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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관리자

“1인시위,약자의 마지막 표현… 강자의 홍보수단 활용은 모독”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32137125&code=940100

ㆍ창시자 윤종훈씨
 
“가슴이 벅찼습니다. 일반 시민 1000여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하지만, 큰 외침’을 토해낸 거죠.”
 
‘1인시위의 창시자’로 불리는 윤종훈씨(50·회계사·사진)는 23일 서울지하철 1~9호선 출구 앞에서 “나쁜 투표를 거부하자”며 벌어진 ‘동시다발 1인시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윤씨는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으로 일하던 2000년 12월 국세청 앞에서 “삼성SDS의 BW(새로운 주식을 인수할 권리가 붙은 회사채)가 세금도 물지 않고 이재용씨에게 증여된 데 대해 제대로 조사하라”며 2주간 혼자서 시위를 했다. 이때부터 ‘1인시위’라는 말이 생겨났다.

11년이 지난 지금 세종로·과천의 정부청사, 여의도 국회 앞, 광화문광장 등지에서는 1인시위를 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윤씨는 “1인시위 문화는 수백·수천명이 모이는 집회가 시민들에게 주는 불편을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1인시위가 활성화됐다는 건 그만큼 사회 모순이 커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1인시위를 한 데 대해선 “1인시위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약자가 대중에게 호소하는 수단인데, 강자가 자기를 광고하는 홍보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386세대’인 그는 1992년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에 입사했다가 분식회계 관행에 회의를 느껴 그만뒀다. 이후 참여연대의 조세개혁운동에 뛰어들었다. 1999년 국세청에 삼성의 불법증여 의혹을 제보했지만, 국세청은 묵묵부답이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그 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1인시위’였다. 집시법 규정을 살펴보다 2인 이상이 모여야 ‘집회’가 되고, 혼자서는 신고하지 않고도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윤씨의 1인시위는 인터뷰가 쇄도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참여연대는 100명의 릴레이 1인시위를 기획했고 법원은 삼성에 대해 과세 판결을 내렸다.

민간 싱크탱크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서 일하던 윤씨는 지난해 3월 짬뽕집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회계사는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데,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 몸담은 그에게는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생계 유지가 안되면 신념이 바뀔 것 같아” 짬뽕집을 열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연구소에서 회의를 하고 보고서도 만든다.

1인시위를 처음 한 2000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은 대학교 2학년,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은 고3이 됐다.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한때 살림살이 걱정을 해야 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는 “제 기사가 신문에 나오면 아들이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거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