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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주부·시민단체… 촛불, 범국민 운동 조짐

임아영·김향미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080006375&code=940100

ㆍ“등록금 빚쟁이 이제 그만”… 도심 곳곳서 열흘째 집회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부모 세대도, 직장인도,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도 합류했다. 대학 등록금은 이제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나와 내 가족의 ‘삶의 질’과 직결된 이슈가 촛불을 계속 밝히고 있다.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시작된 촛불집회가 열흘째를 맞은 7일 서울시내 대학가와 청계광장 주변 등 도심 곳곳에서 하루 종일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 열흘째인 7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한 학생이 양손에 든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거리에서

오전 11시 청계광장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전국등록금네트워크(등록금넷)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 ‘촛불집회’를 불허한 경찰 당국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학생들의 촛불을 막는 경찰의 집회 불허를 규탄한다”면서 “2008년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을 2011년 6월10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30분 뒤엔 청년유니온이 “더 이상 등록금 빚쟁이로 청춘을 보낼 수는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이들은 대학 등록금 대출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빚더미에 올라 청춘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 초 국립대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형근씨(26)는 “대학 3~4학년 때 등록금 때문에 대출을 받아 사회에 나오면서 1200만원을 빚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상환기간은 앞으로 10년 남았다. 상대적으로 돈을 일찍 벌 수 있는 학원강사직을 택하면서 온전한 취직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오 광화문광장

배우 권해효씨가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권씨는 “나 역시 배우이기 이전에 2011년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시민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라면서 “청년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실업자가 되는 이 환경이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암담하게 만드는지 심각하게 느끼는 시민으로서 1인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 대학에서

오후 1시 이화여대 정문 앞

고려대·서강대·숙명여대·이화여대 등 4개 대학 총학생회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10일 하루 동맹휴업을 하겠다며 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등록금 대책으로 내놓은 ‘B학점 이상 하위 50% 소득계층에 대한 차등 지급’과 관련, “학생들이 노력해야만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화여대 정혜정씨(조형예술대 3학년)는 “요즘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에서 B학점 이상이라는 조건까지 다는 것은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한 학기에 6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있다. 요즘 시험기간이고 과제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지만 동맹휴업에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동맹휴업 결의가 이뤄지면 10일 오후 4~8시 학업을 중단하고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여할 계획이다.

■ 시민사회와 함께

오후 2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한대련과 시민사회·정당 관계자는 이날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국민촛불집회’를 10일 열기로 결의했다. 김지윤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장은 “반값 등록금은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라며 “평범한 대학생, 노동자, 서민을 위해 재정을 쓸 수 있도록 움직임이 확대되는 게 반값 등록금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등록금 때문에 한쪽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한쪽에서는 기성회비를 불법으로 전용하고 비리재단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며 “재단은 교육자가 아니라 교육판매자나 다름없는 태도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지에만 주목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등 야당과 민교협·한국진보연대·민주노총·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도 대학생들의 입장에 공감하며 정부·여당에 대책을 촉구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사학재단에서 적립금으로 무분별하게 쌓아두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국민대책위원회 설립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몇십억 가진 오세훈 서울시장이 딸 둘 대학 보내면서 허리가 휜다면 중간층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국민들을 설득해가고 선거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면 반값 등록금, 대학 무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다시 거리에서

오후 7시30분 청계광장 인근

대학생들은 예고한 대로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려고 했지만 경찰은 36개 중대 2700여명의 병력을 배치, 집회 개최를 막았다. 대학생과 시민 1000여명(경찰 추산 700명)은 청계광장 인근의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 자리를 잡고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을 밝혔다.

박자은 한대련 의장(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다음주부터 기말시험 기간인데도 대학생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답을 주지 않는 정부를 향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직접 외치자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이명박 정부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학생뿐 아니라 40~50대 주부, 60~70대 노년층의 모습도 보였다. 한 40대 여성은 “내 아들과 딸이 각각 고2, 중1이다. 대학생들이 노력하고 있는 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박모씨(41·자영업)는 “올해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해 학비를 500만원 정도 냈는데 이건 정말 말이 안된다”며 “지금 나온 대학생들이 촛불집회를 주도한 고등학생들 아니냐. 희망을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은 집회장 뒤편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줬고, 경기 남양주에 산다는 시민은 캔커피 60개를 건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경희대 민주동문회 동문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마련해 왔다. 박홍근씨(43)는 “20년 전에도 등록금 투쟁을 했었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며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힘을 보태자는 뜻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집회를 마친 뒤 행진하던 중 경찰과 대치하다 오후 10시40분쯤 자진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