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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같은 여행

젊은사람, 외지사람, 그리고 바보

일본 시레토코 반도를 다녀왔다. 지면 제약으로 미처 나가지 못한 글과 사진을 여기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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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일본 홋카이도 시레토코 반도 원시림 속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사슴 두 마리가 무심히 노닐고 있다. 절벽 너머 왼쪽으로는 오호츠크해의 유빙이, 오른쪽으로는 눈 덮인 이오산(1563m)이 보인다.


시레토코 반도의 풍경


유빙(流氷)은 반도의 코끝을 간질이기만 할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러시아 아무르(헤이룽)강 하류에서부터 오호츠크해를 거쳐 1000㎞를 달려 오느라 힘에 부쳤던 탓일까.

북극 사진에서나 본 거대한 얼음덩이들을 북반구에서는 가장 남쪽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지역으로 떠났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동쪽 끝에 자리한 시레토코(知床) 반도. 북위 44도 언저리다. 수십 년 전에는 오로라도 발견됐다고 한다.

지난달 23일, 출국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유빙은 닿을락말락 ‘밀당’을 계속했다. 경향신문이 후원한 이번 ‘착한여행-세계문화유산 시리즈’를 주최한 착한여행사 나효우 대표는 현지에 미리 도착한 뒤 메신저로 “밤새 유빙을 밀고 오겠다”며 긴장섞인 우스개를 던졌다.

유빙의 속도는 바람세기의 10분의1 정도라고 했다. 도착한다 해도 날씨에 따라 녹아버릴 수도, 순식간에 흘러갈 수도 있다. 출발 당일 아침에야 유빙을 볼 수 있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매년 유빙 관측은 2월 중순부터 시작해 3월말 즈음까지 할 수 있었다. 올해처럼 도착이 늦어진 것은 1959년 유빙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이란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유빙의 여로만큼이나 맞이하러 가는 길도 녹록치는 않았다. 역시 1000㎞를 헤아렸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국내선을 갈아타고 홋카이도 메만베츠 공항으로 이동했다. 다시 2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시레토코 반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샤리초(斜里町) 우토로 마을에 도착했다. 환승 시간을 포함해 거의 종일이 걸렸다. 

숙소에 도착하자 로비에는 ‘유빙의 천사’라고 불리는 클리오네(clione)를 수십 마리가 노닐고 있는 수족관이 있었다. 약 1.5㎝ 길이의 투명한 몸체를 지닌 이 작은 생명체의 모습에 빠져들어 피로도 잊었다. 클리오네는 이번 유빙 도착과 함께 수년만에 발견됐다고 했다.


숙소 수족관에서 놀고 있는 클리오네


■ 바닷물도 민물도 아닌 ‘유빙의 맛’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유빙을 맞이할 채비를 갖췄다. 스킨스쿠버에 쓰이는 드라이슈트로 옷을 갈아입고 바닷가로 내려섰다. 바닷물은 온데간데 없고 셔벗 아이스크림 같은 유빙이 점령군처럼 들어차 있었다. 표면은 미장을 덜 끝낸 벽면처럼 울퉁불퉁했다. 간간히 드러난 유빙의 속살은 고대 지층처럼 얼음판이 층층이었다.

‘까드득까드득’ 묵직한 얼음덩이들이 서로 살을 부비는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겉으로는 그저 얼어붙어 꼼짝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유빙 위로 올라서자 유빙 사이로 언뜻 바닷물이 출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유빙은 몸으로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아래위로 울렁였다. 디즈니 동화 <추위를 싫어한 펭귄>의 주인공 펭귄이 돼 막 깨지기 시작한 얼음조각 위에 선 기분이었다.

발밑의 유빙 한 조각을 뜯어내 맛을 봤다. 바닷물도 민물도 아니었다. 짠맛이 날듯말듯 아리송했다. 몽골, 중국, 러시아… 아무르강이 4000㎞를 흘러오면서 품었던 맛에 오호츠크해의 풍미가 더해진 셈이다.

이 독특한 맛의 유빙은 바다와 육지, 강과 바람의 만남으로 이뤄진 합작품이다. 아무르강에서 흘러온 신선한 민물이 오호츠크해로 흘러들면서 바다 상층부의 염분 농도가 낮아진다. 사면이 육지로 둘러싸인 오호츠크해는 본래 수온이 낮은데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찬바람까지 더해진다. 이 틈에 저염분의 바닷물이 얼어붙으면서 유빙이 만들어진다.


