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준·임아영 기자 seirots@kyunghyang.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301453311&code=940301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민들의 추모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경찰버스를 잇대 서울광장을 봉쇄한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30일 나왔다. 불법 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결정의 취지다. 헌재의 판단은 이미 종료된 공권력 행사에 관한 것이지만 앞으로 경찰의 유사한 행위를 금지하는 의미가 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23일 경찰버스를 이용해 전격적으로 서울광장을 둘러쌌다. 길 건너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서울광장에서 불법·폭력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차벽은 노 전 대통령 노제가 있던 29일 잠시 사라졌다가 30일 새벽 다시 세워졌고, 6월4일 완전히 사라졌다.
민모씨 등 서울시민 9명은 당시 경찰 차벽 때문에 행동자유권을 참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경찰은 차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경찰청은 “경찰의 차벽이 6월4일 해제돼 어떤 결과가 나와도 청구인들에게 이득이 없어 사건을 심리하고 선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5월29일에 불법·폭력 시위가 있어 다시 차벽을 만들었고 이런 위험이 잦아든 6월4일에 차벽을 없앴기 때문에 최소한의 제한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2년 가까운 심리 끝에 이날 선고를 한 헌재는 “차벽은 이미 없어졌지만 차벽을 만드는 이런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어 헌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가의 공익 목적도 중요하지만 차벽을 둘러싼 것은 너무 지나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개별적·구체적 상황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2009년 서울광장 차벽은 일반시민의 통행까지 금지한 전면적이고 극단적인 조치이며, 이런 것은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어 “설령 서울광장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성이 있다고 해도 차벽으로 둘러쌀 것이 아니라, 몇 군데라도 통로를 트고 출입문을 만들어 경찰이 통제하거나 오전 출근시간에는 왕래를 풀어주는 정도가 맞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5월29일 불법·폭력 집회가 있었기 때문에 차벽 재설치가 불가피했다는 경찰 주장에 대해서도 “청구인들이 문제삼은 6월3일은 불법·폭력이 있은 뒤 나흘을 지난 시점이어서 위험성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동흡·박한철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경찰이 서울광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일시적으로 막았을 뿐, 우회로를 차단하거나 주변 여가 활동을 제한한 것도 아니어서 지나친 침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헌재 결정에 대해 시민사회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단”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그동안 경찰이 집회·시위에 지나치게 통제나 봉쇄 위주로 접근해 온 것은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조치였다”면서 “이번 결정을 계기로 경찰도 지금과 같은 과잉봉쇄 위주의 집회 관리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기본권이며, 이를 공권력이 사전에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정신을 헌재가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과거 열린 시위가 불법 시위로 변질한 사례 등이 경찰로 하여금 이같은 방식을 택하게 한 측면이 있다”며 “집시법에도 주최자의 질서유지 의무 등이 있는 만큼 시위문화도 성숙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당혹스러워했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헌재 결정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봐야 제대로 된 언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차벽을 아예 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경찰서의 한 간부는 “차벽을 치지 못하면 (전·의경들이) 물리적으로 막으라는 얘긴데, 이렇게 되면 시민·경찰 모두 더 많이 다치게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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