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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책과 삶]보편 자처하는 중국철학의 중화주의를 의심하다

글 황경상·사진 정지윤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032019195&code=900308

ㆍ‘철학사의 전환’ 펴낸 신정근 교수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47·사진)의 연구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대신 한여름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발이 쳐져 있었다. 신 교수를 만난 지난 1일은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4.6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연구실 바닥은 차가웠다. 문 밖에서부터 방 한가운데까지 가득 쌓인 책더미 너머로 컴퓨터 모니터에 깜박이는 커서가 겨우 보였다.

“난방을 하면 정신이 멍해지고 쉽게 지칩니다. 늘 각성된 상태로 있으려고 이렇게 둬요. 춥다는 느낌은 안 듭니다. (열린 문처럼) 늘 열려 있어야 하죠. 저만의 생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 들어오고 저도 나가면서 소통해야죠.”

이번에 펴낸 <철학사의 전환>(글항아리)도 이런 ‘각성 상태’에서 중국철학을 뒤집어본 산물이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다른 이들과 교류없이 자족적 문화를 이룩했다면서 세계의 중심을 자처했다. 철학도 그랬다. “<중국철학사>를 쓴 펑유란을 위시한 기존 철학자들은 중국철학을 보편적인 인류정신으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요.”


신 교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에드워드 사이드에는 열광하면서 왜 중국철학의 중국중심주의를 의심하지 않는지 묻는다. 중국의 철학도 보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문화적 경험에서 나온 그들 중심의 사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시경과 서경을 예로 들었다. “흔히 (시경·서경이 포함된) 사서삼경 자체가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정서, 규범을 담고 있는 불후의 텍스트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경·서경은 주나라의 건국 영웅을 칭송하고 주나라의 건국 과정을 거룩한 사업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주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셈이죠.”

중국은 외부세력과의 대결 과정에서 중원지역을 송두리째 뺏기는 등 종족 멸망의 위기를 수차례 넘겼다. 하·은·주 삼대에는 삼묘(三苗), 서주에는 융족(戎族), 한에는 흉노(匈奴), 남북조시대의 오호(五胡), 송의 거란·여진에서부터 근대의 양이(洋夷·서구세력)까지 끝이 없었다. 위기를 방어하는 방법은 바로 “중화에 대한 도전의 불온성과 오랑캐의 미개성, 이들을 정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시경과 서경뿐 아니라 중국철학 자체가 그 산물이다. 중국철학사가 “타자와 디아스포라에 내몰린 문화 정체성의 끊임없는 재구축의 여정”으로 정의되는 순간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시기에 민족 정체성을 강조했던 것처럼 중국도 똑같습니다.” 신 교수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가 세계의 본질, 불변하는 진리로 제시한 ‘이(理)’도 중국문화의 정체성을 실체화한 개념이라고 풀이한다. ‘이’가 훼손되거나 소멸되면 정체성도 유지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 ‘이’를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친민(親民)’을 ‘신(新)민’으로 본 주희의 해석도 “이민족에 의해 오염된 면을 탈각하고 새롭게 태어나자”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한다.

이 땅의 학자와 사상가들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철학을 인간 본성과 세계 본질을 해석하는 보편적인 도구로 굳게 믿어 왔다. “조선시대에 유배된 학자들을 보면 성리학에 심취한 나머지 그에 맞지 않는 시골 사람들을 ‘야만’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중국철학의 종족주의적 측면 또는 시대철학적 측면을 반성하는데는 둔감했어요.” 그러나 중국철학의 보편성을 의심하려고 나선다면 곧 우리 삶을 고민하는 철학을 만들어내야 하는 책임과 맞부닥치게 된다. “수입하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철학을 들여야 하는데 서구에서 유행했다고 무작정 가져오는 건 지식쇼핑에 불과합니다.”

신 교수는 동양철학의 고전에서 새로운 철학을 내놓기 위해서는 구절구절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역사적 장구성에 압도돼 개인 지성을 왜소하게 바라보면 텍스트에 잠식당하는 것이죠. 21세기에 사는 사람이 바라보는 재텍스트화가 필요합니다.”

이번 책이 그런 신 교수의 생각을 밝히는 당위와 틀을 제시했다면 현재 준비하는 책들은 그 각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고전 20여 종을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낼 작정이다. “이를테면 <장자>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변신의 이야기들은 존재의 변이를 통해 국가가 지우는 역할과 의무에서 살짝 벗어나면서 국가의 포획전략을 비웃는 틀이라고 볼 수 있죠. 훈고학적인 독해는 동양철학의 운명과 활로를 좁히는 길입니다. 텍스트 이해 가능성의 지평을 넓혀보자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