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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같은 여행

왜 기억해야 하는가-9.11 추모박물관(9.11 Memorial Museum)

지난주 미국 뉴욕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제일 처음 일정은 9.11 Memorial Museum(9.11 추모 박물관)에 다녀오는 것이었는데요.

 

13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결은 다르지만 사회의 크나큰 상처를 어떻게 다독여왔는지에 대해서요.

몇 달 전 인터뷰했던 정신분석가 권혜경 박사는 뉴욕 시민들의 자부심에 대해서 얘기를 들려줬었습니다.

어떻게 9.11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애써왔는지에 대해서요.

미국인들은 다방면으로 노력했고

연방정부, 뉴욕시, 시민들 모두 힘을 합쳐 극복했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넉 달이 넘어 다섯 달에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하고 극복해야 할까요...?

 

9.11 추모 박물관을 다녀온 소감은 '지독하다'였습니다.

13년 전의 그 하루에 대한 기록, 그 하루로 인해 생겼던 모든 일들을 다 기록하려고 한 것 같았어요.

그날 사망한 3000여명이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오게 됐는지 등을

일일이 기록해놓았더군요.

WTC의 골조, 무너져서 생긴 흔적 등을 고스란히 보존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9.11 테러로 희생당한 343명의 소방관, 23명의 경찰들에 대한 추모 열기도 여전했습니다.

 

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까요.

 

아니, 더 근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할까요?"

 

 

 

 

 

 

박물관으로 가는 길 9.11 테러로 사망한 343명의 소방관들을 기리는 공간을 먼저 지났습니다.

소방관들이 어떻게 화염을 헤쳐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애썼는지 저렇게 동판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소방관들을 추모하는 꽃도 이렇게 놓여 있었고 묵념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해야겠죠.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 어떠했나 뒤돌아보게 됐습니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바빴던, 그리고 조직 해체론까지 나온 해경 생각이 났습니다.

 

아득해지더라고요.

 

 

 

 

 

343명의 얼굴들입니다.

 

 

조금 더 가니 WTC 건물이 붕괴한 자리에 만들어놓은 분수대가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541미터 높이의 '원 월드트레이드센터' 등 여러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분수대에는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 있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살아남은 나무'입니다.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만났는데요.

 

사고 당시 쌍둥이 빌딩 잔해 아래 심하게 탄 채로 발견되었던 나무입니다.

엄청난 사고 뒤에도 살아 남은 이 나무는 '배 나무'라고 하네요.

 

 

나무를 자세히 보시면 사고 이전과 이후가 구분이 됩니다. 신기하죠?

 

 

그리고 드디어 박물관에 입장했습니다.

 

 

 

건물 골조 흔적입니다.

 

 

 

건물 흔적 하나하나가 이렇게 다 보존돼 있었어요.

 

 

 

생존자의 계단으로 불리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메모리얼 홀'이 나옵니다.

 

그 홀 중앙에는 참사 뒤 쌍둥이빌딩에서 가져온 '마지막 기둥'이 서 있습니다.

공사 현장 한 가운데에 세워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기둥이죠.

기둥에는 희망의 메시지와 희생자 사진이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로마 시인 버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중 한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시간의 흐름이 결코 그대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리)'

 

9.11을 지켜본 뉴욕 시민들의 힘, 13년이 지나서 이 박물관을 만들어낸 시민들의 힘이

이 구절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철골 구조물들.

 

 

 

 

위 아래 사진을 비교해보시면 2001년 9월 11일 이곳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이실 겁니다.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

 

 

 

생존자 계단입니다. 이 계단을 따라 누군가는 올라오고 누군가는 올라오지 못한 것이죠.

 

 

 

 

 

희생자들 얼굴 사진을 모은 작품.

 

 

 

 

길게 이어진 '추모의 길' 끝에는 참사 당시 비행기와 충돌한 북쪽 타워

93~96층의 부러진 철근이 놓여있었습니다.

 

철근이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이 녹슨 철근이 드높고 멋진 건물의 일부였을 겁니다.

북쪽 타워 맨 꼭대기에 있던 안테나도 부러진 철덩어리가 되어 돌아왔고

북쪽 타워에 있던 철근도 비행기와의 충돌 때문에 구부러진 채로 이렇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희생자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2983명의 희생자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떻게 WTC에 오게 됐고 남은 유족들이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한 명 한 명 기록해 놓았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던 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9.11테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왜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유입니다.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면 안 되니까. 반복할 수 없으니까."

 

 

사고 당시에 대한 기록도 섬세하고 꼼꼼했습니다.

 

사고 당시 기록을 타임라인으로 당일 오전 8시46분부터 1분 단위로 기록해 놓았고

사고 당시 거리의 사람들 모습, 잔해들, 거리에 남은 하이힐, 가방, 경찰차문, 소방차 일부를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나란히 세워져 있는 '자전거 5대'였습니다.

이게 여기 왜 있지? 했는데 알고 보니

참사가 일어난 이후 WTC 근처 자전거 세워놓는 곳에 '찾아가지 않는 자전거'였던 겁니다.

이 찾아가지 않는 자전거는 아마 WTC 안에서 희생된 누구들의 것이었겠지요.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시민들이 꽃다발 등을 가져다주며 '이름없는 희생자'를 추모했습니다.

그 자전거 5대가 박물관에 그대로 옮겨져 온 것이죠.

 

그을린 한 소방관의 장갑에는 'Thank You'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려 애썼을 소방차입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려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How do we remember?"

"How are victims identified?"

 

이 두 가지 질문은 세월호 참사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일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그리고 희생자들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요.

 

계간 <문학동네>에 박민규 작가가 이렇게 썼습니다.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에밀레종의 실제 타종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다. 그 소리는 매우 슬펐으나 어떤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기나긴 여운을 간직한 것이었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