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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관리자

두 딸 등록금 가족회의… 한 중산층 가장의 한숨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12153435&code=940401

“서연이 등록금은 할머니가 도와주셔서 냈다. 이번엔 어렵게 마련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버지 이승재씨(47)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아버지 앞에는 쌍둥이 두 딸의 등록금 고지서가 놓여 있었다. 4년제 사립대에 다니는 큰딸 서연양(19·아동복지학과)의 고지서에는 378만원, 전문대에 다니는 작은딸 서진양(19·관광중국어과)의 고지서에는 247만원이 찍혀 있었다. 서진양은 이번에 장학금 70만원을 받아 그나마 액수가 줄었다.

지난 18일은 큰딸 등록금 납부 만기일이었다. 이씨는 이날 아침에야 등록금을 계좌이체했다. 이날 저녁 경기 수원시 율전동 이씨의 집을 찾았다. 112㎡(34평)의 아파트를 둘러보니 전형적인 중산층 살림살이였다. 아이들과 등록금 문제를 두고 가족회의를 하던 이씨도 “형편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종친회 사무실에서 일하며 한 달에 400만원 이상 벌고, 부인 김영미씨(42)는 소아과 간호사로 일한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데도 한꺼번에 두 딸의 등록금을 마련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이씨는 “쌍둥이라서 미리 (등록금) 준비를 해왔는데도 쉽지 않다”며 “둘째딸이 전문대를 다녀 아들이 대학 갈 무렵이면 졸업한다. 그나마 세 아이 등록금을 한꺼번에 대야 하는 처지는 면했다”고 말했다. 막내아들 종욱군(17)은 현재 고교 2학년이다.
 
쌍둥이 딸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1학기에는 이씨의 친지·친구들 도움으로 등록금을 냈다. 700만원이 넘는 등록금과 입학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딸들은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큰딸 서연양은 “엄마·아빠에게 부담이 된다는 게 답답했다”고 말했다.

작은딸 서진양은 1주일 전 2학기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 안에서 팔짝팔짝 뛰며 울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뭔가를 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학금 이야기가 나오자 서진양은 눈물을 글썽였다.
 
등록금 이야기를 나눈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쌍둥이 딸의 친구 신지순양(19)이 찾아왔다. 신양은 “2학기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게 됐는데, 할 말이 많아서 왔다”고 운을 뗐다.

“대학 졸업도 못한 상황인데 제 이름으로 빚이 생겼어요. 아버지가 학교에서 강의를 하시는데 방학 때는 월급이 나오지 않아 등록금을 내줄 수 없다고 하셨거든요. 나중에 어떻게 이 돈을 갚을까 생각하니 슬퍼지더군요.”
 
신양의 이야기를 듣던 이씨는 “어느 날 집에 들어왔을 때 딸과 친구가 같이 잠들어 있는데 매일 ‘알바’하느라 피곤한 것 같았다. 부모들은 도둑질이라도 해서 등록금을 대주고 싶은 심정인데…”라고 말했다.

오후 8시쯤 어머니 김씨가 귀가했다. 김씨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