여행팀의 한 참가자가 바다를 가득 메운 유빙 사이로 직접 들어가 유빙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유빙과 유빙 사이, 얇게 얼어붙은 살얼음 위에 살짝 엎드리자 ‘쩍’ 하고 얼음이 갈라진다. ‘슬로우! 슬로우!’ 천천히 들어오라는 안내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몸을 밀어넣었다. 발이 닿지 않아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유빙 쪽으로 발을 올려차보자 단단한 촉감이 발에 와 닿았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실감났다. 전혀 춥지는 않았다. 눈높이로 수평선까지 펼쳐진 유빙을 바라보니 거대한 얼음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잠시 들어갔다 나왔을 뿐이지만 드라이슈트는 내 몸 모양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장화까지 연결된 드라이슈트는 물샐 틈이 없었지만 장갑을 낀 손이 문제였다. 물에 들어갈 때도 ‘손을 들고 있으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어느새 물이 스몄다. 물기가 조금 닿았을 뿐인데 손이 얼어붙는듯했다. 갖고 간 카메라는 추위로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며 작동 불능상태가 됐다.


■ 개발 안 했더니 젊은이 유입 더 늘어

‘착한여행’은 소비중심의 관광을 넘어서 방문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리즈 첫번때 시레토코 여행의 주제 역시 ‘관계’였다. 가급적 현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정이 꼭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다.

여행팀은 샤리초(町·한국의 읍면 단위에 해당)의 기관장인 바바 다카시(馬場隆) 정장(町長)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이 지역에 오는 한국 관광객들은 잠시 유빙만 보고 돌아가곤 한다. 바바 정장은 한국에서 온 여행팀이 시레토코의 자연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 지역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한다는 얘기에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시레토코 자연유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바바 다카시 정장

“시레토코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말로 ‘세상의 끝’이란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끝’이지만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전파하는 데는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바 정장의 이같은 자부심은 바로 시민 스스로 이 지역을 지켜온 역사에서 비롯된다. 

홋카이도에서도 오지인 시레토코 반도에는 1910년대부터 외지인들의 개척이 이뤄져 왔지만 엄혹한 자연환경 탓에 1960년대 중반 모두 철수했다. 1964년 일본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긴 했지만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부동산 투기 열풍은 이곳도 비껴가지 않았다. 과거 개척지를 사들여 대규모 휴양시설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맞서 1977년 샤리초는 시민들의 기부금을 모아 이 개척지들을 매입해 보존하고 나무를 심어 자연을 회복시키자는 운동을 펼친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서 힌트를 얻었다. 한 사람당 8000엔(현재는 5000엔)을 내서 100㎡를 사들이자는 ‘시레토코 100㎡ 운동’의 시작이었다. 아사히신문이 이 운동을 소개하면서 시민들의 폭발적인 참여가 뒤따랐다. 현재까지 6만6000명이 참여했으며 8억3600만엔의 기부금이 모였다. 매입한 토지는 471헥타르(ha)에 이른다. 바바 정장은 “결혼이나 출산 기념으로 100㎡를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 700건씩 꾸준히 신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반발은 없었을까? 한국에서도 자연환경을 보존하자는 주장은 개발로 경제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곤 한다. 바바 정장은 “갈등은 있었지만 꾸준히 설득했고 지금은 이렇게 보존된 자연 덕분에 농업과 어업도 지속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잘 보존된 자연이 관광자원화되면서 일거리도 늘고 외부 인구가 유입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고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 바바 정장은 “일본 전체가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는 감소율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샤리초의 인구는 1만2000여명밖에 되지 않지만 홋카이도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적다.


‘시레토코 100㎡ 운동을 소개한 책자


■ 맨눈으로 보는 <동물의 왕국>

 지역 주민들의 환경보존 노력은 시레토코 지역이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시레토코는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가 바로 맞닿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너비가 10~20㎞ 남짓한 좁은 시레토코 반도의 중심부에는 15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다. 불곰이 해안에서 산까지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곳은 시레토코뿐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바다와 높은 산이 가깝다. 좁은 범위 내 산, 초원, 원시림, 바다 등 다양하고 풍요로운 환경이 밀집함에 따라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환경이 갖춰진다.

 시레토코 자연의 특징을 설명할 때 유빙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찾아오는 유빙은 풍부한 식물성 플랑크톤을 전달해 준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과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물고기들은 각종 새들의 먹이가 된다. 그중에서도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산속 불곰의 먹이가 되고, 불곰의 배설물은 산과 들로 환원된다. 바다의 혜택이 연어를 통해 숲과 산으로 옮겨지는 셈이다.

