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201849115&code=900308
ㆍ‘몬드라곤의 기적’ 낸 김성오 대표
이 회사의 노동자들은 아침에는 이사회에 참석해 회사의 경영지표를 살피고 저녁에는 조합평의회에 참석해 노동시간 단축을 토의한다. 당연히 가족 같은 분위기의 중소규모 업체일 것이라고 추측하겠지만 자산 규모가 53조원에 260개의 회사가 소속된 그룹이다. 노동자 수는 8만4000명에 이르며 이 중 3만5000여명이 출자금을 낸 주주들이다. 스페인의 협동조합 기업집단 ‘몬드라곤’ 얘기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 부부는 이 협동조합을 분석해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펴냈다. 20년 전 이 책을 번역해 소개했던 김성오 아이알씨조사연구소 대표(48)는 절판된 책을 복간하면서, 이후 변화를 추적해 쓴 <몬드라곤의 기적>(역사비평사)을 함께 내놓았다.
지난 17일 만난 김 대표는 지금 다시 몬드라곤에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매출과 자산이 비슷한데 대주주가 경영하면서 자본수익률만을 따지는 회사와 노동자가 경영하는 회사 중 누가 고용을 늘릴 수 있을까요. 제 가설은 노동자 기업 쪽이라는 것이고 책에서 그걸 증명했습니다.” 20년 전 김 대표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바라봤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국 사회 양극화의 원인은 안정되고 질 좋은 직장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거대담론보다 대안을 내놓고 싶었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두 회사의 고용 규모와 평균 임금은 엇비슷했다. 큰 차이는 질 좋은 일자리의 수다. 몬드라곤이 조합원·비조합원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켰다면 현대차는 대략 1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의 임금차가 2배 이상 났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가진다면 어떨까요. 정몽구 회장은 비정규직에 관심 없겠지만 노동자들의 집단양심은 비정규직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1956년 23명의 단일 협동조합에서 시작한 몬드라곤의 목표는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 확대다. 경기가 침체되면 가급적 순환휴직을 하고, 해고자에겐 사회보험협동조합인 ‘라군-아로’에서 실업급여를 준다. 조합원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조합원은 조합원으로 끌어들이고 다른 노조와 연대파업도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가정용품 브랜드 ‘파고르’와 스페인 5위권 대형은행 노동인민금고를 키워냈다.
김 대표는 노동자 기업의 투명성과 생산성을 믿고 투자하는 미국의 ACS펀드 모델을 참고해 우리나라에서도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중견기업 1~2곳만 노동자들이 인수해 실제 사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인식 자체가 달라지겠죠. 한진중공업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맡겨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김 대표는 현실가능성보다는 ‘두려움’을 경계한다. “1999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인수하라고 충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왜 재벌 3세보다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을 못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전문경영인을 뽑으면 됩니다. 오히려 재벌 오너가 없으면 기업 운영의 투명성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노동자 자신이 주인이니 파업이 있기 어렵고 생산성이 늘어납니다.”
글 황경상·사진 강윤중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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