는 허가서의 성격이므로 일본 스스로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5)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폭력과 탐욕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조약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 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위 입장은 기억해두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