 유빙은 시레토코 해안선을 날카롭게 침식시켜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자연스레 자연환경 보존에 탁월한 지형이 일궈지는 것이다. 유빙 위에서는 바다표범이 새끼를 키우기도 한다. 시레토코 세계유산센터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은 “시레토코는 인간도 생명의 고리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고 소개한다.

 시레토코 세계유산센터에서 설명을 들은 여행팀은 직접 시레토코 원시림을 걸어보기로 했다. 수십 센터미터나 쌓인 눈 탓에 설피를 신어야 했다. 안내를 맡은 남녀 일본인 2명은 도쿄와 큐슈 출신이라고 했다. 둘 다 32살의 젊은 나이였다. 외지인의 유입이 많다는 바바 정장의 말이 떠올랐다.

 원시림 안까지 진입하자 시레토코 자연환경의 특징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처럼 소담하게 눈이 덮힌 예쁜 언덕 너머에는 100m가 넘는 절벽이 가파르게 이어져 있었다. 절벽 너머 왼쪽에는 오호츠크해에서 떠내려온 유빙이, 오른쪽에는 바로 해발 1563m의 눈덮힌 이오산이 이어져 있었다. 절벽에 가닿은 넓은 설원에는 사슴 3~4마리가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설원을 돌아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까마귀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안내자가 갑자기 여행팀을 멈춰세웠다. 죽은 사슴이 있는데 주변에 먹이를 노린 불곰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주변을 살핀 뒤 곰이 없음을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가 봤다. 앙상하게 드러난 사슴 갈비뼈 사이로 여우의 얼굴이 희끗희끗 내비쳤다. 까마귀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 <동물의 왕국>을 맨눈으로 보는듯했다.

 원시림의 동물들은 사람들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처음 사슴떼를 보고는 환호를 질렀지만 서너 번 보고 나자 지겨울 정도였다. 불곰이 나무를 올라가기 위해 발톱으로 마구 할퀸 흔적도 발견했다. 산포도를 먹이 위해서라고 하는데, 200㎏의 곰이 4~5m의 나무를 타는 건 쉬운 일이라고 했다. 이곳도 한때는 불곰이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서식환경이 회복되면서 개체수가 늘었다. 이제는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일 만큼 사람과의 접촉을 관리해야 할 정도다.


사슴 사체를 먹고 있는 여우


■ 소금사막을 보는 듯, 얼음바다

여행팀은 시레토코 반도를 어루만지듯 돌았다. 이번에는 시레토코 반도의 ‘서쪽 해안’인 샤리초에서 ‘동쪽 해안’인 라우스초(羅臼町)로 건너갔다. 본래는 반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둘 사이를 통과하는 산간도로가 있지만 눈 때문에 통제됐다. 봄이 되면 8m가 넘게 쌓이는 눈을 치우고 이 길을 개통하는 행사가 하나의 관광거리라고 한다. 도로 양쪽에 쌓인 ‘설벽’ 사이로 걷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도 4월10일에 열린다고 한다.

차량 이동 중 잠깐 꾸벅 졸다 일어나도 설원은 끝없이 계속됐다. 사람 발자국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더 많아 보였다. 비슷한 모양의 단촐한 2층 단독주택들이 도로를 양쪽에 이어져 있었지만 똑같은 모양의 집은 단 한 채도 없었다. 덕분에 약간은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곧게 뻗은 침엽수 위로는 눈꽃이 피었는데 아이스크림 케이크 위에 초를 꽂아놓은 격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탓에 제설차도 종종 길을 잃고 헤맨다고 했다. 가로등처럼 도로 위 공중에 표지판을 세워 차선 표시를 해 놓은 것은 그 때문이란다. 도로 곳곳에는 종종 눈이 많이 내렸을 때 대피할 수 있는 인공터널까지 만들어뒀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지만 체인을 걸고 다니는 차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행팀의 차량 운전을 맡은 나가요시씨는 “북해도의 눈은 물기가 적어서 체인을 안 걸고 다녀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마치 밀가루 같은 눈은 털어내면 은백색 가루로 흩어졌다.

라우스로 가기 전에 홋카이도섬 오른쪽에 갈고리처럼 튀어나온 노츠케(野付) 반도를 들렀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마치 바다 위를 지나는 것처럼 표시될 정도로 가느다란 길이 바다쪽으로 내뻗어 있었다. 오랜 세월 퇴적된 토사가 만든 26㎞의 모래부리(사취·砂嘴)다. 본래는 바다였을 만 안쪽은 얼어붙고 눈이 쌓여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사막처럼 변해 있었다. 눈 사막 위로는 20~30마리의 사슴 떼가 뛰어다녔다.


