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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모든 순간

기자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

 

 

 

의사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최인혁 교수(이성민)는 이민우(이선균)에게 묻는다. 이민우는 의대 졸업 후에도 전문의를 따지 않고 임상강사의 직함으로 편하게 살아왔다. 그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악다구니 쓰면서 수술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욕심 없이 마음 비우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부탁을 받아 응급실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뜻밖의 응급환자를 만난다. 저녁을 먹다가 숨이 막혔다는 다섯 살 여자아이였다. 경험이 없는 이민우는 간단한 응급처지도 하지 못하고 심폐소생술만 거듭하다 아이를 살릴 시간을 놓치고 만다. 죽은 아이를 들고 최인혁이 있는 큰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최인혁은 이민우에게 일갈한다. “왜 데려온 겁니까? 여기 와서 확인하고 싶은 게 뭡니까?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환자 돌아오지 않아요. 데려가세요. 설마 사망선고 할 줄 몰라서 그거 해달라고 데려온 겁니까? 사망선고조차 다른 사람이 내려줘야 합니까?” 그 길로 이민우는 다시 또 그런 상황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인턴 과정에 들어간다. 그러자 최인혁은 면접에서 이민우에게 묻는다. “의사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 그리고 말한다. “왜 하필 내 앞에 이런 환자가 나타났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어쩔 겁니까.”

 

<골든타임>을 보면서 환자를 죽이는 건 의사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사나 방송사에 제보거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환자들이다. 추잡한 권력 다툼의 이면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은 탓에 견딜 수 없는 분노를 품고 있는 분들이 많다. 환자가 찾지 않는 병원이 병원이 아닌 것처럼, 아마도 제보자들이 찾지 않는 언론사는 언론사가 아닐 것이다. 그들을 맞이하는 기자들의 자세 또한 의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보자들을 대하는 데도 골든타임이 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해서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이 지나면 시의성이 없어져서 더 이상 지면을 잡아 기사를 내보내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점점 취재수첩뿐만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잊혀지기도 한다. 그러면 제보자들은 속이 탄다. 언제쯤 내보낼 수 있는지, 보도 자체가 가능하기는 한지 수차례 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좀 기다려보라는 대답은 어느새 기사가 좀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으로 슬며시 바뀌어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제보자들도 포기하고, 어쩌면 좋은 문제제기가 될 뻔 했던 사건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사고 후 1시간, 응급처지를 해야 하는 그 황금 같은 시간대를 놓쳐서 환자를 죽이는 의사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언론사로 들어오는 제보의 대부분은 보도 가치가 낮거나 장난인 경우가 많다. 야근을 하다 보면 가끔씩은 들어주기 어려운 수준의 술주정 같은 전화도 걸려온다. 자신이 국가기관의 사찰을 받고 있다고 해서 직접 만나보면 내 귀에 도청장치수준의 공상과학소설을 쓰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제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돌이켜 보면 나도 후회되는 순간이 너무나도 많다. 찾아보면 한쪽 구석에 먼지를 덮어쓴 채로 남아 있을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한창 갑을관계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막 기자가 됐을 때 그런 비슷한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의 관계를 제보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기사가 될 수 있을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우물쭈물 따지다 결국 기사를 쓰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것을 알면서도 내부 비리 정보를 주신 분도 계셨다. 이것도 변명이겠지만 이런저런 기사 부담으로 너무 바빠서 자료를 제대로 챙길 시간이 부족해, 결국 보도 타이밍을 놓쳐 버린 때도 있었다. 이미 해당 인물이 뉴스의 중심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한 때는 어떤 제보자의 전화를 주기적으로 받을 때도 있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기사화되기는 약간 어렵다고 생각해서 사정을 설명했지만, 자꾸만 전화를 하니 나중에는 좀 짜증스런 목소리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때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니 지금까지도 그 물기 섞인 목소리는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럴 때면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골든타임>의 다섯 살 여자아이가 이민우를 만나지 않고 최인혁을 만났다면 살 수 있었을 것처럼, 나에게 제보를 하신 분들이 내가 아니라 더 좋은 기자를 만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무능력한 기자는 무능력한 의사처럼 아예 없느니만 못한 존재다. 최인혁의 질문이 상대를 바꿔 다시 폐부를 파고든다. “기자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 그리고 말한다. “왜 하필 내 앞에 이런 제보자가 나타났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어쩔 겁니까?”

 

삼성 X파일 보도로 유명한 이상호 기자는 기자는 사회적 무당이라고 말한다. 기자 한 명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억울한 사람을 신원해주고, 한을 풀어주고, 나쁜 놈들한테 가서 푸닥거리를 하고, 공동체의 막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처음에는 답답하고 짜증나다가도 곧 동화가 되고 그러다가 공감하고, 그러다 누가 이 사람들을 고통 받게 했는지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결국 보도하다 소송까지 걸리고... 이런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게 고발기자의 일상이고 사회적 무당의 삶이란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그 정도의 기자는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했던 그 부끄러움만은 잊지 말아야지, 죽은 뒤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위하기 위해서 큰 병원으로 뛰어가는 이민우처럼, 다시는 이런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진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 예전에 청탁받아 쓴 글을 뒤늦게 올립니다.

http://www.dadoc.or.kr/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