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에 스리랑카 출장을 다녀왔는데 뒤늦게 포스팅을 올립니다...;
스리랑카는 '인도양의 보석'으로 불리는 섬나라죠.
인도 대륙 끝에 자리하고 있어서 '인도의 눈물'이라고도 불립니다.
북인도의 신할리족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가꿔왔는데요.
마르코 폴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극찬하기도 했고
아랍인들은 '보석의 섬'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신밧드의 모험>에서 신밧드가 보석을 찾아 떠난 섬 세렌디브가 바로 스리랑카라고 하네요.
저는 이곳에 경기도 부천 석왕사에서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를 기증받아
봉안하게 돼 동행 취재를 다녀왔는데요.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죠.
불교도가 전체 인구의 68%를 차지합니다.
기원전 247년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이후 남방불교 문화를 발달시켜왔고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를 발전시켜온 인도와 달리 고대부터 불교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폴론나루와라는 도시에 먼저 갔습니다.
이 도시는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는데요.
인도의 잦은 침략에 싱할라 왕조는 수도를 포기했고 500여년 동안 밀림 속에 방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1900년 무렵 유적 발굴이 시작되면서 중세 불교의 역사를 볼 수 있게 됐다고 해요.
12세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위자야 바후 1세와 프라크라마 바후 1세 시대의 사원과 수도원이 남아 있었는데요.
사진으로 보실까요.
날씨가 참 맑았네요. 그때는 더웠습니다;;(그래도 다시 가고 싶은 이 마음은 ㅎㅎ)
12세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유적들.
불상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훼손된 것도 많았습니다.
인도의 침략, 전쟁 등으로 유적의 훼손이 많았다고 하네요.
갈 위하라는 부처상이 조각된 암반사원인인데요.
암반에는 큰 좌상, 동굴 안에 있는 작은 좌상, 입상, 와상 등 네 개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높이 5m에 이르는 큰 좌상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모습으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공사 중이어서 ㅠㅠ 매우 아쉬웠습니다.
4개의 불상을 다 잡아보려고 했는데 실패!
입상과 와상을 보실 수 있겠고요.
그리고 눈을 감은 좌상!
그리고 스리랑카에 불교가 유입된 곳, 미힌탈레로 갔습니다.
전설에는 부처님이 생전 스리랑카를 세 번 방문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역사로 기록된 스리랑카 불교사는
기원전 265년 아쇼카왕이 그의 아들 마힌다 스님을 파견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마힌다 스님은 스리랑카로 건너와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서 12㎞ 떨어진 마시카산에 머물고 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온 국왕 데바남피야 티사를 만나게 됩니다.
마힌다 스님은 티사 왕에게 설법했고 왕은 스님에게 감명받아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는 얘기죠.
미힌탈레는 바로 마힌다 스님이 티사 왕을 처음 만난 곳입니다.
왕은 스님에게 이곳의 68개 동굴과 승원(僧院)을 기증했고 당시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미힌탈레 꼭대기에 놓인 부처상.
3군데로 나뉘어 꼭대기까지 계단이 이어지는데요.
20여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기원전 1세기에 세웠다는 칸타카 치티야의 불탑이 나타난다고 해요.
다시 계단을 더 올라가면 마힌다 스님과 티사 왕이 처음 만난 곳에 세웠다는 암바스탈라 대탑이 나타나고요.
언덕 꼭대기에는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모셔놓았다고 전해지는 마하세야 불탑이 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노을이 일품이라고 하는데 저는 보지 못했어요.(시간 관계상...)
이렇게 험한 계단들을 올라가야 합니다...;
취재진은 미힌탈레에 모셔놓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볼 수 있었는데요.
스리랑카에는 아직도 사리신앙이 많이 남아 있는 걸로 보이더라고요.
부처님의 진신사리, 아라한의 사리 등을 이렇게 귀중하게 두고
친견하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색이 화려한데요.
자그마한 사리탑도 금색으로 휘황찬란합니다.
스님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
사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요.
실제 보면 그렇게 오색찬란하지는 않더라고요.
오색찬란은 후대에서 만들어낸 신화라고 합니다.
저도 3군데 중 제일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을 택해서 올라갔습니다. ㅎㅎ
반대편에 저렇게 사람들이 보이고요.
위에다 내려다본 전경 모습.
산 아래에 가면
스님들이 쓰던 거대한 돌그릇, 수도 시설, 우물, 회의실, 법당터, 승가법이 쓰여 있는 비석 등이 남아 있습니다.
승가법이 적혀 있는 비석은 두 개인데요.
왕이 직접 승가의 대표자들과 상의해 승가법을 만들어 공포한 비석들로,
왼쪽에는 승가 재정의 투명성과 승가의 규율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는 승단에서 근무하는 스님과 재가자들의 월급과 채용, 해고 관리, 근무 자세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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