노츠케 반도 앞 얼어붙은 바다의 환상적인 모습

노츠케 반도 앞 얼어붙은 바다의 환상적인 모습. 김종숙 선생님 제공.


■ 젊은 사람, 외지 사람, 바보

 라우스초 쪽으로 진입하자 같은 시레토코인가 싶을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의 어촌이 나타났다. 이곳은 일본의 유명한 고급 가을연어와 다시마 생산지로 해산물이 풍부하다고 했다. 인구는 겨우 5000명 남짓이지만 어획량은 150억엔에 이른다고 했다. 샤리초 쪽은 해안이 절벽이어서 어업이 쉽지 않지만 이곳은 가능하다고 했다. 또 러시아령 쿠나시리(國後) 섬과의 사이에 깊은 수심의 바다가 존재하고 유빙이 녹으면서 풍부한 플랑크톤이 도달하는 것도 장점이다.

 샤리초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던 유빙도 없었다. 유빙이 없으니 새들에겐 먹이를 찾기 안성맞춤이다. 마을의 나무에는 횐꼬리수리와 참수리 한 무리가 동네 참새처럼 무더기로 앉아 있었다. 이곳 안내를 맡은 이케가미 미호(池上美穗) 라우스초 관광협회 사무국장은 “알람이 없어도 수리들의 울음소리로 깰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라우스는 육지에 서서 고래를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지역이기도 하다. 여름철에는 버스 두 대 길이의 거대한 향유고래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고래 외에도 1년 내내 돌아가며 쇠부리슴새, 올빼미, 범고래와 밍크고래, 바다사자와 물범 등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팀은 비록 고래는 없었지만 배를 타고 가까이서 수리들을 관찰했다.


라우스초 앞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찰한 수리들. 여행팀 김종숙 선생님 제공.

라우스초 앞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찰한 수리들. 여행팀 김종숙 선생님 제공.


 이케가미 사무국장은 삿포로 출신의 ‘도시 여성’으로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5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새출발을 모색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사무국장 모집 공고를 본 것이 계기였다. 우연히도 도시에서 힘든 일을 겪고 이곳에 오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이케가미 사무국장은 그런 여성들이 이곳에서 재충전할 수 있도록 힐링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큰 관광회사들은 비용 문제로 라우스 지역까지 잘 찾지 않는다. 이케가미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직접 어시장 투어와 어부 생활 체험 등의 관광상품들을 개발한다고 했다. 여행팀이 들은 식당에서도 최근 2명의 젊은 여성들이 만들었다는 여행사에서 ‘성게 알까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이케가미 사무국장은 “자연환경이 열악한 곳이지만 역시 사람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냐고 묻자 “부모님까지 모시고 올 계획”이라며 웃었다.

 일본에는 지역을 바꾸는 사람은 ‘젊은 사람’, ‘외지사람’, 그리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동쪽 끝 작은 마을 샤리초와 라우스초에서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연과 자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내가 서 있는 곳을 한 번쯤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레토코 반도였다.


시레토코 반도의 유빙. 여행팀 김종숙 선생님 제공.


[참고기사] 경향신문 1994년 5월7일자

北海道「시레토코100㎡ 운동」

환경보전을 위한 세계新潮流 그 현장을 가다

천혜 秘境지킨「市民 땅사기 운동」

국립공원내 사유지 사들여 개발저지‥‥4萬여명 성금으로120萬평 보존



「시레토코(知床)에서 꿈을 사지 않으시렵니까」.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동쪽끝에 자리한 샤리초(斜里町)에서 벌이고 있는시민참여 자연복원운동의슬로건이다. 지난 77년에시작된 이 운동의 정식명칭은「시레토코 100㎡운동」. 시민들의 성금으로시레토코국립공원내의 사유지를 사들여 국립공원의무분별한 개발을 막자는취지의 이 운동에는 이미4만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했으며 그동안 사들인땅만도 4백㏊(약 1백20만평)가 넘는다.

성금 1계좌 8천엔

홋카이도 최대의 도시인삿포로(札幌)에서 기차를타고 동쪽으로 7시간 남짓을 가면 샤리초에 닿는다. 인구 1만4천명의 샤리초는 일본 최후의 秘境이라는 시레토코반도의 초입,오호츠크해를 마주본자리에 위치하고 있다.「시레토코」란 홋카이도 지역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말로「이 세상의 끝」이란뜻이라고 한다.

