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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모음/누런돼지 관리자

“도저히 감당 못할 등록금… 이게 남의 일인가”

임아영·김형규·주영재 기자 layknt@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092144345&code=940100
ㆍ나는 이래서 촛불 집회에 나왔다

“왜 촛불을 들었습니까?”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시작된 서울 광화문의 촛불집회가 10일로 13일째를 맞는다. 지난달 29일 시작된 촛불집회는 처음에는 대학생들만의 모임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외연이 넓어지고 열기도 고조되고 있다.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386세대 학부모, 자영업자, 60대 중소기업 대표까지 집회 현장에 나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은 그동안 광화문과 각 대학의 집회 현장에서 물었다. “왜 집회에 나왔습니까?” 직업도, 나이도 달랐지만 대답은 같았다. “등록금 때문에 죽겠습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서로의 초를 기울여 불을 붙여주고 있다. 대학생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등록금 촛불집회는 직장인, 학부모, 자영업자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학생들 절규에 아버지로서 미안

박채순(60·트랜스문도 대표이사) = 대학생들 의견에 공감해서 나왔다. 자식 셋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에 갔다. 아버지로서 미안했다. 오늘 딸이 “아버지 어디 가시느냐?”고 문자메시지 보냈기에 “외할아버지가 돈이 많지 않아서 손자가 학교 다닐 때 등록금 내려가라고 촛불집회 간다”고 답장했다. 대학 등록금이 인생의 빚이 되는데, 졸업해도 비정규직이 되는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빚을 갚을 수 있겠나. 학생들 주장이 정당하니, 정부가 들어줘야 한다. 학생들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치로 풀어야 하고 동시에 시민들이 각성해서 함께해야 한다.

■ 아줌마들 “벌써 어린 자식 걱정”

이모씨(45·주부) = 이름은 묻지 말아 달라. 고 2, 중 1 아이 2명을 두고 있다. 집회에 나온 대학생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나왔다. 등록금 문제는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없다. 나부터도 아이들이 대학 간다고 하는 게 걱정될 정도다. 연간 등록금 1000만원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동네 아줌마들끼리 “우리가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같이 나왔다. (등록금 문제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절실한 얘기다. 정부는 사학재단 배불리는 일만 하고 있다. 기업이 대학에 지어주는 시설도 학생들을 위한 것 맞나. 보여주는 공간이지, 토론하거나 연구하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어제 친구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집회 참가한 뒤 24시 음식점에 ‘알바’하기 위해 밤 12시까지 가야 한다는 대학생도 있다더라. 그 친구 얘기 듣고 미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 수업 여건 나쁜데 등록금 어디 쓰나

안서영(19·경기대 지식재산학과 1학년) = 새내기인데 첫 학기에 400여만원 냈다. 본전을 뽑지는 못한 것 같다. 수업이 양질도 아니고 학교 시설도 좋지 않다. 심지어 에어컨이 없는 강의실도 있다. 그런데 우리 등록금 받아서 어떻게 쓴다는 것을 투명하게 알리지도 않는다.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등록금 내게 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취업프로그램 등 비전을 제시해주지도 않는 것 같다. 학생들이 모든 걸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등록금을 부모님이 내주셨는데 너무 죄송하다. 능력이 되면 어떻게든 독립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의지하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어머니가 회사에 다니시는데 이제 그만 명예퇴직하고 싶어하신다. 그런데 등록금 때문에 그러시질 못하고 있다. 내년에 처음 투표하는데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주고 싶다.

■ 돈 때문에 휴학, 과장이 아닌 현실

황영수(19·동국대 2학년) = 학교 친구나 선후배들이 등록금 때문에 공부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나왔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등록금 벌기 위해 최저임금 받아가며 편의점 같은 데서 일한다. 일을 하다 보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잠도 모자라 학업에 지장이 생긴다. 악순환이다. 근본적 문제는 결국 등록금을 낮추는 거다. 실제로 돈이 없어 휴학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돈 없어 공부 못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 기성세대 책임감 연대 필요할 때

정미화(41·회사원) = 나 역시 대학 시절 어렵게 보냈기 때문에 등록금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공감한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함과 책임감에 학생들을 응원하려고 나왔다. 나는 대학 때 과외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충당했다. 힘들긴 했어도 내 힘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가능했다. 요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24시간을 해도 등록금 못 낸다. 대출 없이는 안된다. 그러니 졸업하면 다 부채 안고 청년실업자가 된다. 교육받을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데도 고등교육은 개인의 책임이란다. 무상으로 고등교육이 가능하도록 대학생과 시민들이 연대해야 한다. 거리로 내몰린 학생들이 안쓰럽다. 학생들이 적어도 돈 걱정은 없이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야 좋은 사회 아닌가.

■ 내 수입 턱없어 친척에게 손 벌려

박상원(51·자영업) = 아이가 대학교 1학년이다. 등록금으로 500만원 정도 냈다. 혼자 마련하기 어려워서 아버지·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당장 다음 학기부터 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교에 보낼 수가 없다. 나는 집회에 나왔지만 아이는 지금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계산을 해봤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적게는 7500만원, 많게는 2억~3억원이 들어가더라. 우리 부부는 식당을 하면서 한 달에 250만원 정도 번다. 아이한테 말했다. 장학금 받고 다니라고. 우리가 학교 다닐 때와는 너무 다르다. 나도 아버지가 전당포에 물건 잡히기도 하면서 학교 다녔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 대학생들을 믿는다. 이들이 2008년에 촛불집회를 주도한 고등학생들 아닌가. 내 아이가 2008년에 고 2였다. 이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에 대해 듣고 자란 아이들 아닌가. 저항의 힘, 투쟁의 힘을 아이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5년 빚만 4500만원… 대통령 소통을

유신행(24·경희대 한의대 본과 1학년) = 한의대 등록금이 한 학기 500만원이다. 5년 동안 학자금 대출을 받았더니 빚이 4500만원이 됐다. 시험기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 연행되는 걸 보면서 힘을 실어주고 싶고, 반값 등록금 실현 집회에 공감이 돼서 나왔다. 수업을 몇 년째 들어봐도 그 정도 등록금을 내야 할 수업인지, 환경인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이 공약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는 대통령이지만, 지금이라도 대화하고 소통이 됐으면 좋겠다. 내년 총선·대선에는 꼭 투표할 것이다.

■ 공약 뒤집는 정부에 너무 화가 났다

양보미(20·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어과 2학년) = 요즘 아버지 사업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등록금 부담이 너무 크다. 주변에도 금전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반값 등록금 얘기는 뒤늦게 알게 됐는데 공약까지 뒤집으면서 정부가 거짓말만 반복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났다. 한 명이라도 더 촛불을 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반값 등록금을 원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나왔다. 얼마 전 반값 등록금 기준을 B학점 이상으로 제한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제랑 다를 게 뭔가. 더 이상 대학생들을 희롱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 알바 수입으로는 자취비도 빠듯

류현주(21·인하대 4학년) = 어머니가 병원 식당에서 일을 하신다. 몸이 안 좋으신데도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최근에 들었다. “요즘 학자금 대출 많이 받는데 사회 진출 첫걸음부터 빚지고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등록금 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니냐”고 하시더라. 그전까진 별 생각 없이 수백만원씩 등록금 내왔는데 어머니 말씀을 듣고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그 뒤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자취 생활비 대기도 힘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돈 없어 1년 휴학기간을 채우고 다시 휴학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나라가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해결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