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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 일기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물려오면

복직하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

 

"애는 누가 봐?"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요."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할 때는 죄책감이 듭니다.

어린 아이를 엄마인 내가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힘든 할머니에게 손주를 맡겨놓았다는 죄책감이

이중삼중으로 들죠.

 

저는 복직에 맞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제가 출산휴가(3개월) 및 육아휴직(1년)을 하고 나서 보낸 거니 15개월이 좀 안됐을 때죠.

 

처음에 친정엄마는 두 돌까지 아기를 돌보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직 기간 하루종일 아기를 보다보니 '안 되겠다' 싶었어요.

핵가족 시대, 마을이 붕괴된 서울에서는 혼자 아기를 보다보면

물리적으로 힘든 것은 둘째고 우울증이 올 것 같았거든요.

할머니에게 그럴 수는 없다 싶었고

또 복직을 앞두고 있었을 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순서가 됐다고.

 

 

어린이집에 보내던 첫날이 생생합니다.

아이는 아직 상황을 잘 모르고 긴장한 건 오히려 저였죠.

호기심 많은 아이는 어린이집을 낯설어도 안 하고 엄마 없이도 잘 놀더군요.

그렇게 적응을 위해서 한 시간여 어린이집에 같이 있다가 아이를 두고 나오는데

아파트 동 사이에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미안함과

출산 이후 거의 떼어놓지 않았던 어린 생명을 떼어놓은 어색함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복잡한 심경과 달리

적응을 잘 했어요.

별 적응 기간도 없이 어린이집을 잘 다녔고

회사에 돌아온 저는 아이에게 항상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런데.

아이가 지지난주 어린이집에서 물려왔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른 아기에게.

 

야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가 잘 있는지 걱정돼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손을 다쳤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우리 아이 옆에 누워 있던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 손을 꽉 물었다는 겁니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을 땐 그냥 '멍했습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화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왜 난 이제서야 알게 된 거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제 일에 방해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황을 물었고 원장님은 미안하다고 연신 그러시더군요.

그리고 직장맘들에게는 퇴근 후에 전화드린다고 하셨습니다.

 

 

...

 

왜 다들 내 아이보다 내 일을 걱정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일을 객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린 것 정도 가지고 이러면 '유난스러운 엄마'다, 아냐, 아이는 고작 21개월인데 엄마를 부르며 울었을거야,

...

 

 

엄마인 제가 아이가 다친 걸 8시간이나 지나서 알아야 했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를 찾으며 울었을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정부의 정책공감 블로그에서.

 

 

그래도

원장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원장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저는 '을'이니까요.(선생님이 좋은 분이라고 믿지만)

아이를 맡긴 입장이니까요.

 

그리고 사고였을 뿐이니까요.

 

집에 돌아가니 밤 11시.

아이가 깰까봐 어둠 속에서 휴대폰 후레시를 비춰 상처를 가늠했습니다.

막상 눈으로 보니 정말.....

 

 

 

다음날 아침에 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심했습니다.

 

쉬는 날이었고 병원부터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왜 바로 오지 않았느냐고 되묻더군요.

바로 드레싱을 했어야 하고 이 정도면 흉이 남을 수 있다고.

 

그 순간 또 치미는 화.

같이 병원에 가신 친정엄마는 괜히 자책하시고

저는 어린이집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래도 이성을 찾고 진단서를 발급해달라고 했어요.

(직업병이죠. 문서를 남겨 증거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결국 집에 가서 다시 어린이집에 전화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얘기했습니다.

 

우리 아이를 문 아이에게 잘못을 물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아이도 아기인데 뭘 알겠느냐,

어른들이 잘 살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안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

이번에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고 보니 아찔하다,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게 잘 살펴봐달라 등등.

 

그렇게 돌려말하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곤 아이를 몇분간 안고 있었어요.

놀고싶다고 엄마 품을 벗어나겠다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별일 아닌데, 유난스러운 엄마들 제일 싫어했잖아, 절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잖아,

그런 아우성 치는 말들은 소용 없었어요.

그냥 두 돌도 안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것만 같고

다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났습니다.

손에 흉은 안 남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워킹맘은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죠.

 

회사 선배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놀다 치아를 다쳐서 눈 속에서 울면서 치아를 찾던 일화를 얘기해주시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이제 시작일 뿐인데 너무 우울해하지 말자, 다독였습니다.

 

 

 

담대한, 담담한 엄마가 되어야지 매일 다짐하는데

매일 실패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거라고 소소하게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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