「시레토코 100㎡ 운동」을 관장하고 있는 샤리초 환경보전대책실의 가와조에 히데키(川副秀樹)자연보호계장은 이 운동이시작된 배경에 대해"개간에 실패한 국립공원내의사유지가 부동산개발회사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아이누족만이 살고 있던홋카이도에 본토인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메이지(明治)시대때부터였다. 홋카이도에서도 오지인 시레토코반도에는 1910년대부터 개척의 손이뻗치기 시작했다. 그러나시레토코반도에서 고구마옥수수 등 농작물을 수확하려는 개척민들의 꿈은 끝내이뤄질 수 없었다. 척박한토지와 엄혹한 기후조건으로 농지개간이 불가능해지자 60년대 중반 개척민들은모두 이 지역을 떠났다.

그러나 지난 72년 집권한 다나카(田中角榮)총리가「일본열도개조론」을 주창하면서 이 지역에도 부동산투기 열풍이 몰아치기시작했다. 대도시의 부동산개발회사들이 농지개간에 실패한 국립공원내 개척민 소유의 사유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샤리초는 町예산으로 사유지를 매입하려 했으나 인구1만4천명의 町예산으로부동산개발회사의 대자본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앙정부의 환경청에 대해 사유지매입을 요청했으나 한번 개발이 시도됐던 땅은 자연보호를위한 매입대상이 아니라는이유로 거부되고 말았다.

언론보도 크게 기여

이런 상황에서 지난 77년 1월16일 아사히(朝日)신문의 칼럼「天聲人語」에영국의「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상자기사 참조). 이글에서 힌트를 얻은 당시町長 후지야 유타카(藤谷豊)씨는 한달여 뒤인 2월27일 기자회견을 열어「시레토코 100㎡ 운동」의시작을 알리고 시민들의동참을 호소했다.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사유지를 매입,농지개간으로 황폐화된 이 땅에 대규모 조림사업을 펼쳐 1백년 뒤에는 대삼림지대로만들겠다는 것이 후지야町長의 사업구상이었다.기부금은 1계좌 8천엔(100㎡)으로 하되 땅의소유와 관리는 町에서 맡고 기부시민에게는 매년9월 植樹祭에 참여하여나무를 심을 수 있게 했다. 후지야 町長의 기자회견이 있은 지 한달이 채안된 3월24일 교토(京都)의 한 시민이 첫 기부자로참여하면서「시레토코 100㎡ 운동」은 순조롭게진행됐다.

가와조에 계장은"언론이 이 운동의 성공에 크게기여했다"고 회고한다. 운동의 아이디어를 제공한것은 물론 지난 79년 11월과 12월에 아사히신문이「天聲人語」란에 이 운동을두차례 소개한 후 참여시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85년 9월에는매입대상지 4백72㏊중 개척농민 소유분 3백56㏊를매입완료했으며 92년 7월에는 참여시민이 4만명을돌파했다. 가와조에 계장은"94년 1월말 현재 참여인원은 4만3천여명,기부금 총액은 4억5천만엔(약 36억원)을 넘어섰으며 매입대상토지의 88%(4백15㏊)를 사들였다"고자랑한다. 

샤리초는 지난87년 운동지역인 이와오베쓰(岩尾別)부근에「시레토코 100㎡운동 기념관」을 지어 이곳에 기부자4만여명의 명패를 국적별·지방별로 보관하고 있다. "기부시민중에는 왕년의 홈런타자 王貞治선수를비롯,최근까지 방위청장관을 지낸 아이치 가즈오(愛知和男)씨 등 유명인사가 적지 않다"고 취재팀을이곳까지 안내해준 北海道大學의 한국인 유학생 韓尙勳씨(동물학)는 귀띔해준다. 韓씨는 이 운동에 참여한 76명의 외국인중 유일한한국인이기도 하다.

기부자명패 기념관

기념관 바로 옆에는「시레토코자연센터」가 있다.지난 88년 샤리초가 건립,운영하고 있는 이 센터에서는 시레토코반도의 동·식물상에 대한 연구조사는물론 造林 등 자연복원사업,일반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연관찰회 등을 벌이고 있다. 이 센터의 사무국장이자 동물학자인 나카가와 하지메(中川元)씨는"시레토코반도는불곰과 에조사슴 등의 서식지이자 참수리,흰꼬리수리의 월동지로 일본내에서는 보기 드문 야생동물의 낙원"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나카가와 사무국장은"일본 국립공원의 경우 공원관리는 환경청,산림관리는 임야청,도로관리는 건설성이 맡는등 관리주체가 복잡해 중앙정부에 의한 효율적 관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이 때문에 대부분의자연보호운동은 해당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주체가되어 끌어나가는 경우가많다"고 설명한다.

샤리초(斜里町)에서 글 朴仁奎기자 사진 權鎬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