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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남자가 비속어를 섞어 ‘가카’를 조롱하자 대중은 환호했다. 서울 마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던 방송은 수만명이 운집한 야외 공연장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어느덧 정치권과 기성 언론이 주목하고 경계하는 ‘힘’을 갖게 됐다.
그러나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방송 내용이 여전히 ‘B급 정서’로 가득 차 있다는 데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냉소와 조롱을 무기로 한 비주류 언론에서 영향력 있는 주류 미디어로 부상했음에도 걸맞은 책임과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BBK 사건으로 수감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비키니 시위’ 사진에 대한 <나꼼수> 패널들의 부적절한 언급이 균열의 시작이다.
그동안에도 ‘반MB’를 외치는 정치인과 언론은 많았으나, 이들은 대중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지 못했다. 그 사이를 <나꼼수>가 파고들었다. 이해하기 쉽고 속시원한 <나꼼수>의 풍자와 비판은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젊은이들까지 팬덤으로 흡수했다. 팬덤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팬덤은 섬세하지 않다. 시비(是非)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피아(彼我)를 구분한다. 이택광 교수는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논의의 틀을 지키는 것 자체가 정치이고 민주주의이며, 충성도를 가지고만 호불호를 판단하는 것은 팬덤”이라고 말했다. 즉 <나꼼수>가 ‘우리는 도덕적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대상을 비판하면서 “그 집단을 닮아 있는 셈”이라는 것이다.
대중의 환호 속에 묻혀 있던 <나꼼수>의 강한 마초이즘이 이번 사건을 통해 폭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나꼼수>가 올바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사건은 명백한 성희롱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MB정권만 비판하면 된다’ ‘노동자 편에만 서면 된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면 된다’는 식의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젠더(성)와 섹슈얼리티에 대해선 성찰을 게을리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자칫 이 문제로 “<나꼼수>는 문제 있다”던 계속된 지적들이 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나꼼수>가 우리 사회에 던진 탈권위적 면모와 대안 매체로서의 가능성,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의 화두 자체가 회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나꼼수>는 이대로 주저앉을까. 그렇게 판단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지난 30일 트위터에서 “여성들은 사과 한마디에 다시 <나꼼수>를 사랑해줄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나꼼수>가 한층 더 멋있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만드세요”라고 충고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역시 “모든 정치적 발언이 사회문화적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도덕적 예절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은 과도하다”며 “모든 공적인 발언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가 보장돼야 하며 비판은 얼마든지 받고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그 표명방식이 논란을 빚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나꼼수> 팀은 자신들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지만 팬덤이 생기고 과도하게 영웅화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제약이 생긴다”며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런 차원에서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나꼼수>의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꼼수>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명할 기회가 있다면 해명하겠다”는 게 그들이 밝힌 전부다. 자신들의 ‘힘’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미루고 있다. 미국 영화 <스파이더맨>에선 갑자기 얻은 초능력을 남용하는 고교생에게 숙부가 말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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