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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평화의 비행기’ 1박2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보고 나니 왜 이곳에 기지를 세우면 안 되는지 알겠어요.”
강유정씨(22·대학생)는 3일 오후 6시 제주 올레 7번길을 걷고 난 후 말했다. 7번 올레길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길이다. 이 올레길 코스를 걸어가다보면 구럼비 해안이 나온다. 구럼비는 직경 1㎞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곳곳에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이 구럼비 바위를 살아 숨쉬는 것으로 여긴다. 길을 걷다보니 용천수가 곳곳에 샘솟아 은어가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강씨는 이 해안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더 이상 이같은 풍광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소식에 제주도를 찾았다. 그는 “아름다워요”, “이런 곳에 왜 기지가 들어서야 하죠?”라는 말을 반복했다.
강씨는 3일 오전 혼자 제주 강정마을로 가는 ‘평화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온 후 제주도는 처음이다. 혼자 온 것이 어색했지만 금세 비행기를 탄 사람들과 친해졌다. 강씨는 “트위터에서 ‘평화의 비행기’ 광고를 보고 혼자 신청했어요. 아무 상관도 없을 수 없지만 낮은 사람들의 말을 저같은 작은 개인이라도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건 지난 6월이다. 서울 강남에 사는 강씨는 포이동 화재를 직접 눈으로 봤다. 집이 불에 타서 우는 사람들, 갈 곳이 없어서 절규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직 같이 있는 일 뿐이었다. 강정마을에 오게 된 것도 트위터를 통해 4년3개월 동안이나 주민들이 어렵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1원의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고 하거든요.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요. 그 사람들의 행복과 안위를 빼앗고 기지를 건설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오후 2시 200여명의 사람들이 ‘평화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부산·정읍 등에서 배와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맞았다. 이들은 7대의 ‘평화 버스’를 나눠타고 법환포구로 향했다. 법환포구에서 구럼비 해안까지 올레길을 걸으며 구럼비 해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체감했다. 오후 7시에는 강정천 운동장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서울 ‘외지인’들은 김밥 등을 나눠 먹으며 가수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서석준씨(37)는 5살 아들과 부인과 제주도에 왔다. 아들은 ‘해군기지 시러, 구럼비가 조아’라는 손피켓을 매단 캐리어를 밀고 있었다. 서씨는 “‘외부 세력’이라고 하는데 외부 개입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이건 타자에 대한 관심이거든요. 궁금해서 왔습니다. 아무리 미군과 상관없다고 해도 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자연은 훼손될 수밖에 없어요. 이 시대는 개발되지 않은 게 기회일 수도 있는데 그걸 부순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2명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이용대씨(54)는 “고마운 마음에 왔다”며 “희망 버스 등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서오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 김봉규씨(47)는 “환영한다”며 “스스로의 의지로 오겠다는데 이 사람들의 생각이 존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목소리가 가장 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법환 해녀회장 강애심씨(58)도 “우리는 바다가 생활 터전이라 여기서 나고 자랐고 아이들도 길렀다. 바다가 망가지면 살 길이 없어지게 된다”며 “서울에서, 부산에서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강정마을로 들어서니 노란색 깃발과 태극기가 곳곳에 보였다. 노란색 깃발은 기지를 반대하는 쪽, 태극기는 기지를 찬성하는 쪽이다. 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찬성하는 슈퍼를 가지 않고 찬성하는 주민들은 반대하는 슈퍼를 가지 않았다. 작은 마을이 곳곳에 분열된 흔적이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주민은 “4년 동안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갈리면서 적이 됐다”며 “공사가 재개돼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끝까지 싸워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박2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는 길. 강유정씨는 “이곳은 절대로 해군기지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앞으로 강정마을 소식을 들으면 사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며 “이곳에 와서 주민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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